해병대 자료
해병대 전적비-진동리지구 해병전첩비
충실한 해병
2022. 11. 29. 14:45
● 위치 : 마산시 진북면 지산리 313-3
● 건립일자 : ● 시설제원 : ● 관리기관 : 해병대사령부 ● 참고문헌 : 전적기념물편람집(국방군사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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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설 명 | ||||
ㅇ개요
위치 : 마산시 진북면 지산리 313-3 관리기관 : 해병대사령부 ㅇ건립취지 및 유래 한국전쟁시 낙동강을 사이에 둔 피아간의 공방전투는 대격전이었다. 특히 한국해병이 방어하고 있던 창원지역 일원의 싸움터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이라 할 만큼 피의 바다를 이루었다. 진주, 함양지구 전투에서『귀신잡는 해병대』의 신화를 창조한 해병은 다시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해병대 사령부는 이때의 전승을 기념하고 조국수호의 영령으로 산화한 국군과 유엔군 용사들의 숭고한 넋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격전지였던 이곳에 전첩비를 세웠다. ㅇ비문내용 민족의 최대 수난인 6·25동란으로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구축한 국군과 유엔군이 사활을 건 대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 우리 해병대의 용감성과 충용성은 이곳 진동리에서도 생생하게 아로새겨졌도다. 함양·진주지구 전투에서 적 대대를 격퇴한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는 1950년 8월 3일 진동리 서방 고사리에서 북괴군 6사단의 정찰대대를 기습공격 궤멸시킴으로써, 창군이래 최대의 전공을 세워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획득하였다. 동년 8월 7일부터 미육군 25사단을 주축으로 편성된 킨(KEAN) 특수임무부대가 진주고개로 지향된 대규모 반격작전(8. 7 - 13)을 전개하는 동안 우리 해병대는 진동리 - 마산간의 보급로를 타개하고, 야반산·수리봉·서북산 일대의 적을 완전 격퇴한 후, 함안 - 군북으로 우회 기동하여 오봉산 필봉의 적을 섬멸하는 등, 종횡무진 진동리지구 방어를 위해 용전분투함으로써, 적 6사단의 필사적인 공세를 분쇄하였으며, 전략적 요충지 마산·진해를 지키고 낙동강 방어선을 더욱 튼튼히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여기 자유조국의 수호신으로 승천한 그대들의 빛나는 투혼과 공훈은 이 국토와 겨레의 마음속에 길이 살아 빛날 것이다. ㅇ참고사항 마산 서남방의 관문 지대를 형성하는 이른바 3전지구 가운데 마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인 진동지구에 위기가 고조된 시기는 낙동강 공방전이 바야흐로 가열되기 시작한 1950년 8월상순경 이었고, 이 지역으로 침공했던 적은 마산을 공략하기 위해 호남지구를 석권한 다음 진주와 사천 및 고성지구로 기동한 방호산 소장이 지휘하는 북괴군 6사단, 그리고 이 지역에 투입이된 아군 부대는 '킨' 소장이 지휘하는 미육군 제25사단과 긴급 배속된 미 제24사단의 1개 연대와 미해병 제5연대(1여단), 그리고 서부지구 전투사령부에 배속된 한국해병대의 김성은 부대와 육군의 민기석부대 및 최천 경무관이 지휘하는 경찰부대 등이었다. 한편 진동지구에 투입이 된 미 제25사단과 그 배속부대들은 8월 7일부터 진주를 탈환하기 위한 개전 이래 최초의 반격작전을 개시했는대, 마산지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감행했던 그 반격 작전 기간중 8월 1일 새벽고사리 지구에서 북괴군 6사단의 기동정찰부대를 요격하여 거둔 혁혁한 전공으로 8월 6일 부로 전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누린 김성은부대 장병들은 야반과 수리봉 (557) 서북산(739) 등 진동리 서북방에 있는 중요한 고지를 사력을 다해 공격 점령했고, 8월 12일 에는 중암리(-함안군 군북면)로 기동하여 패퇴한 적이 집결해 있는 오봉산과 필봉을 북에서 남으로 공격하여 일부 목표를 점령하는 등 부여된 공격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 함으로써 해병대의 감투정신을 빛내었다. 그런데 12일까지 계속된 미육군 킨 특수부대의 반격작전에도 불구하고 장사동에서 한국군 제3사단이 적에게 포위를 당하고, 북괴군 4사단은 낙동강 돌출부의 박진에서, 북괴군 3사단은 대구 서북방에서 낙동강을 건너오는 등 낙동강전선에 절박한 위기가 조성되었다. 미8군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8월 13일을 기해 방어작전으로 전환이 되고 말았는데, 그와 같은 조처는 미8군의 기동예비대로 확보하고 있던 미해병 제5연대를 영산지구에 투입하고, 배속된 한국해병대를 포함한 한국군부대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병력의 전용을 단행하기 위함이었다 ㅇ마산시 인문지리 우리나라의 동남쪽, 경상남도의 가운데 마산만에 자리하고 있는 시이다. 동쪽섀뒳?뀠뇼솤뜀듎U?¸λР8Р8??으로 창원시·진해시, 서쪽으로 진주시·고성군, 북쪽으로 함안군에 접하고, 남쪽은 진해만에 면한다. 면적은 서울시의 2분의 1 정도인 329.469㎢이며, 인구는 2003년을 현재 431,530명이다. 행정구역은 내서읍 및 구산·진동·진북·진전면 등 1개 읍 4개 면과 27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청은 마산시 중앙동 3가 4-11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0년 현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3.88㎢이고, 이 가운데 논이 2.442㎢, 밭이 1.44㎢이다. 벼농사 외에 밭작물로 토마토·오이·수박·호박·배추·무·당근·상추·시금치·고추·파·마늘 등이 생산되며, 그 외 작물은 참깨, 과실은 감·배·복숭아·포도 등이 생산되고 있다. 물이 좋아 일찍부터 청주·간장 등 양조업이 발달했으며, 요즘에는 국화를 비롯해 장미·소철·연산홍 등의 화훼산업도 점차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축산업의 경우 한우는 1,399가구에서 7,121마리, 젖소는 63가구에서 1,630마리를 기르고 있고, 돼지는 62가구에서 41,281마리를 기르고 있다. 어업은 2,139가구에 7,145명이 일하고 있으며 잡히는 물고기의 양은 한 해 153t이다. 일찍부터 경상남도의 상업과 공업도시로 발전해왔다. 특히 남동쪽의 양덕·봉암 주위에 각종 기업체가 들어선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세워지면서 남동임해공업지대의 중심도시로 크게 발돋움했으며, 1969년과 1977년 말에 각각 남해고속국도와 구마고속국도가 세워져 부산·대구에 이은 영남지방 산업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제조업은 섬유공업과 전자·전기 공업이 주로 이루어지며, 그밖에 기계·금속공업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978개 기업체에서 2만 8천 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국가공단으로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있고, 농공단지로는 진북신촌특별농공단지가 있어 24개 업체에서 459명이 일하고 있다. 한편 경남 밀양시와 광주를 잇는 경전선 교통의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던 신마산·구마산·북마산의 3개 역을 합쳐 시 북동부 석전동에 새로운 마산역을 세우고 옮겼다. 마산역에서는 한 해 64만여 명, 중리역에서는 2만여 명의 승객을 실어나른다. 시의 북부를 남해고속국도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구마고속국도가 갈라져 나간다. 가까운 창원·진해와는 산업도로로 이어지고, 진주·충무와는 국도로 이어진다. 마산항은 국제항구로써 커다란 배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으며, 부산·진해·거제·충무 사이를 오고가는 남해안 연안여객선의 시작점으로 바닷길을 이용한 해상교통이 편리하다. 마산과 관련있는 인물로는 신라 말 문장가 최치원,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 시조시인 이은상, 시인 천상병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