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해병대사령관 "전도봉"입니다.
존경하는 역대 해병대사령관님, 선.후배장군님, 그리고 동료 및 사랑하는 해병대 전우 여러분 !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처럼 화면을 통해 인사 드림은
한때 해병대 수장의 자리에 있었던 자로서
군인으로선 가장 불명예스러운 뇌물 스캔들로 인하여
모군 해병대와 해병대를 사랑하는 예비역과 친지 모두에게 커다란 오욕과 실망을 끼쳐 드린 점
무어라 사죄하여도 부족할 뿐입니다.
저 역시 한평생 해병대를 자식보다 아내보다 더 사랑하였으며
청빈과 명예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왔던 지난 시절을 다시 고백하며
저와 관련되었던 그 동안 사건의 일면을 우선 지면으로 알려드립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나는 새가 다 아는 이 사건을 더 이상 침묵함으로서
해병대와 전우회 내에서조차 이를 악용하는 등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드립니다.
▨ 경위(1998.09.28 ∼ 2002.08.16)
ㅇ 1998.04.10 스스로 자진하여 명예로운 전역과 동시에 예비역에 편입
ㅇ 1998.09.28 21:30 서울지검 특수 1부 긴급체포영장으로 구속
ㅇ 1998.10.21 1억여원 상당의 뇌물 수수죄로 기소
ㅇ 1998.12.30 92일만에 보석으로 석방
ㅇ 1999.12.26 1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100만원 선고
ㅇ 2000.10.17 고등법원에서 무죄선고
ㅇ 2000.10.20 검찰 측 대법원에 상고
ㅇ 2001.09.18 대법원에서 뇌물 약속죄 부분에 심리 미진 이유로 고등법원에 환송
※ 대법원 판결은 2001.09.18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이루어졌음
그러나 10여일이 지난 후 돌연히 조선일보와 KBS, MBC, SBS방송사를 제외한
다수의 언론매체를 통하여 "전 해병대 사령관 수뢰혐의 유죄 인정"이란 죄목으로
계획적이며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보도 함
ㅇ 2002.08.16 고등법원 재심의 결과
· 대법원의 환송 취지에 따라 4,000여만원 상당의 뇌물 수수 부분은 무죄를 선고하고
다만 팔리지 않던 땅을 매도함으로 무형의 이익 상당의 뇌물 약속죄로 자격정지 1년
· 950만원 근저당 설정 권리로 본인이 소유하였던 부동산의 타인명의 신탁으로
부동산 실명제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 선고
ㅇ 2002.08.19 대법원에 상고
채증법칙을 위배, 사실을 오인하고 뇌물 약속죄 법리에 대한 오류 제기
▨ 배경
ㅇ 1998.02.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원활한 군 통수를 위해 육군총장, 합참의장, 해병대 사령관 등
군 요직의 조기 퇴진 압력으로 저 같은 경우 임기 2개월을 남겨두고 스스로 자진하여
명예 전역을 하였습니다.
ㅇ 전역 후 김영삼 정부시 군의 핵심중 경남고, 경남 거제출신 장성 제거 계획에 따라
계획 수사가 진행되었고 해병대 사령관 출신이던 본인(경남 거제 출신, 경남고 16회)과
· 국군 5679부대 사령관 중장 박현지(경남 거제 출신, 육사24기),
권기대 예비역 육군준장(경남고 16회)
· 해병대 제 1사단 부사단장 준장 이인기(경남고 22회)등 4명의 현역 및 예비역 장성을
동일시기에 군 및 민간 검찰에서 전격 구속 수감하였습니다.
▨ 직접적 원인
ㅇ ○○○ 국방장관 취임 시 축하 열의가 극히 부족하였던 자로 오인되었을 뿐 아니라
본인의 사령관재임 시 수 차례 모 장군의 소장 진급 압력에 마지막까지 불복하였습니다.
ㅇ 모 예비역 사령관 출신과 재임 중에 불이익을 받았던 장군 및 영관장교, 부사관 출신들이
조직적이고 악의적이며, 고의적으로 만들어진 온갖 중상모략과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해군과 함께 해병대내의 정보, 수사력을 집중하여 사건을 확대 왜곡하였습니다.
▨ 사건 내용 및 본질
ㅇ 해군측에서 해병대 사령관 재임기간뿐 아니라 해병대 전 기관을 망라하여
전 수사·정보기관을 동원, 혐의를 추적 조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ㅇ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에게 비리 혐의를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하자
사건 수사 일체를 국방부장관 직속인 합동조사단으로 이첩시킬 것을 지시,
국방부장관 직속기관인 합동조사단이 민간 검찰인 서울지검 특수1부와 공조하여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ㅇ 민간 검찰에서 본인의 기소혐의 유지가 어렵게 되자 이 사건 관련자들을 옷을 벗기거나,
몇일씩 잠을 재우지 않거나, 밥을 굶기거나,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하거나,
관련 진술인의 여타 범죄 기록을 가지고 형사처벌을 위협하며
전도봉 죽이기에 협조, 동참할 것을 강요하여 만들어낸 소설같은 사건입니다.
ㅇ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본인에게 공갈, 협박 및 5천여 만원이 입금된 통장과
도장을 함께 넣어, 뇌물로 공여하려 하였던 모 장군에게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으나
기소 유예처분으로 명예퇴직, 전역시키는 특혜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 음해하고 왜곡되게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악의적으로 활동해온 관련자들의 체면과 명예를
그나마 지켜드리기 위해 지금 현재는 침묵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이 사건 뒤에 가리워져 있는 진실을 밝혀드릴 것입니다.
2002년 9월 16일
해병대 22대 사령관
전 도 봉
★★★ 대한민국 해병대전우들께 고함 ★★★
해병대의 일원이 되어 보았던 사람들은 해병대의 전통·가치·제복 등에서 느끼는 감정 그 이상의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해병대만의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에 직면한 광란의 전투현장에서 솟구치는 전투의지를 불사르며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보기도 하고, 우리는 해병대라는 조직과 인연을 맺어 여러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해병대의 상관과 부하의 관계는 종적관계로 연결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쉽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상하종횡'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특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왔습니다.
50여 년 되는 짧은 역사 속이지만 6.25 전쟁과 5.16 혁명을 거쳤고, 월남전을 거쳤으며, 내ㆍ외부적인 갈등과 시대의 요구 속에 「해병대」란 그 이름이 국군조직 중에서 완전히 없어지고 제 기능을 상실한 체 「상륙병과」란 '일개의 전투병과'라는 이름으로 20여 년을 존속하여왔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해병대 구성원이 되어 보았다고 해서 해병대가 가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 자신 부족하고 허물도 많은데 해병대와 함께 하는 동안 큰 축복과 은혜를 입었기에 사람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 여기지 않고 조국과 해병대에 사심 없이 헌신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이 마음속 약속을 소홀함이 없이 지켜왔습니다.
1998년 2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신임 국방장관'으로부터 '군 통수권'을 위해 육·해·공·해병대 주요 지휘관이 자리를 비워 주는 것이 좋겠다는 요청에 따라 육군의 주요 지휘관과 함께 임기를 2개월 남겨두고 그 해 4월 '이갑진 장군'에게 해병대 지휘권을 인계하고 명예롭게 정상적인 전역식을 치르고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 왔습니다.
해병대와 함께 하였던 시간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더 없는 영광이요, 명예요,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이 지면을 보고 계신 여러분 모두의 도움과 성원은 '제22대 해병대사령관'으로서 저의 경력에 더 없이 귀한 영광과 빛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전역한 후 지난 3년 6개월 동안 저에게 불현듯 다가왔던 예기치 않은 시련과 고난의 시간들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산 자가 사는 것에는 익숙해 있었지만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명예와 자긍심 등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다 빼앗기고 이미 죽은 자가 되어버린 자가 산 자처럼 살아 있어야 했던 경험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시절을 3년 6개월이 넘게 제 자신에게 주어진 허물과 불명예보다는 저를 따랐던 해병대란 그 이름에 더 하여진 오욕을 씻기 위해 저의 모든 재산과 투지를 다해 힘겹게 법적 투쟁을 해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와 다가오는 역사 앞에 우리 모두 해병대란 이름 앞에 겸허하게 바로 서서 우리들 내면 속에 무섭게 숨어있는 '비방', '갈등', '증오', '편견', '편가르기', '아집' 등 버려야 할 유산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새 출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년이 넘도록 저와 제 부하들 그 가족들에게까지도 씌어졌던 수없이 많은 혐의를 국방부와 정부의 사정기관에 의해 조사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평생을 바쳐 몸담았던 해병대의 현역 및 예비역의 음해성 유언비어와 정권의 표적사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 판결은 지난 9월 18일(화요일) 대법원 1호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 졌고, 10여 일이 지난 9월 29일 추석을 하루 앞둔 날 보도한 것을 저로서는 어떻게 해 볼 길이 없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한 검사의 이유를 받아들여 2심에서 최초 '뇌물수수죄'가 아닌 '뇌물약속의 죄'에 해당하는 '미진한 부분'을 다시 심리 판단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파기 환송'하는 판결을 두고 이제 다시 시작될 2심의 심리판단을 남겨둔 체 유죄인양 의도적으로 언론에 보도케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정을 뒤에 알게 될 것입니다.
제 자신 해병대란 조직에서 큰 은혜와 사랑을 입었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조건 없이 갚아야 할 빚진 자입니다.
빚을 갚은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에게는 나라를 위해 제 자신이 좋은 군인이 되는 것, 제 주변과 제 부하들을 좋은 군인이 되게 노력하는 것, 훈련병에서 사령관에 이르기까지 진실은 이 나라 국민과 국군 속에서 사랑 받고, 존경받고, 신뢰받는 것.「해병대」란 그 이름 석자에 스민 무수한 목숨과 영욕의 상처!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하며 우리의 옛 명예와 명성과 자존심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지난 25년 간 지속적인 우리의 염원이었던 해병대 원상회복과 지휘관계 개선 노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동서남북, 국내외를 불문하고 열화와 같았던 염원과 성원, 수없이 많은 날, 그 간절했던 눈물의 기도를 잊을 수 가 없습니다. 때로는 직위를 내 놓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을 당하기도 하고, 두렵고, 떨리는 시간, 잠 못 이룬 수없이 많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부하들이 하나 둘 관계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군복을 벗어야 할 위기를 당하기도 하고 수장으로서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저민 추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산더미 같은 탄원서를 들고 다니던 예비역 형제들, 뙤약볕에 국방부 청사 앞, 국회의사당 앞, 심지어 미국 워싱턴 대사관 앞에 서있던 의로운 형제들, 모군 해병대원상회복추진위원회 회원들!
우리는 소수정예! 물러 설 곳이 없었던 의로운 형제들! 그 간절했던 해병대 사랑과 소망을 함께 기도하고 성원해주신 국내외 예비역 전우와 가족 여러분! 특히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미주전역, 해병대전우회 연합회와 각 지역 전우회 회장님과 회원들! 미해병대 전우들! 국경을 넘나든 남다른 해병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큰 감명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관심 있게 읽으셨던 주간지「뉴스피플」신. 장군의 비망록 '전 해병대사령관 전도봉 장군편'은 잡지사의 사정으로 8회를 연재 후 휴간되었습니다.
이미 8회에서 소개하였던 바와 같이 해병대 '법제처 상륙작전', '사단장 시절 해군참모총장과 사령관과의 갈등', '해병대 원상회복 비화', '사령관 시절 군 수뇌부와 청와대간의 갈등' 등 본격적인 비망록이 연재될 예정이었는데 안타깝게 여깁니다. 또 다음 기회가 분명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그간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해병대전우님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해병대 제22대 사령관 예비역 해병중장 전도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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