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병대 전우28

해병대 최병길 소령·신연주 대위 부부, 전우를 위해 기부 복지 증진에 써 달라 500만 원 기부 해병대 부부 장교가 전우들의 복지 증진에 써 달라며 500만 원을 쾌척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해병대2사단 군수참모실에 근무하는 최병길 소령과 육아휴직 중인 신연주 해병대위가 주인공이다. 대학교 졸업 후 해병대 학사장교로 임관한 최 소령은 금전적인 이유로 고민하는 전우들을 지켜보면서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이에 최 소령은 결혼 전부터 전우들을 돕기 위해 현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신 대위와 부부의 연을 맺은 최 소령은 지금의 가족을 있게 한 해병대에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아내에게 전달했다. 최 소령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한 신 대위는 결혼 500일과 자녀 탄생을 기념해 500만 원을 해병대사령부 병영정책과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기부금은 장학금, .. 2023. 4. 6.
“도전정신 갖춘 해병대, 국회 지원 응원해” 해병 917기 장호경 수석보좌관 인터뷰 도중 해병대를 상징하는 ‘빨간 머그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유심히 보니 독수리, 별, 닻이 새겨진 진짜 해병대 굿즈(goods)였다. 해병대 사랑이 유별난 주인공은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장호경 수석보좌관. 해병대 특유의 끈끈한 전우애는 국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역한 지 20년이 돼 가지만, 지금도 해병대 정신으로 숱한 난관을 극복해 가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사진=이원준 기자 해병대서 강인한 의지 키워 “스물한 살 때 해병대 입대를 결심했습니다. 스스로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한 정신력을 키우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해병대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신 큰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죠.” 해병 917기인 장호경 수석보좌관은 해병대2사단 통신대대에서 복무했다. 20.. 2023. 3. 21.
월남전 참전한 최실경 쥬쥬동물원 원장의 삶 "저의 오른팔은 나라에 바치고, 남은 삶은 어린이를 위해…" "아이들이 동물을 만지는 모습에 너무 행복합니다" 두 번의 유치장 신세 동생이 숨진 이곳동물원은 곧 제 삶 ◆해병 "따쿵!" 1967년 8월 17일 저녁 6시 베트남 추라이 벌판에 총성(銃聲)이 울려 퍼졌다. 저격수의 총격을 신호로 베트콩의 박격포가 쏟아졌다. 최실경(崔實京·63) 해병 청룡부대 상병은 좋은 표적이었다. 그는 공석(空席) 중인 하사관 대신 사병들을 이끌고 정찰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헬기 안이었다. 월남전에 파병된 해병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따쿵 소리를 들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그 소리를 못 들으면 저 세상 사람이다.' 피에 물든 군복 속에 자기 오른팔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온통 박격포 파편(破片)이 박.. 2023. 3. 2.
해병대 군수단 최한민 상병, 아버지에 간 이식 “해병대 정신으로 두려움 극복” 간 질환을 앓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이식한 해병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해병대 군수단 최한민 상병. 최 상병은 지난해 3월 간경화를 앓던 아버지가 건강 악화로 간 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자 한치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간을 이식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의 건강을 우려해 수술을 반대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우선이라는 아들의 간곡한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수술을 하더라도 최 상병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료진 설명도 있었다. 최 상병은 그날부터 아버지에게 건강한 간을 선물하기 위해 몸 관리를 시작했다. 평소 술·담배를 하지 않던 그는 운동과 식단관리에 전념했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으며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했다. 부자의 간 이식 수술은 최근 서울.. 2023. 1. 17.
월남전 참전한 최실경 쥬쥬동물원 원장의 삶 "저의 오른팔은 나라에 바치고, 남은 삶은 어린이를 위해…" "아이들이 동물을 만지는 모습에 너무 행복합니다" 두 번의 유치장 신세 동생이 숨진 이곳동물원은 곧 제 삶 ◆해병 "따쿵!" 1967년 8월 17일 저녁 6시 베트남 추라이 벌판에 총성(銃聲)이 울려 퍼졌다. 저격수의 총격을 신호로 베트콩의 박격포가 쏟아졌다. 최실경(崔實京·63) 해병 청룡부대 상병은 좋은 표적이었다. 그는 공석(空席) 중인 하사관 대신 사병들을 이끌고 정찰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헬기 안이었다. 월남전에 파병된 해병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따쿵 소리를 들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그 소리를 못 들으면 저 세상 사람이다.' 피에 물든 군복 속에 자기 오른팔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온통 박격포 파편(破片)이 박.. 2023. 1. 16.
'해병대' 이정, 늠름한 훈련 모습 공개 해병 이정(28·본명 이정희)의 늠름한 훈련 모습이 공개됐다. 14일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은 '귀신잡는 해병대는 평소 어떤 훈련을 할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해병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공개하며 이정의 훈련 장면을 함께 실었다. 공개된 사진에서 이정은 전우들과 IBS( 공기주입식 소형 고무보트)를 통해 해안에서 상륙 훈련을 하고 있다. 다소 힘든 듯 이를 악문 모습이지만 눈빛만큼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이 가득 차 있어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한편 이정은 지난해 10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현재 해병대 사령부 본부중대에 근무하고 있다. 2023. 1. 8.
[내가 한창때는] “해병대 정신으로 힘든 업무도 척척” 사변통 피난길에 나를 잉태한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경찰관인 아버지의 신분을 속이고 누님 셋과 형님 둘을 데리고 무사히 피난을 마치고 돌아와 날 낳으셨으니 말이다. 당시의 생활상은 말할 수 없이 피폐했다.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먹을것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먹지’ 라고 서슴없이 말하지만 난 지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라서 남보다 키가 작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키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랐다. 지금도 정정하신 둘째 형님은 어려운 집안 사정을 고려해 육군 이기자 부대에서 근무하다 월남전에 자원했다.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형님은 병장 봉급을 받아 매달 집으로 보내주곤 했다. 지금 기억에 형은 무사히 입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큰 나무박스에 .. 2023. 1. 4.
포항 물난리때 장갑차로 구조 활동… 헌혈 봉사도 앞장 [제13회 위국헌신상] 전재성 해병대 상사 전재성 해병대 상사와 가족이 27일 위국헌신상 시상식이 끝난 뒤 경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전재성 해병대 제1사단 상사는 국립부산해사고교를 졸업한 후 2006년 해병대 부사관 303기로 임관했다. 부산해사고를 나온 뒤 3년간 배를 타면 병역 면제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해병이 되기 위해 입대를 선택했다. 그는 상륙 장갑차 대대에서 조종수, 차장, 정비반장, 지원반장 임무를 수행하며 상륙 장갑차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했다. 연평부대, 백령도 경계 증원, 코브라 골드, 칸 퀘스트 훈련 등 각종 훈련과 파견 등을 도맡아 상륙 장갑차 운용 전문성을 쌓았다. 지난 9월 태풍 힌남노 당시엔 긴급구조반 상륙장갑차 조종수로서 포항 .. 2022. 12. 29.
아르헨티나 해병대 수석 하사관 라울 에밀리오 로보 "해병대가 되는 것이 나에게 전부입니다" 처음으로 자원 봉사 병역의 일원이었던 그는 그의 경력의 가장 높은 열망 인 해병대의 구성 영장 장교의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수석 하사관 IM 라울 에밀리오 로보는 라스테니아 출신인 투쿠만 출신입니다. 그는 의무 병역의 징집병으로 아르헨티나 해군과 처음 접촉 한 후 자원 봉사 부대에서 복무하고 나중에 영구 군인의 계급에 합류했습니다. 해병대 구성 요소를 담당하는 부사관이 되는 것은 해병 부사관이 열망하는 가장 큰 소망이며 그는 두 번째 자원 봉사 부대 선원으로 경력을 시작한 첫 번째 사람이 되는 인센티브와 함께 그것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올해 2 월 22 일에 취임했으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방 남쪽의 푸에르토 벨 그라노 해군 기지에 위치한 해병대 사령부에 배정되었습.. 2022. 12. 28.
미 해병대 영웅 - ‘레이몬드 G. 데이비스’ 대장 1915년 1월13일 조지아州 피츠제럴드에서 태어난 레이몬드 G. 데이비스 장군(Gen. Raymond G. Davis)은 1938년 조지아공대를 졸업 후 해병대소위로 임관하여 군문(軍門)에 몸담았다. 데이비스 장군은 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 과다카날과 펠릴리우 전투에서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치열한 공방전 끝에 자신이 지휘하던 대대의 소대장 전원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후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2년 전쟁 기간 중 美 의회의 이름으로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Medal of Honor’(명예훈장)를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받았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 당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장군은 제3해병사단을 지휘하여 1969년 ‘수훈훈장.. 2022. 12. 23.
43년간 봉사활동… 박희수 해병대 안성시전우회장 "노인들 행복·건강한 삶위해 남은 인생 도우미 역할" 43년간 안성의 곳곳을 누비며 봉사활동을 펼쳐온 박희수 해병대 안성시전우회장은 힘이 닿는 데까지 지역 노인들의 도우미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2022.12.15 안성/민웅기기자 muk@kyeongin.com "봉사라기보다는 내 고향 안성을 좀 더 나은 도시로 발전시키는데 작은 힘을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43년간 안성의 곳곳을 누비며, 때와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각종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이 있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박희수(61) 해병대 안성시전우회장이다. 박 회장은 지역에 그 어떠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때는 물론 궂은 일도 마다치 않고, 말없이 묵묵하게 각종 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로 정평이.. 2022. 12. 21.
미해병대 MEET JOY MARIA KITASHIMA, THE MARINE CORPS’ 1ST FEMALE FORCE SERGEANT MAJOR US Marine Corps Sgt. Maj. Joy Kitashima, center, sergeant major of Marine Corps Installations Pacific-Marine Corps Base Camp Smedley D. Butler, answers a question about leadership during the Opha May Johnson Symposium at Tengan Castle, Camp Courtney, Okinawa, Japan, July 2, 2021. Next year, Kitashima is slated to become the senior Marine enlisted advisor at III Marine Expeditionary Force in Okin.. 2022. 12. 20.
해병대 인물 - 박상범 경호실장 :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다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다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인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일어난 「文世光(문세광) 사건」이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긴 것은 陸英修(육영수) 여사의 죽음이다. 陸여사의 죽음과 함께 국민들이 기억하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총격이 나자마자 단상으로 뛰어올라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연단 앞에서 총성이 난 방향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는 젊은 경호원의 모습이다. 목숨을 건 「총알받이」로서의 「본능적 임무」가 국민들에게는 「멋진 모습」으로 비쳐졌을 이 용감한 경호원이 金泳三(김영삼) 대통령 시절 최초의 민간인 출신 경호실장을 지낸 朴相範(박상범·62) 前 보훈처장이다. 朴相範 前 경호실장에게는 「死線(사선)의 불사조」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경호업무를 하면서 여러 차례 죽음.. 2022. 12. 16.
그리운 아들… 연평도 피격 12년 23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전 12주년 전투 영웅 추모 및 전승 기념식에서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 문광욱 일병의 유족들이 비석에 새겨진 서 하사와 문 일병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이날 열린 행사에는 두 전사자의 유족 외에도 참전용사, 해군과 해병대 관계자 등 200명이 참석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 도발에 맞서 해병대 연평부대가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한 전투로, 당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22. 11. 26.
"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군인이었습니다"(조선일보) [연평도 포격 1년] 방탄모에 불 붙은 줄도 모르고 싸웠던 임준영씨 "사람들 연평도 잊어가지만, 우린 절대 못잊어" 그때 그 병사들은… "대응사격 왜 충분히 못했는지 아직도 아쉽습니다 그날 북한의 도발에 지금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려, 지금이라도 해병대가 부르면 다시 입대해 싸우고 싶어" "화염이 치솟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K-9 자주포를 쏴야 한다는 생각 밖엔 없었습니다." 임준영(22)씨는 1년 전인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 상병으로 북한의 포격 도발에 맞서 K-9 자주포를 쐈다. 방탄모 외피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에 나섰던 바로 그 해병이다. 방탄모에 붙은 불길은 어느새 턱 끈을 .. 2022.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