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3-해군사관학교 시절 | |
이해를 돕기 위해 ‘해방병단’이니 ‘해군병학교’니 하는 낯선 명칭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둬야 하겠다. 해방병단이란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손원일 제독이 광복 후 주머니를 털어 만든 사설군사단체였다. 이것이 조선해안경비대로 발전했다가 정부수립 후 탄생한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가 됐다. 해군병학교란 메이지 초기 일본의 해군사관학교 명칭이었다.손제독은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 창설과 함께 해군사관학교 창설을 서둘렀다. 무엇보다 신생조국의 해군장교 양성이 시급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병단창설 1개월여가 지난 12월 중순, 그는 간부들에게 사관후보생 모집공고를 내도록 지시했다. 해군장교 양성 시급 해사 창설 내가 부산에서 그 벽보를 본 것이 46년 1월이었으니 잘못했으면 응모도 못 해 보고 모집이 끝날 뻔했다.해군병학교는 46년 1월 16일 창설됐다. 미군정청 지원으로 진해항 옛 일본 해군기지 항무부 건물에 문패를 달았지만 워낙 급조된 교육기관이어서 초창기에는 학교라고 말하기 거북한 면모였다. 창고 같은 외관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며칠 지난 1월 22일 지금의 해군군수사령부 본청 지역에 자리 잡았던 해방병단총사령부 구내로 교사가 이전됐다.새 교사는 항무부 건물보다는 좀 나았다. 그러나 보급창으로 쓰이던 일본식 목조건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해군병학교라는 이름은 일제 잔재다. 해군사관학교라는 말을 쓰지 못 하던 시대, 광복의 기쁨과 열광이 식지 않은 군정시대 초기에 패전국이 쓰던 이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이 딱하기만 하다.그러나 이 학교는 우리 군 역사상 제일 먼저 창설된 사관학교라는 점에서 나는 무한한 자부심과 애착을 느낀다. 일제로부터 막 독립해 나라를 만들어 가던 시대, 맨주먹에 뜨거운 가슴만으로 부딪친 젊은 날의 추억이 올올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해군병학교란 일본이 메이지 유신 단행 5년 만인 1869년 해군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사관 양성학교의 정식명칭이었다. 일제가 건립한 시설물에서 일제가 두고 간 보급품을 이용해 미국이 지원하는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우리는 언제쯤 번듯한 시설과 환경을 갖게 될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보급품 대부분은 일제가 경황없이 쫓겨 가느라고 두고 간 것들이었다. 생도 제복은 엉뚱하게도 옛 일본 해군 항공소년병들을 위한 것이어서 우리들 몸에는 잘 맞지 않았다. ‘요카렌’(豫科練)이라 불리던 해군소년항공학교 예과연습생 제복은 나처럼 체격이 큰 사람들에게는 너무 작아서 단을 내고 단추를 늘여 달아야 했다. 창고에서 찾아낸 것이 그뿐이었으니 달리 방도가 없는 일이었다. 훈련복은 일본 육군 전투복이었다. 모자는 모표도 계급표시도 없는 일본 해군 것에 육군 군화를 신었다. 보급품 부족 죽으로 허기 채워 우리는 늘 배가 고팠다. 그 시절은 다른 분야 종사자도 다 그랬다.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아 군대 대접을 받지 못 하던 초창기에는 예산이 없었다. 보급계니 군수과니 하는 조직도 없던 시절이다. 진해 시내 옛 일본군 창고를 뒤져 먹을 것이면 닥치는 대로 실어왔다. 한창 먹성이 좋은 나이에 콩가루·밀가루 죽을 먹고 고된 훈련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저녁식사는 딱딱하게 굳은 빵조각이 나왔는데 그나마 너무 부족해 우리의 신경은 온통 먹을 것에 집중됐다. 한동안 간식으로 나오던 건빵이 끊긴 뒤로는 주린 배를 참지 못한 생도들이 취사반을 습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해방병단사령부 취사반 요원은 몇 안 됐다. 간부들이 잠든 한밤중 생도들이 떼 지어 몰려가 남은 음식에 손을 대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허기를 채우는 생도들이 늘어나자 취침점호 이후의 일상 행사처럼 굳어져 말썽이 난 뒤로는 자제하게 됐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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