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6-구축함 실습시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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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함 실습생활에서 잊혀지지 않을 부끄러운 일은 배멀미에 시달린 기억이다. 바다 사나이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난리를 쳤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겁다. 그러나 어쩌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예기치 않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사람 몸의 생리가 아닌가. 연안을 항해할 때는 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큰 바다에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배멀미 시달리다 완전 탈진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Rolling)과 아래위로 흔들리는 피칭(Pitching)이 동시에 일어나면 처음 겪는 사람은 예외 없이 주저앉게 된다.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해 난간을 붙잡고 이겨보려고 애쓰다가 속에 있는 것을 다 내놓게 되면 완전히 탈진하게 된다.생지옥이 따로 없다. 한 순간만이라도 그 괴로운 어지럼증에서 벗어 나고 싶어진다. “저기, 저기에 좀 내려주세요.”동기생 몇 명이 선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바위섬을 가리키며 미군 장교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콧방귀였다.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듯이.뱃속이 완전히 비어 허기에 지쳤는데도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들큼한 빵과 닝닝한 스프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고추장과 김치 국물만 어른거렸다. 그러나 그런 게 있을 수 없다. 배안은 작은 미국이었다. 매점이 있어 응급 약이라도 사 먹어 봤으면 했지만, 수중엔 달러가 한 푼도 없었다.울렁이는 속을 비우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봐도 허사였다. 양변기에 익숙하지 않아 일을 보아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 차례 호된 ‘신고의식’을 치르고 나서부터는 누구나 고추장 같은 비상식품을 숨겨 배를 타게 된다. 그게 늘 말썽이었다.사물함 깊숙이 숨겨 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먹으며 속을 달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상실습 금방 터득 모두 놀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함장은 부하들에게 우리 생도들 주머니를 뒤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그걸 넣고 다닐 사람은 없었다. 의심스러운 물건이 발견되지 않자 미군 장교들은 우리의 옷을 모두 벗기고 샅샅이 뒤졌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미군이 아니었다. 그들도 고약한 냄새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침실을 모두 뒤진 끝에 사물함 깊숙이, 또는 백 속에 감춰 뒀던 고추장 항아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것들은 모두 압수돼 바다에 버려졌다. 아깝지만 규칙이 그러니 도리 없는 일이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자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1946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구축함이 잠시 부산항에 입항한 틈을 타 손원일 제독이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배에 올랐다. 손제독을 반가이 맞은 함장은 뜻밖에 우리를 칭찬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관생도들은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우리가 몇 년을 두고 익힌 것을 한국 생도들은 몇 달 사이에 터득해 버렸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그러면서 그는 “웰 던, 웰 던!”(Well done, Well done)을 연발하더라는 것이다. 그 소문은 모든 구축함에 쫙 퍼졌다. 그때부터는 우리를 대하는 미군 장병의 태도도 달라보였다. 조함이나 함 운영 실기를 빨리 익혀 한 사람의 장교 몫을 하게 된 것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는 실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함정용어와 작전 이론, 그리고 영어회화에 이르기까지 임관 후 닥치게 될 실제에 대비하려는 생각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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