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2- 장 총통 환영 파티 “오늘 귀국의 현명하신 영수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 지난날의 정을 나누게 된 것을 평생의 가장 유쾌한 일로 생각합니다.” 의장대를 사열한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진해 통제부 안에 마련된 영빈관(해군공관)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주한국 대사를 시켜 이렇게 시작되는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이대통령과 이범석 총리 등을 옛 친구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우리 국민들은 그에게 무한한 친근감을 느꼈다. 이대통령도 이철원 공보처장을 통해 환영사를 발표했다. “…이번 회담에서 어떤 문제건 상정될 수 있겠지만, 아직은 하등의 계획이나 제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태평양동맹에 대해서는 완전한 의견교환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바입니다.” 시원한 밤바람 맞으며 우의 다져 회담의 목적이 ‘태평양동맹’ 문제임을 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 간 사전협의가 있었다고 한다. 자유중국 측은 ‘ 극동반공연맹’이라고 범위를 좁혀 말했으나 이대통령은 태평양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 했다. 이 동맹은 두 나라만의 합의로 될 수 없는 문제여서 한동안 시일을 끌다가 1954년 6월 15일 역시 진해에서 ‘아세아민족반공연맹’이라는 이름의 비정부기구로 발족됐다. 이 기구는 90년 ‘아세아·태평양자유민주연맹’으로 발전됐다. 저녁이 되자 이대통령은 별장 잔디밭에서 환영연을 베풀었다. 칵테일파티였다. 그 뒤에는 밤바다 산책이었다. 보트를 타고 바다를 달리며 시원한 밤바람 속에 늦도록 우의를 다졌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장 총통이 부인을 동반하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숙소인 해군공관으로 돌아왔는데, 그날따라 모기가 극성을 부려 국빈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해군공관은 통제부 안 숲속에 일제 때 지은 건물이어서 방충시설이 잘 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모기향이나 전자퇴치기가 있는 시대가 아니어서 문제는 심각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모기장인데, 그걸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민망하기 짝이 없게 된 손원일 제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기장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밤중에 비상이 걸렸다. 방방을 뒤져서라도 모기장을 가져오라는 통제부사령관 명령은 용케 이루어졌다. 가까스로 모기장 하나를 구해 장 총통 방으로 보낸 뒤에야 우리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식사 문제는 해군장교 부인들이 총동원돼 해결했다. 손제독 부인 홍은혜 여사는 요리 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장교부인들을 수소문해 정성껏 준비했다. 장 총통이 원래 소탈하고 검소한 사람이어서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다. 양국 해군사관생도 교류 제안 다음날인 8월 7일 오전 10시부터 영빈관 회의실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62세의 장 총통은 열두 살 연장자인 이대통령에게 깍듯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오찬이 끝나고 실무진이 공동성명을 준비하는 사이 장 총통은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역시 그런 귀빈을 처음 맞은 학교에서는 생도들까지 바짝 긴장했다. 연병장에서 사열을 받은 장 총통은 교장실로 자리를 옮겨 김영철 교장과 환담하면서 양국 해군사관생도 간의 교류를 제안했다. 이 제의는 훗날 양국 4학년 생도들이 순양훈련 때마다 서로 방문하는 계기가 됐다. 그때 장 총통을 영접한 인연은 64년 해병대사령관 시절 자유중국 방문 때 지나친 환대를 받은 계기가 됐다. 내가 공씨라는 것을 의식한 그가 나와 면담하는 자리에 공자의 77대 적손(孔德成)을 배석시켜 준 친절을 지금도 잊지 못 한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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