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청룡회는 해병대사관후보생출신 해병대장교회로 1980년 4월 12일 재향군인회 산하 서해구락부 (해병대/해군 예비역장.사병/문관 친목단체)소속 단체로 공식 창립됐다. 이로써 본회는 해병대창설 이후 최초의 해병대 예비역 공식단체로 기록됐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재향군인회 산하 예비역 군관련 단체 해체명령에 의해 창립 8개월여 만에 강제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보관 중이던 창립관련 문서들을 포함한 모든 자료들도 함께 파기됐다.
본회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82년 4월 12일 각급 정보기관의 감시망를 피해 명칭을 “토룡회”로 바꾼 뒤, 정기적인 비밀회합과 비공식활동을 통해 조직의 명맥을 유지했다.
1984년 4월 15일, 본회는 오랜 침묵의 세월을 마감하고 “해병대청룡회” 명칭복원 선언과 함께 공식 활동을 재개했다.
이듬해인 1985년, 해병대사령부 재창설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해병대사령부 해체일인 10월 10일을 택해 전군 예비역단체 최초 인명록인 “해병장교가족” 을 출간하고, 한국프레스센타에서 출판기념회 를 성황리에 개최함으로써 본회의 건재함을 세인들에게 각인시켰다.
아쉽게도 당시 출판 관련 자료를 포함한 각종 문건들 역시 조직보호차원에서 대부분 파기됐으며, 이 때부터 1987년 6.29선언 이전까지 본회관련 각종 자료들을 문서화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본회의 중단 없는 모군사랑과 해병대 현역과의 유기적인 협조관계는 마침내 1987년 11월 1일 해병대사령부 재창설이라는 역사적 쾌거를 이뤄냈다.
해가 거듭되면서 해병대사관후보생 기수 증가에 따른 조직 확대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89년 4월 1일 KOEX에서 “확대개편대회”를 열어 30기 이후 전체 기수로 정회원자격을 확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조직 확대개편과 그에 따른 재정비를 마친 뒤, 본회는 곧바로 “국방부 8. 18계획”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해병대 지위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또 해병장교가족 초판본을 선보인지 7년만인 1992년 2월 15일, 세종문회회관에서 “해병장교가족 수정 증보판” 출판기념회를 성대히 열어 다시한번 본회 위상을 제고시켰다.
이후 사회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 본회는 1996년 10월부터 해병대전우회 전국연합회장단과 함께 해병대독립추진위원회와 모군원상회복추진위원회를 연이어 발족시키면서 “모군원상회복운동”을 선도했다.
모군원상회복운동 과정에서 난무했던 온갖 방해공작과 수많은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이를 오로지 해병정신 하나만으로 극복한 본회는 드디어 1997년 12월 24일, 해병대 예비역과 현역들의 염원인 “해병대 지휘관리 개선 법안” 국회통과를 이끌어 냈다.
2006년 4월 15일, 정회원 자격을 해병대사관후보생출신 해병대장교 전체기수로 확대한 본회는 명실공히 모든 해병대장교 및 해병 관련 단체들의 중추로서,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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