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 52사단 기동대대
지난달 27일 오전 10시쯤 서울 여의도동 한 주상복합건물 앞쪽에 군용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고 방탄조끼와 방독·방진 마스크, K2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 20여명이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도로 옆 인도에 나있는 환기구 문을 열고 땅 밑으로 쏜살같이 몸을 숨겼다.
이들이 침투한 곳은 여의도 지하공동구(地下共同溝).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대대장 구우회(44) 중령의 바쁜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흘렀다.
"적 2명이 28번 환기구에서 23번 작업구로 이동 중, '알파'는 23번 작업구를 봉쇄하고 '브라보'는 26번에서 대기할 것, 이상!"
'알파' 조장 윤중보(22) 하사는 "23번 작업구 봉쇄하겠음. 이상!"이라고 짧게 답한 뒤 조원 4명과 숨을 죽인 채 나아갔다. 사람 2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통로를 이들은 적외선 야간 투시경에 의존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앞쪽에서 총탄이 날아오면 피할 수도 없어 선두에 선 병사 2명은 가로 80㎝×세로 120㎝ 방탄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전진했다.
윤 하사가 "전방 50m, 적 2명 식별"이라고 다시 무전을 날리자 대대장이 "통신을 자제하고, 살상 반경까지 유인해 기습사격하라"고 지시했다. '알파'와 '브라보'조 대원들은 공동구 앞뒤에서 '토끼몰이'식으로 적군을 압박, 30여분 만에 사살하면서 작전을 마무리했다.
이날 도심(都心) 땅 밑에서 전투 작전을 벌인 이들은 수도방위사령부 산하 52사단 기동대대 소속 장병(將兵)들. 훈련명은 '지하공동구 방어 훈련'이었다.
'지하공동구'란 땅 밑 4~5m 아래 배전(配電)선로와 유선방송 케이블, 초고속정보통신망, 상수도관, 난방용 온수관 등 각종 생활 관련 주요 공급시설이 한꺼번에 몰려 지나는 구조물을 말한다.
좁은 터널처럼 생겼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밑에 미로(迷路)처럼 얽혀 그물같이 뻗어 있다. 서울·부산·대전 등 주요 대도시에는 빠짐없이 있고, 서울의 경우 1978년 여의도를 시작으로 목동·개포동·가락동·상계동·상암동 등 6개 지역에 총 길이 32.8㎞가 깔려 있다.
이 '지하공동구'는 통신·금융·주거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도시의 '중추 신경'이라 전시(戰時)에 적들의 주요 타격 목표가 된다. 그래서 평소 군(軍)이 주축이 돼 이 시설을 방호(防護)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땅 밑에서도 치열한 가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주요시설'이라 출입도 까다롭다. 환기구 입구는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입구에 설치된 센서(경보장치)는 침입자들을 24시간 감시한다. 지정된 직원 외에 출입하려면 공문을 보내 국가정보원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의도 일대에만 환기구 40여개와 출입구(작업구) 20여개가 있다.
52사단 기동대대는 한 달에 2번씩 이 방어 훈련을 위해 시내 원정을 떠난다. 깜깜한 지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평소 이동과 사격 훈련도 주로 밤에 한다. 서울 시내 각 지하공동구 지도를 놓고 이동 경로를 외우는 작업도 필수다. 대대 박청희(25) 중위는 "땅 위 길은 잘 몰라도 땅 밑은 훤하다"고 말했다. 부대 정식 애칭은 '용호(龍虎)'지만 이들은 농담처럼 '두더지 부대'로 바꿔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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