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01.21
* 청와대 습격 사건 발발, 일련의 대통령 암살시도, 북 특수부대 남공
* 북, 프로그 지대지 미사일 시스템 완비, 대 수도권 공략 계획 완료
* 카터 행정부 주한미군 일부 철수 시작
* 박대통령 자주 국방 사업 추진, 그 일환으로 유도탄 사업부 발족
1971.12.26
* 유도탄 사업 극비 지시, 박대통령 직접 진두 지휘
* 유도탄 개발 지시 [극비]
[방침]
1. 독자 개발체제 확립
2. 지대지 유도탄 개발, 75년내 국산화
3. 국내 기술진 총동원, 외국 전문가 초빙, 기술 제휴 모색
[추진계획]
1. 용이한 부분부터 착수
목표 유도거리: 200km 내외 근거리
탄두: 전략 표적 파괴 목적, 대량 파괴효과와 동시에 교환성 유지
2. 미사일 기술 연구반을 ADD(국방 과학 연구소)에 부설, 공군에 '미사일 전술반' 설치
* 남한 공군, 미사일 작전 운영 계획 작성:
- 작전계획에 의거, 항시 미사일 목표 대기
- 비상시 발사 단추를 누름과 동시에 목표물 가격 실현
1972.04.14
* 유도탄 개발 명령 하달, '항공 공업'이라 칭하여 기밀 유지
* 74년내로 단거리 전술 유도탄 개발(프로토 타입, 1년 단축)
* 76년내로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후에 K-1로 명명) 개발
05.01
* 개발단 발족, ADD, KAIST, KIST, 공사, 해군, 육사, 합참 정보국, 중앙 정보부 참여
05.16
* 미 정부, ADD 연구 개발 체제 및 관리제도 교육 제의, 소장 ???씨 방미. 화포, 탄약 제조공장 시찰 간소화, 유도탄 연구소 시찰에 중점, 기밀 유지
05.22
* 남한측 시찰단 각 유도탄 개발국 시찰,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이스라엘, 프랑스로부터 관련 자료 수집
- 프랑스의 SNIAS, SNPE(세계 3위, 유럽 최대 화약회사), 대륙간 장거리 미사일용 추진제 생산장면 공개, 기술 및 차관 제공 제의
- 기술제공 범위에 따라 500만달러 이상 가능, 연리 2% 2년 거치 10년 상환
09.30
* 항공공업(유도탄) 추진 계획서 완성:
- 추진제 제조의 경우 기술 도입 완료시 즉시 국산화 가능
-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 불필요
- 유도탄 탄체 제작 공정, 특수 장비 불필요, 국내 제작 가능
- 유도장치: 국내 기술 전무
100% 기술 이전 불가능
주요 부품 국산화 불가능
- 근거리 유도탄에 개발에 총력 집중
- 점진적인 사거리 연장
- 신 유도기술, 기술축적 발전에 발맞추어 순차적으로 개발
- 신 유도기술, 기술축적 발전에 발맞추어 순차적으로 개발
1973.02.23
* 연구장비 심의 위원회 발족
* 내부 문제로 개발 착수 지연됨
1974.05.25
* 박대통령 '유도탄 개발에 관한 기본 방침' 재가
* '율곡 사업'으로 명명, 율곡 자금 조성
1974.09.28
* 국방부, 연구소 대지 구입, 연구소 착공, '신성 농장'이라는 가명 사용
* 24시간 돌관 작업 감행, 보안대에서 직접 경비
* 박대통령 수시로 공사 현장 방문, 독려
* 미 정부, ADD발주 장비, 유도탄 개발 계획, 소위 '대전 기계창' 정보입수, 대정부 압력 가중
* 박대통령, 프로그 미사일을 구실로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1000파운드 합의에 성공 (180km= 휴전선-평양 직선거리)
* 미 정부, 기술 지원 요청 묵살
1975
* 본격적 투자 시작, 62억원 지원
* MD(맥도널 더글라스,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 생산자)경영난 악화
* 남한 정부, 기술지원 교섭 시도, 미 국방부를 의식한 MD측 거절
* 남한 정부, MD에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 사거리 연장 공동 연구 제의, MD, 연구비 명목 3천만달러 지원 요구
* 남한 정부, MD와 협상 개시:
- 예비 가능성 검토, 실제 설계, 개발생산으로 이어지는 3단계 계획 합의
- 첫단계에서 180만 달러 지원, ADD연구요원 10명 개발참여 합의
* 남한 정부, 계약에 따라 10명의 박사급 연구원 현지 파견, 6개월간 합숙하며
모든 기초설계 재료 및 설계 방법 습득.
1976
* 57억원 추가 지원
* 현지 파견 연구진 귀국, 기술 습득 수준 검토, 독자 설계 가능성 확인
* 정부, MD와의 2차, 3차 계획 파기, 독자 노선 추진
* 추진제 방식 확정 (고체식)
- 비용 절감
- 비상시 즉시 발사 가능 (액체식의 경우 연료 주입 시간 소요)
* 정부, 나이키 허큘리스 추진제 제조업체와 접촉, 미 국무부의 반대로 기술 지원 무산
* 프랑스의 SNPE사와 접촉, 추진제 원료와 제조비법 전수 동의, 대가로 3천만 달러 요구
* 한국형 유도탄 설계에 의거, 추진제 제조에 300갤런 용량 믹서장비 필수
- 프랑스측, 50갤런 믹서까지 지원 약속
(당시 300갤런 믹서 제작은 미국이 유일)
* 재미동포 ???씨, 록히드사 파산직전 정보를 정부에 전달
* 남한 정부, 록히드사 산하의 추진제 제조업체 매각 의사 타진
* 연구 관계자, 록히드측 시설 시찰, 300갤런 믹서장비를 비롯한 모든 기술자료 및 서적 확인
* 록히드사, 국무부 허가 취득 약속, 모든 시설 매각에 합의
* 미 국무부, 일체의 기술지원을 배제한 시설 매각 허가
* ADD, 시설은 록히드에서, 기술과 원료는 프랑스에서 도입키로 결정
- 시설 확보로 프랑스와의 협상에서 우위 점령, 260만 달러에 기술도입 합의
1976.05.10
* ADD 산하 대전기계창 항공사업부, 독립기구로 정식 발족, 연구인원 500명
12.02
* 유도탄 공장 준공
* 추진제 샘플 실험 성공, 유도탄체 날개 제작 난항
* 미 제8군 사령관, 미 합동군사 고문단(JUSMAG) 단장 시찰
(JUSMAG은 미 대사 직속기관으로서 대한 원조및 정보공작을 담당)
* JUSMAG단장, 추진제 샘플 실험 참관, 한국의 유도탄 추진제 기술에 심각한 우려 표시
(나이키 허큘리스의 오리지널 추진제보다 월등히 우수한 성능을 입증함)
* 미 정부, 추진제 공장 완공과 동시에 샘플 제작에 성공하자 사전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음을 탐지함
(한국 정부의 기술노선에 대한 의구심 증폭)
* 미 국방부 안보담당 차관보, 정부에 압력 행사
- 유도탄 개발의 이유와 함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혹 제기
- 정부,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생산 중단에 따른 독자적 정비기술 확보를 핑계로 무마
* 미 정부, CIA요원 대전기계창 상주 요구, 정부의 반대로 묵살
* 미 정부, 주한 미군 철수 계획 구체화
* 남한 정부, 유도탄 완성 계획 기일을 78년 국군의 날로 확정
* K-1 유도탄과 K-2 유도탄 기초 설계 완료
* 시험 발사 계획 완료
- 1단계 = 미제 나이키 허큘리스에 국산 유도장치 조합
- 2단계 = 미제 유도장치에 국산 추진제 조합
- 3단계 = 국산 유도장치에 국산 추진제 조합
1978.04.11
* 유도탄 프로토 타입 완성, 1단계, 2차에 걸친 시험발사 실패
- 원인: 정확도에 대한 지나친 집착, 비행코스 유도 프로그래밍의 융통성 부재
- 해결: 느슨해진 비행코스 유도 프로그래밍, 목표물 가격에 중점
1978.06.24
* 3차, 4차 시험발사 성공, 1단계 완료
* 5차, 6차 시험발사 성공, 2단계 완료
09.10
* 7차, 8차 시험발사 성공, 3단계 완료(국산화율 99%)
- 소량수요부품인 유압장치의 국산화는 비경제적
09.26
* 남한, 세계 7번째의 미사일 개발국임을 선포
- '안흥 종합 시험기지'에서 내외 귀빈들을 초청한 가운데 화력 시범
- 등장 무기: 지대지 장거리 유도탄(K-1), 중거리 유도탄, 다연장 로켓, 대전차 로켓 등등 (개발, 생산 전 국산화)
- 유도탄 발사 통제실 공개
* 74년 5월 유도무기 개발 방침 공식 수립 이후 만 4년만에 계획 완료
09.27
* 일본 각 신문사의 논평
- 아사히 신문, 남한산 유도탄의 원시적인 포물선 비행 방식과 정밀도 부족을 지적하며 핵개발과 연관
09.29
* 소련 국방성, 남한의 핵개발 예고
* 미국 Aviation Week & Space Technology에 국산 유도탄 소개
* 카터 행정부, 공식 입장 표현 유보
- 한미 미사일 협약 강조
- 한국의 미사일 '독자' 개발에 양국 긴장감 고조
* 미, 7명의 사찰단 파견
- 한국측 유도탄 제조, 시험시설의 기술수준을 높게 평가,
- 이후 극동지구 전시비축 탄약류에 대한 시험 평가를 의뢰하기도 함
(이전에는 미 본토에서만 실시)
(ADD 의 달러벌이 시작)
* 미 정부, 기술제공국에 대한 정보 요구
- 남한 정부, 독자개발을 강조하며 미국측 질문 회피
* ADD, K-2 유도탄 개발 착수
- 전파유도방식인 K-1의 단점 보강
- 전파방해에 취약
- 유도중 오류시 미사일의 오동작 가능
(프로토타입 시험발사 실패 원인)
* K-2 사양:
- INS (관성 유도방식 도입)
- Fire & Forget 기능 (목표물 사전 입력)
- 보조로켓의 제거 (K-1의 경우 4개의 보조로켓 사용), 조작의 용이성을 높임
- 추진제 100% 본체장전 방식
- 문제: 관성 유도 기술 도입
미국 리턴 인더스트리 사에 기술제휴 모색, 미 국무부의 불허로 무산
프랑스와 접촉, 기술지원은 가능, 자금 문제로 결렬
일본, F-1 전투기 독자개발, 관성 유도 장치 영국 Ferranti사 제품 대량 수입
남한, Ferranti사의 관성유도장치, 유도탄 적용 가능 정보 입수
남한, Ferranti사와 계약 체결
[조건]
1. 한국내에서 조립
2. 중요 부품 생간기술 제공
3. 조립용 시설 및 장비 제공
4. 한국 기술자에 대한 훈련 제공
* 영국 정부, 협력 승인
* 미 국무부, 영국 정부에 압력 행사
- 영국 정부, 일본 F-1 전투기 개발에서의 관성 유도 기술 제공을 핑계로 묵살
* 미 정부, 대사관과 8군 사령부를 통하여 한국측에 압력 행사
- 관성 유도장치 개발 포기 요구
- 남한, 유도탄 개발 독자노선을 내세우며 묵살
* ADD, K-3 (사거리 300km), K-5 (사거리 500km) 개발 계획 수립
1979
박대통령 서거, 12.12 사태 발발
1980.07.
* ADD에 대한 1차 숙청, 유도탄 개발 핵심 인력의 감축
* 미 군사 고문단(JUSMAG) 감시 완화
1982.10.30
* ADD 유도탄 개발팀, 예상을 뒤엎고 K-2 개발 성공
- 사거리 200km, INS (관성유도방식) 국산화 성공
* 한미 관계 악화
12.??
* 전두환 정부, ADD 에 대한 2차 숙청 단행
- 2400명 연구원중 800명 감원, 유도탄 개발팀 해체
* 남한 정부, 한미 미사일 조약 재확인
1983.10.3
* 아웅산 사건 발생
* K-2 유도탄 개발 재개
* 180km 사거리 조약 유효
* 청와대 습격 사건 발발, 일련의 대통령 암살시도, 북 특수부대 남공
* 북, 프로그 지대지 미사일 시스템 완비, 대 수도권 공략 계획 완료
* 카터 행정부 주한미군 일부 철수 시작
* 박대통령 자주 국방 사업 추진, 그 일환으로 유도탄 사업부 발족
1971.12.26
* 유도탄 사업 극비 지시, 박대통령 직접 진두 지휘
* 유도탄 개발 지시 [극비]
[방침]
1. 독자 개발체제 확립
2. 지대지 유도탄 개발, 75년내 국산화
3. 국내 기술진 총동원, 외국 전문가 초빙, 기술 제휴 모색
[추진계획]
1. 용이한 부분부터 착수
목표 유도거리: 200km 내외 근거리
탄두: 전략 표적 파괴 목적, 대량 파괴효과와 동시에 교환성 유지
2. 미사일 기술 연구반을 ADD(국방 과학 연구소)에 부설, 공군에 '미사일 전술반' 설치
* 남한 공군, 미사일 작전 운영 계획 작성:
- 작전계획에 의거, 항시 미사일 목표 대기
- 비상시 발사 단추를 누름과 동시에 목표물 가격 실현
1972.04.14
* 유도탄 개발 명령 하달, '항공 공업'이라 칭하여 기밀 유지
* 74년내로 단거리 전술 유도탄 개발(프로토 타입, 1년 단축)
* 76년내로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후에 K-1로 명명) 개발
05.01
* 개발단 발족, ADD, KAIST, KIST, 공사, 해군, 육사, 합참 정보국, 중앙 정보부 참여
05.16
* 미 정부, ADD 연구 개발 체제 및 관리제도 교육 제의, 소장 ???씨 방미. 화포, 탄약 제조공장 시찰 간소화, 유도탄 연구소 시찰에 중점, 기밀 유지
05.22
* 남한측 시찰단 각 유도탄 개발국 시찰,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이스라엘, 프랑스로부터 관련 자료 수집
- 프랑스의 SNIAS, SNPE(세계 3위, 유럽 최대 화약회사), 대륙간 장거리 미사일용 추진제 생산장면 공개, 기술 및 차관 제공 제의
- 기술제공 범위에 따라 500만달러 이상 가능, 연리 2% 2년 거치 10년 상환
09.30
* 항공공업(유도탄) 추진 계획서 완성:
- 추진제 제조의 경우 기술 도입 완료시 즉시 국산화 가능
- 대규모 생산설비 투자 불필요
- 유도탄 탄체 제작 공정, 특수 장비 불필요, 국내 제작 가능
- 유도장치: 국내 기술 전무
100% 기술 이전 불가능
주요 부품 국산화 불가능
- 근거리 유도탄에 개발에 총력 집중
- 점진적인 사거리 연장
- 신 유도기술, 기술축적 발전에 발맞추어 순차적으로 개발
- 신 유도기술, 기술축적 발전에 발맞추어 순차적으로 개발
1973.02.23
* 연구장비 심의 위원회 발족
* 내부 문제로 개발 착수 지연됨
1974.05.25
* 박대통령 '유도탄 개발에 관한 기본 방침' 재가
* '율곡 사업'으로 명명, 율곡 자금 조성
1974.09.28
* 국방부, 연구소 대지 구입, 연구소 착공, '신성 농장'이라는 가명 사용
* 24시간 돌관 작업 감행, 보안대에서 직접 경비
* 박대통령 수시로 공사 현장 방문, 독려
* 미 정부, ADD발주 장비, 유도탄 개발 계획, 소위 '대전 기계창' 정보입수, 대정부 압력 가중
* 박대통령, 프로그 미사일을 구실로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1000파운드 합의에 성공 (180km= 휴전선-평양 직선거리)
* 미 정부, 기술 지원 요청 묵살
1975
* 본격적 투자 시작, 62억원 지원
* MD(맥도널 더글라스,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 생산자)경영난 악화
* 남한 정부, 기술지원 교섭 시도, 미 국방부를 의식한 MD측 거절
* 남한 정부, MD에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 사거리 연장 공동 연구 제의, MD, 연구비 명목 3천만달러 지원 요구
* 남한 정부, MD와 협상 개시:
- 예비 가능성 검토, 실제 설계, 개발생산으로 이어지는 3단계 계획 합의
- 첫단계에서 180만 달러 지원, ADD연구요원 10명 개발참여 합의
* 남한 정부, 계약에 따라 10명의 박사급 연구원 현지 파견, 6개월간 합숙하며
모든 기초설계 재료 및 설계 방법 습득.
1976
* 57억원 추가 지원
* 현지 파견 연구진 귀국, 기술 습득 수준 검토, 독자 설계 가능성 확인
* 정부, MD와의 2차, 3차 계획 파기, 독자 노선 추진
* 추진제 방식 확정 (고체식)
- 비용 절감
- 비상시 즉시 발사 가능 (액체식의 경우 연료 주입 시간 소요)
* 정부, 나이키 허큘리스 추진제 제조업체와 접촉, 미 국무부의 반대로 기술 지원 무산
* 프랑스의 SNPE사와 접촉, 추진제 원료와 제조비법 전수 동의, 대가로 3천만 달러 요구
* 한국형 유도탄 설계에 의거, 추진제 제조에 300갤런 용량 믹서장비 필수
- 프랑스측, 50갤런 믹서까지 지원 약속
(당시 300갤런 믹서 제작은 미국이 유일)
* 재미동포 ???씨, 록히드사 파산직전 정보를 정부에 전달
* 남한 정부, 록히드사 산하의 추진제 제조업체 매각 의사 타진
* 연구 관계자, 록히드측 시설 시찰, 300갤런 믹서장비를 비롯한 모든 기술자료 및 서적 확인
* 록히드사, 국무부 허가 취득 약속, 모든 시설 매각에 합의
* 미 국무부, 일체의 기술지원을 배제한 시설 매각 허가
* ADD, 시설은 록히드에서, 기술과 원료는 프랑스에서 도입키로 결정
- 시설 확보로 프랑스와의 협상에서 우위 점령, 260만 달러에 기술도입 합의
1976.05.10
* ADD 산하 대전기계창 항공사업부, 독립기구로 정식 발족, 연구인원 500명
12.02
* 유도탄 공장 준공
* 추진제 샘플 실험 성공, 유도탄체 날개 제작 난항
* 미 제8군 사령관, 미 합동군사 고문단(JUSMAG) 단장 시찰
(JUSMAG은 미 대사 직속기관으로서 대한 원조및 정보공작을 담당)
* JUSMAG단장, 추진제 샘플 실험 참관, 한국의 유도탄 추진제 기술에 심각한 우려 표시
(나이키 허큘리스의 오리지널 추진제보다 월등히 우수한 성능을 입증함)
* 미 정부, 추진제 공장 완공과 동시에 샘플 제작에 성공하자 사전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음을 탐지함
(한국 정부의 기술노선에 대한 의구심 증폭)
* 미 국방부 안보담당 차관보, 정부에 압력 행사
- 유도탄 개발의 이유와 함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혹 제기
- 정부,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생산 중단에 따른 독자적 정비기술 확보를 핑계로 무마
* 미 정부, CIA요원 대전기계창 상주 요구, 정부의 반대로 묵살
* 미 정부, 주한 미군 철수 계획 구체화
* 남한 정부, 유도탄 완성 계획 기일을 78년 국군의 날로 확정
* K-1 유도탄과 K-2 유도탄 기초 설계 완료
* 시험 발사 계획 완료
- 1단계 = 미제 나이키 허큘리스에 국산 유도장치 조합
- 2단계 = 미제 유도장치에 국산 추진제 조합
- 3단계 = 국산 유도장치에 국산 추진제 조합
1978.04.11
* 유도탄 프로토 타입 완성, 1단계, 2차에 걸친 시험발사 실패
- 원인: 정확도에 대한 지나친 집착, 비행코스 유도 프로그래밍의 융통성 부재
- 해결: 느슨해진 비행코스 유도 프로그래밍, 목표물 가격에 중점
1978.06.24
* 3차, 4차 시험발사 성공, 1단계 완료
* 5차, 6차 시험발사 성공, 2단계 완료
09.10
* 7차, 8차 시험발사 성공, 3단계 완료(국산화율 99%)
- 소량수요부품인 유압장치의 국산화는 비경제적
09.26
* 남한, 세계 7번째의 미사일 개발국임을 선포
- '안흥 종합 시험기지'에서 내외 귀빈들을 초청한 가운데 화력 시범
- 등장 무기: 지대지 장거리 유도탄(K-1), 중거리 유도탄, 다연장 로켓, 대전차 로켓 등등 (개발, 생산 전 국산화)
- 유도탄 발사 통제실 공개
* 74년 5월 유도무기 개발 방침 공식 수립 이후 만 4년만에 계획 완료
09.27
* 일본 각 신문사의 논평
- 아사히 신문, 남한산 유도탄의 원시적인 포물선 비행 방식과 정밀도 부족을 지적하며 핵개발과 연관
09.29
* 소련 국방성, 남한의 핵개발 예고
* 미국 Aviation Week & Space Technology에 국산 유도탄 소개
* 카터 행정부, 공식 입장 표현 유보
- 한미 미사일 협약 강조
- 한국의 미사일 '독자' 개발에 양국 긴장감 고조
* 미, 7명의 사찰단 파견
- 한국측 유도탄 제조, 시험시설의 기술수준을 높게 평가,
- 이후 극동지구 전시비축 탄약류에 대한 시험 평가를 의뢰하기도 함
(이전에는 미 본토에서만 실시)
(ADD 의 달러벌이 시작)
* 미 정부, 기술제공국에 대한 정보 요구
- 남한 정부, 독자개발을 강조하며 미국측 질문 회피
* ADD, K-2 유도탄 개발 착수
- 전파유도방식인 K-1의 단점 보강
- 전파방해에 취약
- 유도중 오류시 미사일의 오동작 가능
(프로토타입 시험발사 실패 원인)
* K-2 사양:
- INS (관성 유도방식 도입)
- Fire & Forget 기능 (목표물 사전 입력)
- 보조로켓의 제거 (K-1의 경우 4개의 보조로켓 사용), 조작의 용이성을 높임
- 추진제 100% 본체장전 방식
- 문제: 관성 유도 기술 도입
미국 리턴 인더스트리 사에 기술제휴 모색, 미 국무부의 불허로 무산
프랑스와 접촉, 기술지원은 가능, 자금 문제로 결렬
일본, F-1 전투기 독자개발, 관성 유도 장치 영국 Ferranti사 제품 대량 수입
남한, Ferranti사의 관성유도장치, 유도탄 적용 가능 정보 입수
남한, Ferranti사와 계약 체결
[조건]
1. 한국내에서 조립
2. 중요 부품 생간기술 제공
3. 조립용 시설 및 장비 제공
4. 한국 기술자에 대한 훈련 제공
* 영국 정부, 협력 승인
* 미 국무부, 영국 정부에 압력 행사
- 영국 정부, 일본 F-1 전투기 개발에서의 관성 유도 기술 제공을 핑계로 묵살
* 미 정부, 대사관과 8군 사령부를 통하여 한국측에 압력 행사
- 관성 유도장치 개발 포기 요구
- 남한, 유도탄 개발 독자노선을 내세우며 묵살
* ADD, K-3 (사거리 300km), K-5 (사거리 500km) 개발 계획 수립
1979
박대통령 서거, 12.12 사태 발발
1980.07.
* ADD에 대한 1차 숙청, 유도탄 개발 핵심 인력의 감축
* 미 군사 고문단(JUSMAG) 감시 완화
1982.10.30
* ADD 유도탄 개발팀, 예상을 뒤엎고 K-2 개발 성공
- 사거리 200km, INS (관성유도방식) 국산화 성공
* 한미 관계 악화
12.??
* 전두환 정부, ADD 에 대한 2차 숙청 단행
- 2400명 연구원중 800명 감원, 유도탄 개발팀 해체
* 남한 정부, 한미 미사일 조약 재확인
1983.10.3
* 아웅산 사건 발생
* K-2 유도탄 개발 재개
* 180km 사거리 조약 유효
'국방 논문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군 정규사단 편제분석 (0) | 2022.12.19 |
---|---|
한국군 전차 편제 및 전차 무기체계관련 자료 (0) | 2022.12.19 |
몸집 불린 日해상보안청 ‘제4의 軍’ (0) | 2022.12.19 |
현재의 한국육군 편제와 보유전차와 중화기편제 2009 (0) | 2022.12.19 |
국방개혁(육군) 後 예상 (펌) (0) | 202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