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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자료

해병대 회고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73-미 해병대 장진호 전투2

by 충실한 해병 2022. 11. 11.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73-미 해병대 장진호 전투2


1950년 10월 한국전에 참전한 중공군이
유엔군과 국군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은 그해 11월 초였다.
장진호 지역을 점령한 미 해병대가 압록강 방면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장진호 지역에 투입된 중공군 병력은 10만 명이었다.
미 해병1사단을 상대로 10배 가까운 병력을 보냈으니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가.

 

그때까지 유엔군 지휘부는 다 이긴 전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미군 장병들은 크리스마스를 고국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밤마다 나팔을 불며 나타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세에 위축돼 전세는 삽시간에 반전됐다.

중공군, 미 해병1사단 10배 병력 투입

당황한 맥아더 장군은
워커 8군사령관과 아몬드 10군단장을 도쿄로 불러 작전회의를 열었다.
결론은 철수였다.
11월 28일 맥아더 장군은 합참의장에게 “우리는 전혀 새로운 전쟁에 직면했다”고 보고했다.
철수하겠다는 뜻이다.
미 해병1사단의 철수대열은 질서정연했다.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We attack another direction)

철수하느냐는 종군기자들 질문에
사단장 스미스 장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코멘트는 미국 신문에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 중’(We are attacking a new direction)이라는 말로
보도돼 크게 유명해졌다.
이 답변은 해병정신의 요체였다.
철수나 후퇴 같은 말을 배격한 것이다. 철수하는 쪽에도 적이 있으니
다른 방향으로 공격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수 결정이 나자 터너 미 공군공수사령관은 스미스 장군에게
항공철수를 권유했다.
그러나 스미스 장군은 빠르고 안전한 이 방법을 물리쳤다.
항공수송 중 공격당할 우려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비행장을 경비한 병력에게
도보로 철수하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많은 전투장비와 보급품을 적에 남겨 줘서는 안 된다는
투철한 군인정신의 발로이기도 했다.
안전하게 철수하기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쟁에 요긴한 물자를 버리고 가는 것이
적의 군사력을 돕는 것이라고 본 스미스 장군의 생각에 유의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해병대의 진정한 군인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 해병대가
얼마나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됐던가를 보여준 일화 한 토막이 한동안 화제가 됐다.
1950년 12월 23일자 동아일보에는 애틋한 모정(母情) 이야기가 보도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두 아들을 잃은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전선에 간 막내아들 안부가 걱정스러워,
해병대사령관 칼래스 장군에게 아들의 후방근무를 청원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항공철수 거절…진정한 군인정신

칼래스 장군은 이를 수용해 로버트 워드 상사를 한국전선에서 뽑아 도쿄로 보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로버트 상사는 어머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원대복귀에 성공했다.
‘어머니,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공산군을 막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집 뜰 안에서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저를 다시 전선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전우들은 저를 필요로 하고, 저에게도 그들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상사의 편지에서 보듯,
“제일 먼저 싸운다”(First to fight)는 구호를 가진 미 해병대는
사사로운 사정으로 싸움터를 벗어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명령이 있으면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즉각 출동하기 위해 언제나 항공모함에 대기부대를 두고 있다.

비상시에 제일 먼저 나가 싸우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함상에서 정렬할 때도 언제나 제일 앞쪽 제일 오른쪽을 차지한다.
그것을 해병의 특권이요, 책임이요, 긍지로 여긴다.

<공정식 前해병대사령관 정리=문창재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