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정희와 해병대의 불꽃티는 수싸움
박정희는 단지 해병대만을 견제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부국강병을 실현한 대표적인 지도자로 그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한국전이후 무일푼의 경제를 수출산업국으로 끌어올리고 무상원조로 유지하던 군을 아시아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군으로 끌어올린 대통령이다.
해병대라는 상륙돌격군을 방어용 군으로 사용하고도 그 세력을 견제해야 했던 박정희는 특수군의 또다른 필요가 요구됐다. 5,16쿠데타 당시 중핵을 맡았던 공수단은 불과 2, 3백명 밖에 되지 않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으로는 불만에 쌓인 해병대의 반란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대규모 증편을 계획하고 해병대의 수도권 진입을 저지키 위해 김포,인천,부평 등 해병대의 수도권 진입 길목에다가 증편한 특전사 병력을 심어 놓게 되는 것이다.
2. 전두환의 해병공수 폐지
당시 해병대의 반란 이것은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전체군을 장악하고 있는 육방부의 손안에서 해병대 쿠데타 시도란 꿈꾸기조차 힘들어지게 된다. 70년대 말 해병대에 공수대가 생기게 된다. 아무리 해병대의 수도권 진입을 특전사와 기계화 부대들이 막고 있다고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샘이다.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청와대로 바로 전격점령을 실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공수대가 창설된 것이 항간에는 입체상륙전이 목적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그렇게 보지 않는 이들도 많은 것은 또다른 일면이다. 상륙작전 자체가 완전불가능한 나라에서 상륙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보조수단인 해병공정대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해병공정이란 명목은 당시로선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가뜩이나 명분없는 쿠테타정부로서는 최대의 불안요소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3. 기타 해병대와 여러가지
노태우정권으로 이어지면서 629선언 등으로 역사는 어지럽게 전개된다. 당시 후일담으로 이미 알려졌지만 당시에도 군부 일각에선 쿠데타를 모색했다고 한다. 여기에 주도적인 힘을 실을줄 군은 과연 어디였을까. 육군이 주도했지만 역시나 2만5천에 이르는 해병대, 만감이 교차하는 억눌린 해병대가 끌어들이기 영순위가 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 만약 누군가 쿠데타를 하게된다면 말이다.
해병대 큰무뉘 위장복의 등장 해병대는 정예군의 상징인 얼룩무뉘군복이 벗겨진 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다가 벽돌무뉘 위장복이란것을 자생적으로 만들어낸다. 국가에서 공인해준 정식군복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위상확대를 위해 개발해 낸 것이다. 군사정부는 이것을 대수롭게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뒀다. 국군의 날 행사에도 입고나와도, 휴가때 입고나와도 무방할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단호한 조치가 치해진다. 국가비공인군복을 완전소멸시키고 부대마다 제각각인 군복에 일침이 가해진다. 그리고 3군 군복통일을 대대적으로실시하게 되는것이다.
해병대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해병출신만이 아니다. 전국민이 다아는 사실이다. 이젠 육군과 거의 다를바없는 그런 부대 중에 하나로 보는 시각도
낯설지만은 않다. 정규군으로 육군과 별 차이없는 훈련과 임무를 가진 해병대를 대단하게 본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을까한다. 역사를 되짚어 본다면 해병대의 위상 몰락은 다른한편으론 우리 인간사와도 흡사하다 하겠다. 강하면 견제받기 쉽고 뻣뻣하면 태클로 걷어차이기 쉬운 우리 인간사. 강할 수록 세력의 흐름을 빨리 캐치해서 어디로 손을 뻗어야 될 지 현명한 처신을 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과만이 기다리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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