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독립기갑연대 반궤도 장갑차 24대를 보유
장갑차는 일반적으로 차륜식과 궤도식 두 종류로 나뉜다.
차륜식 장갑차는 일반적인 자동차형 바퀴를 사용하는 방식이며 장륜식 장갑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궤도식 장갑차는 전차와 마찬가지로 무한궤도(캐터필러)를 사용한다.
한국군이 운용하고 있는 장갑차 중 M113·K-200장갑차가 바로 궤도식이다. 반대로 한국군의 KM900은 자동차형 바퀴를 사용한 차륜식 장갑차다.
차륜식은 전체적으로 무게가 가벼우며 도로 주행 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이지만 도로가 아닌 곳에서는 주행하기가 힘들다. 궤도식은 무게가 무겁고 도로 주행 속도는 느리지만 험한 지형에서도 기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미국에서는 차륜식·궤도식의 중간 형태인 반궤도 장갑차를 많이 운용했다. 반궤도 장갑차의 앞바퀴는 일반적인 자동차형 바퀴를 사용하고 뒷부분에는 캐터필러가 장착돼 있다. 흔히 하프 트랙(half-track)으로 부르는 반궤도 장갑차는 차륜식·궤도식의 장단점이 혼합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노마그 반궤도 장갑차가 독일군의 상징이었다면 미군이 대량으로 운용한 반궤도 장갑차는 M2와 M3이다. 미국은 1941년 M2·M3 등 두 종류의 반궤도 장갑차를 개발 완료했다.
두 장갑차는 거의 유사하지만 M3(사진)의 차체 길이가 M2에 비해 10인치 정도 더 길어 13명이 탑승(M2는 10명)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M3의 경우 차체 후방에 출입문이 있으며 기관총을 장착하는 총좌의 형태도 M2와 M3이 다르다.
M2·M3 반궤도 장갑차는 전쟁 중 지속적으로 개량돼 M2A1·M3A1·M3A2 등 여러 가지 개량형이 나왔다. 이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많이 운용된 것은 M3A2다. M2·M3 계열 반궤도 장갑차는 우리 국군도 운용했다.
육군 독립기갑연대 정보과 계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안용현(安龍鉉·갑종50기·76)예비역 중령은 "M3 반궤도 장갑차를 당시에 단순히 반장갑차라고 불렀다"면서 "1948년 봄 육군 수색대(기갑연대의 전신)가 미군으로부터 반장갑차 5~7대를 인수·운용했다"고 증언했다.
1970년 발행된 ‘육군발전사’에서는 수색대가 육군 독립기갑연대로 개편된 후 반궤도 장갑차 24대를 보유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한 반장갑차의 정확한 제식명은 불확실하지만 M3A2가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M2도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군의 반궤도 장갑차는 1948년 발생한 여순10·19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기도 했다. 안씨는 "당시만 해도 육군에 별다른 기동 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전남 여수·순천으로 출동한 타 부대의 보병들이 수색대의 반궤도 장갑차를 보고 신기해했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의 반궤도 장갑차는 뚜렷한 활약을 하지 못했다. M2·M3 반궤도 장갑차는 37mm 기관포가 탑재된 M8 장갑차와 달리 구경(캘리버) 50 기관총만 탑재돼 있어 보병의 화력 지원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M2·M3은 병력 수송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M2·M3이 병력 수송용으로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전차와 팀을 이루고 군수 지원을 맡은 트럭들도 충분히 확보돼야 하지만 국군은 당시 그런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안씨는 "독립기갑연대가 보유했던 반궤도 장갑차는 경북 청송에서 북한군 12사단에 포위당했을 때 거의 파괴됐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