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빈동 대첩의 화려한 명성으로 해병전사에서 그 빛이 묻혀버린 푸옥록의 전투는
이제 서서히 해병 모두에게서 잊혀히고 있습니다.
그 때의 용감한 전사들은 지금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 가고 있습니다.
투망작정에서 상당히 전사나 부상을 당하였고 그중에 전사한 소대장2명(전창우소위, 김진철 소위)과
당시 선임하사 이영구(7년 전에 병사)가 세상에 없는 처지이라서 안타깝습니다.
청룡9중대의 푸옥록30고지 전투는 반드시 후배 해병대원의 정신교육에 꼭 전수되어야 하고,
해병전사에 당당히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용안작전의 1부분으로 취급되어 있으나 이 전투는 전사에서 독립적으로 부각시켜주어야 합당합니다.
그 당시 전과는 추라이지역 전투사에서 숫자상으로도 확연히 돋보일 만하였고 적 사살 110명이나 됩니다.
추라이 전선에서 이처럼 많은 적을 사살한 예가 짜빈동 대첩이외에는 없습니다.
용안작전 초기에 2대대의 고전으로 피해가 막대할 때 대규모 부대와 싸워서
추라이 지역에서 최초의 대 승전으로 청룡부대 전체가 사기충천의 계기다 되었고,
최전방 중대들은 포병 화력지원을 적절히 운용하여 작전에서 필승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전투였기
때문에 전술, 전략적으로 월남전에서 중대전술에 전기(轉機)가 되었다는 면에서 다시 재조명하여야 합니다.
짜빈동진지는 거의 완벽한 야전 축성진지의 방어전이었다고 본다면,
청룡해병 9중대 2개 소대는 전혀 다른 열악한 지형 조건이었고,
진지 역시 매복진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적 접근을 저지할 장애물은 물론 철조망도 없는 낮은 공동묘지 기슭에서
겨우 2개 소대 대원과 해포7중대 관측반4명, 81미리 박격포반 5명,
월남육군2명(통역), USMC ANGLICO 대원 2명을 포함하여 80명 정도의 병력으로
지역 베트콩 지원병력과 월맹정규군 제48대대 및 46대대의 합동공격을 격파한 위대한 전투였습니다.
청룡전사에서 이런 정도의 전과와 용맹을 보여준 사례가 없습니다.
또한 짜빈동대첩 이후에 적들의 정보판단보고를 보면 푸옥록30고지 전투에서
치명적인 월맹군부대 피해는 포병의 막강한 화력 때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청룡 해병전사에서 포병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또 이를 중시(重視)하는 재평가를 해야 합니다.
짜빈동 대첩의 화려한 명성으로 해병전사에서 그 빛이 묻혀버린 푸옥록의 전투는
이제 서서히 해병 모두에게서 잊혀히고 있습니다.
그 때의 용감한 전사들은 지금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 가고 있습니다.
투망작정에서 상당히 전사나 부상을 당하였고 그중에 전사한 소대장2명(전창우소위, 김진철 소위)과
당시 선임하사 이영구(7년 전에 병사)가 세상에 없는 처지이라서 안타깝습니다.
청룡9중대의 푸옥록30고지 전투는 반드시 후배 해병대원의 정신교육에 꼭 전수되어야 하고,
해병전사에 당당히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용안작전의 1부분으로 취급되어 있으나 이 전투는 전사에서 독립적으로 부각시켜주어야 합당합니다.
그 당시 전과는 추라이지역 전투사에서 숫자상으로도 확연히 돋보일 만하였고 적 사살 110명이나 됩니다.
추라이 전선에서 이처럼 많은 적을 사살한 예가 짜빈동 대첩이외에는 없습니다.
용안작전 초기에 2대대의 고전으로 피해가 막대할 때 대규모 부대와 싸워서
추라이 지역에서 최초의 대 승전으로 청룡부대 전체가 사기충천의 계기다 되었고,
최전방 중대들은 포병 화력지원을 적절히 운용하여 작전에서 필승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전투였기
때문에 전술, 전략적으로 월남전에서 중대전술에 전기(轉機)가 되었다는 면에서 다시 재조명하여야 합니다.
짜빈동진지는 거의 완벽한 야전 축성진지의 방어전이었다고 본다면,
청룡해병 9중대 2개 소대는 전혀 다른 열악한 지형 조건이었고,
진지 역시 매복진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적 접근을 저지할 장애물은 물론 철조망도 없는 낮은 공동묘지 기슭에서
겨우 2개 소대 대원과 해포7중대 관측반4명, 81미리 박격포반 5명,
월남육군2명(통역), USMC ANGLICO 대원 2명을 포함하여 80명 정도의 병력으로
지역 베트콩 지원병력과 월맹정규군 제48대대 및 46대대의 합동공격을 격파한 위대한 전투였습니다.
청룡전사에서 이런 정도의 전과와 용맹을 보여준 사례가 없습니다.
또한 짜빈동대첩 이후에 적들의 정보판단보고를 보면 푸옥록30고지 전투에서
치명적인 월맹군부대 피해는 포병의 막강한 화력 때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청룡 해병전사에서 포병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또 이를 중시(重視)하는 재평가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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