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 양구군 동면 임당 2리
● 건립일자 : 1958. 3. 15. ● 시설제원 : 경역면적 40평, 기단높이 1.75m, 비높이 2.1m ● 관리기관 : 양구군 ● 참고문헌 : 전적기념물편람집(국방군사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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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설 명 | ||||
ㅇ개요
위치 : 양구군 동면 임당 2리 건립일자 : 1958. 3. 15. 시설제원 : 경역면적 40평, 기단높이 1.75m, 비높이 2.1m 관리기관 : 양구군 ㅇ건립취지 및 유래 미 해병 제1사단과 한국해병 제1연대는 1951년 8월 29일 - 10월 30일까지 서화리, 가칠봉, 피의 능선, 1,211고지, 무명고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다. 이때 한·미군 용사들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산화한 장병들의 투혼을 천추만대에 길이 남기고 그 넋을 위로하고자 제3군단에서 1958년 3월 이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이 전투는 휴전회담 기간의 소강상태를 이용해서 구축해 놓은 요새화된 진지와 증강된 화력을 토대로 펀치볼 고수를 시도하는 적에게 미해병 1사단과 한국군 해병 1연대에 의해서 펀치볼 동북방의 1,055고지, 924고지, 1,026고지를 점령한 전투이다. 작전지역은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쌓인 원형의 분지로 동남쪽에 진부령, 향로봉 서족과 서남쪽에 가칠봉, 도솔산 등 고지군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전투에서 포병과 항공을 운용한 대혈전을 거듭하였으며, 적 사살 2,799명, 포로 557명의 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은 428명, 부상 1,062명, 실종 3명으로 펀치볼전투의 성공은 당시 미국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는 전투이다 ㅇ비문내용 서기 1951년 8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화리, 가칠봉, 피의 능선, 1,211고지, 무명고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이 지구전투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용감히 싸워 적을 물리친 국군 제3, 5사단 및 해병 제1연대의 장병들이여! 미 제2, 7, 25, 45사단 및 제1해병사단의 용사들이여. 인류와 평화를 거역한 북한군 제2군단이 평화롭던 이 강산을 피로써 물들이게 하고 조국의 가쁜 숨의 경각을 다툴 때에 님들의 몸이 방패가 되어 우리 민족을 살렸고, 님들의 흘리신 피는 조국애의 일편단심으로 이 나라를 건졌도다. 빛나는 충성과 영용무쌍한 투혼을 천추만대에 전하고자 이 돌을 깎아 세우니라. 비록 이 비석은 모래알이 될지라도 님들의 그 위대한 공훈은 해와 달로 더불어 길이 빛나리라. ㅇ참고사항 사단은 Punch bowl 동북방의 군단목표 'Yoke'를 점령하기 위하여 제7연대가 목표지역을 정탐하던 중 683고지 후방에 적 1개대대가 집결중인 것을 발견하고 포격을 유도하여 제1대대는 좌일선에서 516고지 및 666고지에 진출토록하고, 제3대대는 좌일선에서 702고지에 대한 공격을 감행토록 하였다. 제3대대는 북한군의 집중화력으로 공격이 정체되었지만 제1대대가 박격포로써 대대의 진로를 타개하여 516고지와 666고지를 점령하였다. 제3대대는 9월 1일 09:00에 702고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여 집요하게 대항하는 적을 격퇴하면서 전진을 거듭하여 치열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고지를 탈환하였고, 13:45에 602고지로부터 1개대대 규모의 박격탄 지원하에 역습하였으나 대대는 협조된 화력으로 이를 격퇴하였다. 2일 제3대대는 G및H중대를 공격중대로 하여 602고지에 대한 협조된 공격을 시작하여 집요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면서 진군하여 정상을 휩쓸고 주위에 숨어있는 북한군을 격멸하였다. 제7연대가 Hays정사의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전방에 대한 정찰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한국해병연대는 1,026고지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감행하여 3시간 이상의 열전 끝에 적을 괴멸하고 고지를 점령하였으며 도주하는 적을 추적격하여 700m 서북방의 1,055고지마저 탈취하였다. 이리하여 사단은 이날 군단목표 'Yoke'지역을 확보함으로써 Punch bowl동북단의 전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Hays선에 진격한 사단은 전지를 강화하고 전방에 대한 정찰 활동을 전개하면서 Hays선 북방 4~7km에서 동북방으로 뻗은 일련의 감제고지군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9월 11일 제7연대는 간무봉 동남방 능선인 목표 Able에 진격하여 4Km전방에 있는 북한군의 주저항선을 제압할 쀀랸?겿??냝?????????수 있는 거점을 확보하고 계속 동북진하여 749고지를 점령한 다음 목표 Baker를 확보함으로써 연대우익을 북방으로 돌진케 하였다. 이리하여 제3대대는 연대좌일선으로 전진 1Km에 있는 680고지를 중간목표로 선정하고 H중대를 최초공격중대로 하여 이날 03:00에 어둠을 이용하여 진격하였다. 완강한 북한군의 저항으로 I중대가 적을 교란시키는 동안 H중대가 접근하여 협조된 최후의 공격을 실시하였으나 적이 수류탄과 자동화기로 최후 발악적인 저항을 하므로 다시 원위치로 물러나고 말았다. 제1대대는 야간 기동하여 북한군진지에 침범하는데 성공하자 새벽에 673고지 뒤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끝에 고지를 점령하였다. 제3대대는 전날 공격에 실패한 680고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여 G중대가 정면에서 격전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H 및 I중대도 북한군의 밀집사격을 뚫고 돌진하여 마침내 680고지를 점령하였다. 13일 대대장Nihart중령은 항공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연대지원화력을 총집중하여 749고지를 탈취하고 제3대대는 연대의 좌일선으로 751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였으나 박격탄의 지원을 받은 중대규모의 북한군을 맞아 새벽까지 격퇴하였다. 15일 새벽 749고지 일대에 유례없이 강화된 탄막사격과 함께 1개연대 규모의 북한군이 반격을 감행하여 연대의 포병 지원아래 전지를 고수코자 백병전을 벌였으나 후방 500m능선에 후퇴하였지만 다음날 격전끝에 고지를 재탈환할 수 있었다. 북한군진지가 혼란한 틈을 타서 제2대대는 동측 능선을 따라 812고지에 공격을 가하였고 사용가능한 모든 화력을 집중 지원하여 고지를 점령함으로써 제2대대는 812고지를 중심으로 서쪽능선까지, 제3대대는 751고지를 중심으로 북방으로 뻗은 광대한 지역에 방어전지를 점령하였다. 18일 북한군은 밤새도록 포격을 가하더니 1개대대 규모의 공격을 감행하였지만 일시 후퇴하였지만 포병의 화력를 집중하면서 반격을 개시하여 재탈환하였다. 20일 포격을 계속하던 북한군은 사전에 계획된 포탄사격과 함께 E중대와 F중대 제2소대가 협공을 감행하여 황급히 도주하는 것으로 전투의 막을 내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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