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시기 : 1950.9. 29-10.7
● 전투지역 : 경기 퇴계원, 양주, 경춘가도 ● 주요지휘관 : 신현준 대령, 김대식 중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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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설 명 | ||||
1. 북한강지구 전투 개요
북한강지구 전투는 크게 서울 탈환작전의 일원이다. 이것은 서울 탈환 후 내륙 외곽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진격이었는데 10월 3일 미 해병대가 의정부를 점령하고, 한국 해병대가 경춘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금곡을 점령하고 북한강에 이르는 전투였다. 2. 서울 탈환작전 개요 한국전쟁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이룬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은 제10군단의 공격부대인 미 해병대와 한국해병대에 의해 1950년 9월 15일 감행되었다. 미 해병상륙단이 저항하는 적을 무찌르고 인천 동쪽 외곽에 설정된 교두보로서의 진격을 계속하는 동안 한국 해병대는 인천시내의 잔적섬멸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일단 인천시를 포함한 교두보를 확보한 상륙군은 곧이어 서울탈환작전에 돌입하고 미 해병 제1연대는 경인(京仁)가도의 우측지역을, 그리고 미 해병 제5연대는 동 좌측지역을 각각 담당하고 서울을 향하여 진격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해병대는 16일 저녁 제2대대를 계속 인천 시내의 잔적섬멸작전에 임하게 하고 자리를 옮겨 미 해병 제5대대의 좌측에 포진한 후 17일 수차에 걸쳐 적의 역습을 물리치면서 김포반도의 잔적(殘賊)을 섬멸하였다. 미 해병 제1연대가 18일 소사(素砂)를 탈환한 다음 영등포를 향하고 있을 때에 미 해병 제5연대와 한국해병 제 1,2 연대 행주(幸州)쪽으로 한강을 도하하라는 명령을 받고 19일에 그 준비를 서둘렀다. 19일 야간을 이용한 도하작전은 미리 알게된 적의 반격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20일에 도하를 강행하는데 성공하여 능곡에서 수색 방향으로 적을 압박하였다. 17일 뒤늦게 상륙한 미 제7사단은 미 제1연대의 남쪽을 차단하고 엄호하는 가운데 미 해병 제1연대는 영등포로 진격을 계속하고 격전을 거듭하였다. 최초 서울 서측방을 공격하기 시작한 미 해병 제5연대와 한국해병대는 서울을 사수하려는 북한군의 필사적인 저항에 부딪쳐 연희고지(延禧高地) 일대의 능선상에서 격전이 전개되어 그 전진 속도는 둔화되었다. 드러나 아군의 선전으로 적의 보루는 무너지고 24일에 이르러 연희고지 일대의 능선을 점령하였다. 또한 많은 고전 끝에 영등포을 점령하고 미 보병 제7사단의 일부가 수원으로 남진하고 있을 24일에 미 해병 제1연대는 마포쪽으로 한강을 도하하여 미 해병 제5연대 우측에 배치되었는데 이때에 또한 미 해병 제7연대도 21일 사령부와 함께 인천에 상륙한 다음 미 해병 제5연대 좌측방에 배치되었다. 제 10군단장 알몬드(Almond) 소장은 서울 서측방에서 미 해병대가 고전하자 25일 미 보병 제7사단 예하 32연대와 한국 육군 17연대를 서빙고 쪽으로 도하시켜 서울을 북서쪽과 남동 쪽에서 포위하는 태세를 갖춘 다음 일거에 시내 돌입작전을 전개하였다. 서울 공략의 주공부대인 미 해병대와 한국해병대는 서울 서측방에서 25일까지는 완전히 능선 일대를 확보하였고 일부 부대는 벌써 서울시에 돌입하였다. 북쪽은 미 해병 제7연대와 한국 해병 제5대대이고, 중앙은 미 해병 제5연대와 한국 해병 제1대대인데 이때에 남쪽은 미 해병 제1연대와 한국 해병 제2대대가 배치되어 마치 반원모양의 궁형(弓形) 태세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25일 밤 미 보병 제32연대와 한국 육군 제17연대가 남산을 점령하였을 때 공격을 개시한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는 서대문 방면과 마포 일대에서 공세를 취하였으나 적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이를 격파하는 동안 전진은 불가하였고 26일 아침까지도 변동은 없었다. 다만 원효로와 삼각지 일대를 담당한 한국 해병 제2대대가 국부적인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그 일대를 확보하였을 뿐이다. 26일 전투는 철수를 위해 시간을 얻기 위한 적의 지연전술을 분쇄하는 전투였다. 적은 수많은 바리케이드와 지뢰를 매설하고 아군의 진격을 막았으나 아군의 선전으로 저녁에는 서울의 3분의 1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 해병대는 27일 아침 중앙청에 태극기를 계양하였으며, 또한 서울시 일원의 잔적을 완전히 섬멸, 29일에는 오랫동안 고대하던 환도식을 거행하였다. 여기에서 한국군 제17연대는 한국 해병과 임무를 교대하여 서울시 경비에 임하고 미 해병대가 경의가도(京義街道)와 경원(京元)가도를 따라 진격하는 동안 한국 해병대는 경춘(京春)가도를 따라 진격하였다. 이것은 서울 탈환 후 내륙 외곽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진격이었는데 10월 3일 미 해병대가 의정부에, 한국 해병대가 북한강에 진출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경춘가도를 따라 진격한 한국 해병대는 금곡을 점령하고 북한강에 이르렀다. 한편 제10군단의 일부 부대인 미 제7사단 31연대는 북상하는 제8군과의 연계작전을 위해 남진하여 서울이 완전 탈환되기 전 26일 수원 남쪽에서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다. 3. 한국 해병대의 북한강 지구 전투 9월 29일 이날 0시를 기해 미 해병대 배속으로부터 원대에 복귀한 한국 해병 제1, 제2대대는 구 해군본부(전 원호청 자리)에 위치한 사령부 통제 밑에 서울시 일원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그 책임구역은 제1대대가 광화문과 남산을 잇는 선으로부터 서쪽을, 그리고 제2대대는 인천으로부터 동쪽을 각기 담당하고 작전하고 있었다. 9월 30일 한국 해병대는 미 해병사단작명에 의해 미 해병대와 같이 서울 방어를 위해 동쪽 지역을 차단하는 주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북한강 지역으로 출동하였다. 이때 한국 해병대의 우측은 미 보병 제7사단이었으며 좌측은 미 해병 제1연대였다. 이날 15:00시부터는 해군본부로부터 이 작전을 위해 망우리로 있는 사령부로 이동하였다. 10월 1일 이날 13:00에 의정부를 향해 공격하는 미 해병 제7연대에 배속되었던 제5대대도 원대에 복귀하였다. 이날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것은 한국 해병대가 단독작전에 필요한 미 해병대의 함포와 항공연락장교 65명(장교와 사병 포함)이 해병대 사령부에 도착하여 공격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신현준 대령이 지휘하는 한국 해병대의 제2대대와 제5대대의 목표는 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와 한강 및 북한강 교차지역 그리고 마석우리(磨石偶里) 5km 동쪽의 경춘가도와 한강 연안을 따라 남으로 형성된 도로 부근일대의 적을 섬멸하는 것이었다. 10월 2일 08:00에 목표지역으로 전진한 해병대는 이곳에 진주한 미 7사단 1개 대대로부터 지역을 인계 받아 제5대대는 북쪽, 그리고 제2대대가 그 남쪽에 각기 배치되어 이날 10:00을 기하여 동시 공격을 감행하게 되었다. 공격제대가 도농리(陶農里) 및 인창리(仁倉里)와 교문리(橋門里) 일대에 진출하였을 때 도농리 남방의 고지로부터 적의 사격을 받았다. 별안간 적 약 1개 연대병력과 충돌하게 된 해병대는 즉시 적이 배치된 고지를 향하여 공격을 시작한 결과 적을 격퇴시켰고 07:00에 제2대대는 가운리(加雲里)와 마산리(馬山里)를 점령하였다. 이 작전에서 제2대대 8중대(중대장 서연남 중위)는 약간 고전하였으나 좌측에 배치되었던 제5대대의 박격포와 화력의 지원을 얻어 드디어 목표고지를 무난히 점령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은 이 고지를 끝까지 지키도록 계획하고 중요 포대와 기관총좌에는 이곳을 지키는 북한군 하나하나에 쇠사슬로 묶어 최후까지 항거하면서 도망할 수 없도록 하였으나 이미 사기를 잃고 아군 공격을 겁내고 있던 적은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일부만이 겨우 퇴각하였을 뿐 사살된 자가 200여명이나 되고 사로잡은 포로가 50여명에 달하였다. 이 작전은 상당한 격전이었으므로 아군에도 16명의 전사자와 63명의 부상자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도주한 적은 아직도 아군에게 저항할 모양으로 인근에 숨어있던 잔여부대와 합동하여 퇴계원리 동쪽 2km 156고지(진관리)를 거점으로 한 다음 배양리(培養里) 일대에 집결하고 있었다. 이들의 기도는 지면리(芝綿里)의 113고지를 점령하여 아군 해병대의 진격을 저지하여 보려는 것이 분명하였다. 여기에서 제5대대(대대장 김대식 중령)는 이 지역에 대하여 포격을 총 집중토록 하여 적을 강타한 다음 곧 박격포의 지원 밑에 공격중대는 적이 먼저 점령하려는 113고지를 빼앗아 버리고 이날 여기를 완전히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10월 3일 제5대대에 이어 계속 공격을 감행한 제2대대(대대장 김종기 소령)는 이날 12:30에 금곡을 우선 점령하고 계속 진출하여 금곡 북방 700m 도로상에 매설된 적 지뢰를 제거하고 부근 일대 고지를 확보한 다음 무벌(無?)에 잠시 CP를 정하였다가 예비대로써 양정리에 자리를 옮겨 진지를 구축하고 부근일대에 경계에 임하였다. 한편 제1대대(대대장 고길훈 소령)는 지난 10월 1일 미 육군 제7사단에 배속 양재동으로 향하였으며 여기서 제1대대는 미 7사단 작명에 따라 양주군 일대의 패잔병 복멸 임무를 맡았으며 10월 2일 제1대대는 이태원에 일단 집결하게 되었다. 이날 09:00에 이태원을 출발한 제1대대는 아무런 집적 없이 경춘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5:00에 금곡 남방 6km의 덕소에 도착하였다. 제1대대는 걱정 없이 이곳에서 1박한 다음, 10월 4일 08:30에 덕소를 출발하여 북한강 연안을 따라 17:00에는 예봉산(禮峯山) 남동 6km에 있는 족자도 일대와 281고지(송촌리)일대까지 진출하였다. 제1대대는 기간 중 포로 27명을 후송하고 차후 작전에 대한 작명을 대기하면서 부과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날 제5연대는 금곡리에 부근 고지일대를 점령하고 이 방면에서 해병대가 맡은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북한강까지 진격을 계속하였다. 10월 4일 08:00에 제5대대는 경춘가도를 따라 적을 찾아 전진을 거듭하고 이날 12:00에는 마석우리에 돌입하였다. 여기서 제5대대는 부락에 숨어 남아있는 적을 색출 완료하고 계속 전진하여 17:00 북한강 연안인 생내리(省內里)에 진출하였다. 또한 해병대 각 부대는 부근 일대에서 잔적수색을 계속하였다. 10월 5일 이날 08:00을 기해 제10군단의 진출 예정선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었던 해병대는 6일 08:00이 지역에서의 임무를 완전히 끝마치고 작명 제 26호에 따라 다음 임무를 위해 부대 이동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부대이동은 인천으로 집결하라는 것이었는데 각 부대는 인창리에 위치하고 있던 사령부에 10월 6일 09:30까지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6일 해병대는 각 대대는 진격지점으로부터 행군서열대로 사령부에 집결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미 해병대에서 지원한 2.5 트럭 90대에 분승하여 인천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때 그 부대 순서는 사령부, 제5대대, 제1대대, 제2대대 순이었다. 한편 군단예비대로서 김포지구에서 작전을 섬멸하고 측면을 차단하고 있던 제3대대(대대장 김윤근 소령)도 10월 2ㅣ일 미 제187공수연대의 임무를 교대하고 이날 인천에 집결하고 원대에 복귀하였다. 10월 7일 인천에 집결 완료한 해병대는 이날 제2대대는 목포지구에서의 새로운 잔적 섬멸 임무를, 그리고, 제1대대는 묵호방면에 또 제3대대와 제5대대는 원산에 상륙할 목적으로 각각 인천을 출항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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