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
해병대 원상회복 추진 특별위원회
1. 서언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창설되어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상승부대로서의 그 유용성이 증명되었으며 특유의 충성심과 단결심은 용맹성과 함께 국민의 신뢰받아 왔다.
해병대는 창설당시 해군의 군종으로 창설되었으나 그 임무와 조직 특성상 해병대 사령관이 해군총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독자적인 부대운용 체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73년 10월, 당시 위정자들의 정치, 경제적 논리에 의거 해병대사령부 및 교육, 지원부대들을 해체하고
해군에 통폐합시켜 해병대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해군이 해병대 부대를 지휘/관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인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1987. 11. 1일 해병대사령부를 재창설하게 되었으며
1990년에 국군조직법을 개정하고 해병대사령부 직제를 제정하여 과거 통폐합 당시 폐지되었던 해병대 설치 및
운용의 법적 근거를 다시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되고 법적 근거가 마련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사령관의 권한과 사령부의 각 참모 분야별 기능, 교육/지원기능 등에 대해 관련 개별법령이 미비 됨으로써
사령관의 지휘권과 사령부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오히려 통합이후 사령부 재창설 이전의 해군제2참모차장/해병참모부 체제보다도 못한 부대관리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이제 21세기를 내다보는 현시점에서 해병대는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효율적이며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군대로 거듭 태어남을 사명으로 하여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는 시대적인 소명이며 해병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필연적 방향인바 근본적으로 그 자구적 노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해병대 지휘/관리개선 즉, 사령관의 권한과 사령부의 기능보강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해병대 구성원 모두는 이러한 사실을 다같이 주지하고 공감하여 개인적인 논리적 근거를 구축,
모두가 해병대의 대표자가 되어 해병대가 이루어야할 과업에 대하여 일심동체의 정신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모든 해병대 구성원이 숙지해야 할 해병대의 역사성, 변천과정, 기능수행 체계상의 문제점과
이를 보강하기 위한 방안 및 대책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2. 해병대의 역사적 변천과정
대한민국 해병대는 한반도 대,소도시의 확보를 위한 상륙작전이 필요하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의
입지적 환경여건을 고려해 볼 때 국가이익 보호 및 군사전략 수행 상 상륙전 전담부대가 필요하고,
1948년 여수, 순천 반란사건 진압작전 후 절박하게 대두된 수륙양면 작전의 필요성에 따라 당시 해군참모총장이던
손원일 제독의 강력한 의지와 방침에 의거 1945, 4. 15일 신현준 중령을 초대 사령관으로 하여
380명의 적은 규모로 창설되었다.
창설 후 1949, 8월 - 1950, 7월까지 진주/제주지구 공비 토벌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군산, 이리, 장항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
전쟁발발 이후 지상군으로써 전투에 혁혁한 전공을 세우던 우리 해병대는 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에서
통영에 침입한 북괴군에 대해 한국최초 단독 상륙작전을 감해, 완벽한 승리로 전술적 요충지 통영을 탈환
"귀신 잡는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50년 9월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전선에서 교착상태에 있을 시 연합군의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 감행에
우리 해병대가 선봉부대로 참가함으로써 수세에 몰려있던 아군의 전선에 대 반격의 여건을 마련,
공세역전의 계기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였으며, 이어서 서울 탈환작전을 계속하여
104고지/ 연희고지 전투, 서울 시가지 전투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최초로 계양하는
계가를 올림으로써 "상승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게 되었다.
'51년 6월에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춘계공세를 격퇴한 후 계속 진격하고 있을 때 한국해병대 1연대는
중동부 산악지역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전략적 요충지이며 난공불락의 요새지로 일컬어지는 도솔산을 점령하고 있는
북괴군에 대하여 17일간에 걸친 공방전을 감행한 끝에 24개 고지 목표를 탈취 확보함으로써
적 1개연대 규모를 격멸 우군전선의 활로를 개척하였다.
이 전투는 특히 한국군 최초로 험준한 산악지형에서 야간전투를 실시, 승리하였으며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가
공격에 실패한 후 한국 해병대가 투입되어 승리를 함으로써 "무적 해병대"의 호칭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하사 받았다.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접어든 '51년 8월에 펀치볼 지구 전투에서 한국해병대는 난공불락의 거점인 일명
김일성, 모택동 고지의 북괴군 1사단 3연대에 대하여 공격작전을 감행, 4일만에 목표를 완전히 점령함으로써
펀치볼을 완전히 장악, 적의 본거지인 내금강산을 제압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였다.
또한 '51년 8월에 한국 해병대 독립 43중대는 함경북도의 양도에 상륙하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아군부대를
전멸시킬 목적으로 상륙하는 적 1개 대대에 대하여 대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적대대를 전멸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 해병대는 '65년 10월부터 '72년 2월까지 월남전에 참전하여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작전지역에 투입되어
15만 여 회의 대 소 작전을 실시한 결과 수많은 전과를 올리게 되며 특히, 짜빈동 전투에서는
해병대 1개중대가 적 1개연대를 완전 격파하여 :신화를 남긴 해병대"의 명예와 전통을 수렵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창설이후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장에서 용맹성을 떨치면서 상승불패의 위업을 달성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 대한민국 해병대는 그 찬란한 전통과 역사를 뒤로 한 채 1973년 당시 위정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논리에 의해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고 해군에 부대가 통폐합되는 비운을 맞게되며
그로부터 암울하고 어둠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73년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된 결과 '해병대'라는 한 조직이 구심점을 잃음으로 인해 하늘을 찌를 듯 하던
전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가 일거에 땅에 떨어짐은 물론 장차 전에 대비하는 전력증강과 전투력 발전에 주체성을 잃고
표류하게 되었으며 전투력 양성의 가장 근본이 되는 교육기능마저 통합됨으로써 해병대 교육훈련이 미흡하게 됨으로
인해 그 특수성을 거의 상실하게 된 것이다.
또한 부대 지휘/관리 측면을 고려해 볼 때 해군참모총장이 해군 함대 지휘개념에 따라 해병대간의 임무와
편성, 전통, 조직의 생리 및 전문성의 차이로 효율적 부대관리가 미흡하게 되고 자원분배 및 운용 등에서
형평성이 결여되어 해군 해병대간의 갈등이 심화되게 되었다.
해병대의 통폐합 논리는 아주 간단하고 편의적으로 해석된 논리에 의거 통합 또는 해체가 이루어 졌으나
그 결과 대단히 많은 모순 점을 갖게 되었으며 해병대는 전통과 역사가 정체되고 조직이 발전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례 하게 된 것이다.
해병대는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미흡하나마 그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몸부림 쳐왔으며,14년이라는 암울한 시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각고의 노력끝에
1987년 11월 1일 해병대사령부의 재창설을 보게되었다.
해병대사령부의 재창설 취지는 해병대사령부를 통합지휘할 지휘기구를 만듦으로써 해병대 특성에 맞는 부대관리와
지휘감독을 강화하고 구심점을 부여하여 부대사기를 앙양시킴은 물론 장차 해병대 부대운용 개념에 부응하도록
해병대의 전력을 건설하고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여 허상에 불과한 사령부를 유지하던중 1990년 9월에 국군조직법을 일부 개정하고
해병대사령부의 직제를 재정함으로써 해병대사령부가 군령 계선 상의 작전사령부이면서 해병대 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을 관장하는 군정사령부 역활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해병대 사령부의 조직 및 기능이 법으로 보장되고 근거를 마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능과 관련된 개별 법령이
개정 및 정비되지 못함으로 인해 그 기능수행 체계는 전혀 걔션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통합후
사령부 재창설 이전까지 해군 제2참모차장 및 해병참모부 체제 당시 해군본부와의 수평적 기능수행체계 보다도 못한
완전 종속된 상태로 유지되어 더욱 더 비효율적으로 해병대 관리가 되고있는 실정에 처해있는 것이다.
3. 해병대의 기능수행상 주요 문제점
가. 해병대사령관 인사보직권
해병대사령관은 일부의 해병대 대령과 중령 이하에만 인사보직권을 행사하고 해병대 장성 인사보직의 경우
대통령 임명보직인 해병대사령관과 사단장은 해군참모총장의 추천으로 국방부장관이 재청하는데,
이때 해병대사령관에게는 사단장을 천거함에 있어, 인사 재청권도 추천권도 부여 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해병대 대령 59개 직위 중 42개 직위를 해군참모총장이 보직하고 있으며, 진급심사위원의 경우에도
해병대사령관은 추천 권만 행사하고, 그 임명권은 해군참모총장에게 귀속 되어있다. 그 결과 해병대 고급장교가 될수록
그들의 직속상관인 해병대사령관보다는 해군참모총장의 눈치를 보거나,
해군참모총장을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발생되어 지휘권의 누수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해병대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사령관이 책임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조직관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 해병대사령부의 예산관리 기능
유사시, 부대의 전투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소 이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적정 규모의 예산이
그 부대의 실정에 맞도록 편성되고 집행되어야 하듯이, 해병대를 지휘함에 있어 해병대사령관이 필히 가져야 할
기능 중 하나는 최소의 필수 예산관리 기능이다.
그러나 현재 모든 예산은 해군본부에서 편성, 배정, 직접 집행함에 따라 그 우선 순위가 해군의 전문성 위주로
결정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 해병대 특유의 전력육성과 운용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병대 예산은 해병대 조직관리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해병대 사령부에서 정확한 소요판단과 사업의 우선 순위를 고려
하여 편성하고 국방부에서 예산배정시에도 해군과 해병대 예산을 분리하여 할당 하는 것이
국방예산의 효율적인 사용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해병대 정책결정과정
해병대 정책은 해군정책의 일환으로 결정되어 추진되고 있으나 의사 결정과정에서 해병대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여건은 구조상 극히 불리하게 되어있다.
해군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해군본부 참모부장인 해군소장 5명과 해병대 대표로서 해군참모총장 보좌관인
해병대 준장 1명으로 구성된 해군청책위원회에서 심의, 결정하기 때문에 설령 공평하게 이루어지더라도
의사 체계상 해병대의 피해의식은 상존 하기 마련이다.
라. 정원 및 조직관리 기능
각 군의 조직을 편성하는 편제업무는 각군에 부여된 고유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부대 구조를 발전시키는
것으로서 각 군 총장에게 부여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기능이다.
편제 및 임무가 상이한 해군이 해군부대 기준에 따라 해병대 편제를 임의로 조정하고, 해군부대내에 해병대 병력을
임의로 편성하여 해병대 부대의 편성병력 부족현상 심화 등 해병대 특성에 부합된 부대를 조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해병대 정원의 배정 및 관리를 해군본부에서 관장하고, 해군 기준에 따라 해병대 정원을 축소하여 배정하며,
해군 정원 소요 제기시 해병대 소요를 배제함으로써 해병대 정원관리권이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해병대의 정원관리 및 편제업무는 해병대의 부대구조와 부여된 임무의 특성을 고려, 해군과 전혀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해병대에 대한 편제는 해병대사령관이 책임지고 시행하고 정원에 대한 배분 및 조정도
해군과 해병대를 별도로 구분하여 시행해야만 해군 해병대 각 조직별로 정확한 소요산정이 가능하고
상호 피해의식이 없어질 것이다.
바. 군수기능 전무
해군과 해병대는 작전수행방법, 군수교육훈련, 군수품 종류, 소요 우선순위 등이 상이하며, 해병대 사령부 직제에
해병대 군수기능이 보장되어있고, 연합해병대사 창설로 해병대사령부 군수업무가 확대되었으며,
해병대사 예속 군수지원부대가 창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사 군수참모처장은 예하 부대 군수참모 보다
하위개념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군수관리는 해본/해군 군수사에서 직접 관리 및 전담하는 등
해병대사령부의 군수기능이 전무한 상태이다.
'해병대 독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병대 원상회복 이론적 법률적 근거제시(3) (2) | 2022.11.15 |
---|---|
해병대 원상회복 이론적 법률적 근거제시(2) (1) | 2022.11.15 |
해병대사령부 해체후 떠도는 소문들(누적된 앙금과 갈등설) (0) | 2022.11.15 |
해병대사령부 해체후 떠도는 소문들(정권 안보설 3) (1) | 2022.11.15 |
해병대사령부 해체후 떠도는 소문들(정권 안보설 2) (0) | 2022.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