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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군사 소식

6·25 ‘개성 탈환 작전’...한 집안 5형제 유격대 있었다

by 충실한 해병 2023. 4. 3.
6·25전쟁 당시 미군 비정규 부대인 ‘울팩(Wolfpack)’의 제1부대 대대장이었던 고(故) 이영이씨가 전우들과 찍은 사진. “고인의 유품”이라며 본지에 사진을 제공한 유족들은 “이들 중 누가 고인인지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국방부는 이날 “차남 이영이씨를 비롯해 영일·영걸·영우·영익 등 5형제가 모두 울팩 여러 부대에 몸담아 활약한 공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유족 제공
 

서울을 재탈환하고 북진(北進)에 나설지 기로에 있던 1951년 3월. 황해도 출신 주민으로 구성된 미군 비정규 첩보대원들이 야음을 틈타 개성에 침투했다. 미션은 적 방어선과 병력 동태 파악이었다. 수집된 첩보는 개성 공격 작전을 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안 방어선이 취약한 것을 파악, 기습 상륙작전을 펴기로 한 것이다.

국군과 미군은 기습 작전의 성패를 비정규 유격부대에 걸었다. 강화도와 황해도 출신으로 구성된 이들은 누구보다 지리를 잘 알았다. 유격대는 1951년 4월 9일 새벽 기습 상륙작전으로 개성을 급습, 이틀 만에 도시를 장악했다.

개성 탈환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 부대명은 ‘울팩(Wolfpack)’. 미 8240부대 예하 부대지만 계급장 없는 비정규군이었다. 국방부는 수십년간 봉인됐던 기밀 자료 등을 분석하고 인터뷰 조사한 결과, 이 부대에 ‘한집안 5형제’가 있는 사실을 발견해 30일 이를 공개했다.

개성탈환에 공을 세운 비정규 유격대 울팩부대에서 활동한 5형제중 차남 이영이(붉은 원)씨가 동료 대원들과 찍은 사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난 장남 이영일, 차남 영이, 삼남 영걸, 사남 이영우, 오남 영익이 그들이다. 장남과 차남, 삼남은 각각 작전관, 대대장, 통역·유격대원, 사·오남은 유격대원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울팩 1부대 대대장이었던 차남 이영이는 6·25전쟁 휴전 이후 육군 소위로 근무도 했다. 사남은 1958년 24세로 먼저 고인이 됐고, 장남은 2002년 77세로, 차남은 2015년 87세로 별세했다. 삼남과 오남은 현재 92·84세다.

국방부는 이들 5형제를 비롯해 6·25에서 비정규군으로 활약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을 지난 1년간 1792명 찾아 공로자로 인정하고 1인당 약 1000만원, 총 176억원을 지급 결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2021년 10월 시행된 ‘6·25전쟁 전후 적 지역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생존한 삼남 이영걸씨는 “형님들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조국을 위해 수많은 유격전을 실시하고 고향을 수복하고자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먼저 고인이 되신 형님과 동생이 자랑스럽고 그립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번 심의에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실제 주인공 첩보원 부부의 공로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인 ‘팔미도 탈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켈로부대원 이철과 최상렬은 임무 수행 중 만났다.

이철(노란 점선) 소장이 인민군복으로 위장한 출동직전의 대원들과 찍은 사진

이철은 전쟁 초기 서울·인천 지역 첩보 수집을 위해 서울로 잠입해 최상렬의 집 지하실에 첩보 기지를 구축하고는 최상렬과 함께 인민군 또는 피란민 부부로 위장해 적군 사령부 동향과 배치 등 중요 첩보를 수집했다.

이철은 영화에서 배우 정준호가 연기한 서진철이라는 인물의 모티브가 됐으며 팔미도 탈환 작전의 핵심이었다. 또 북진 작전 중에는 평양 일대에 첩보 기지를 구축하고 중공군 참전 등 핵심 정보를 보고한 민완 요원이었다.

이철과 최상렬은 1951년 11월 30일 서울시장 주례로 열린 켈로부대원 12쌍 합동결혼식을 통해 실제 부부가 되면서 남편과 아내의 인연을 맺었다. 이철과 최상렬은 각각 나이 아흔이던 2013년, 2020년 별세했다. 장남 이성훈씨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국가가 이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박정숙과 윤종상 모자 첩보원.박정숙은 전쟁 전인 1949년 켈로부대 창설 초기부터 부대 소속 첩보원으로 활동했고 피란민·행상인으로 위장해 인민군 관련 첩보를 수집했다.
어머니 박정숙에 이어 켈로부대에서 첩보원으로 활약한 윤종상씨가 2005년 유격군 추모제에서 찍은 사진

어머니와 아들이 대를 이어 적진으로 침투한 사연도 공개됐다. 박정숙은 전쟁 전인 1949년 마흔둘의 나이로 켈로부대 창설 초기부터 부대 소속 첩보원으로 활동했고 피란민·행상인으로 위장해 인민군 관련 첩보를 수집했다. 전쟁 발발 5일 전 적 지역에서 소지하고 있던 첩보 보고서가 발각돼 포로가 됐고, 이후 전쟁 중 납북 또는 처형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현충원에 위패가 모셔진 상태다. 박정숙의 아들 윤종상은 모친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이 터지자 홀로 피란을 갔다가 교동도에서 울팩2부대에 입대해 황해도 연백군 봉화리 전투, 경원선 철로 파괴 등 다수 유격 작전을 수행했다. 올 2월 96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고인 아들 윤철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 소식을 들으셨으면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와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고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