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방 논문 자료

유일 초강대국 군대, 미군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by 충실한 해병 2022. 12. 18.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며 미군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을 정도로 거의 진리에 가까운 말이 되었다. 한때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셀 때 한·미 양국간에 잠시 통상 마찰이 있었지만 한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미국의 이미지는 단순한 우방 차원을 넘어서서 경제, 문화, 군사, 정치, 학문
등 모든 면에서 유토피아에 가까우며 필자들이 새삼스럽게 언급하지 않아도 미군에
대해서는 다양한 매체들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들은 자라면서 미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들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미군은 전쟁할 때 직접 적과 치고 박고 싸우지 않고 우선
대포와 전폭기로 적을 무차별로 때린 후에 안전하게 보병들이 탱크를 앞세워 진격한다”,
“미군들이 먹는 레이션은 오랜 기간이 지나도 절대로 상하지 않는다”, “6·25때
중공군들은 흑인 미군 병사들을 두려워하였다”, “미군 사병들 개개인적으로 보면
학력도 떨어지고, 제식 동작도 절도 있게 못하는 것 같은데 합쳐 놓으면 달라진다”,
“미 해군 항공모함 1척이면 그냥 어느 나라 군대이건 날라간다” 등등의 말들을
쉽게 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장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타당성이 있는
말들이며 어려운 군사전략을 쉽게 일반화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중공군들이
흑인 병사를 실제로 무서워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중공군의 한국동란 참전 회고록에도
중공군 38군 사령관이 희천 전투시에 미군 흑인 연대가 별도로 편성되어 방어하고
있다는 소문에 미군을 두려워하여 공격 타이밍을 놓쳐 모택동과 팽덕회로부터 심하게
질책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걸프전과 유고 공습을 계기로 월남전과는 다른 미군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미군이 탈냉전기를 기점으로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과 현재까지 미군이 고통스럽게 진행시켜 온 개혁과 혁신은 잘 소개되지
못했으며 현재 미군의 기간 전력이 정확하게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지는 국내 민간
전문가들도 간혹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미군의 군사혁신과 최근의 군사정세는
매우 중요하므로 이에 대한 교훈을 한국군이 배우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이에 짧은 지면이지만 단순하게 미 군사력을 평가하기보다는 1980년대와는 현격히
달라진 미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위주로 필자들이 생각한 바를 피력하기로
한다.

 

   1980년대와는 다른 미군의 이미지

 

   ⑴ 1980년대의 미-소 두 초강대국 군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같이 신문의 외신란을
채운 기사는 단연 소련의 팽창 정책과 소련군의 동정이었다. 물론 당시는 동·서
냉전구도라서 미국과 서방측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 과민하게 반응하였던 측면도
있었지만 실제로 소련군은 500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붉은 군대로 유럽을 위협했었고
KGB의 위력도 대단했으며 아프간을 침공하여 서방측과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또한 중동의 회교 국가들을 지원하여 테러 문제도 심각했었다. 심지어는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의 카라급 순양함 뻬뜨로파블롭스끄호가 홀홀 단신 미 본토 서부
해안에 접근한 적이 있었는데 공격용 무장이 전혀 없는 대공 순양함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톱 기사로 등장했을 정도로 동·서 냉전은 자유진영 국가들에게는 중요한 안보문제가
되었었다. 필자들이 당시 받은 솔직한 느낌은 ‘이러다가 미국이 소련에 밀리는 것
아닌가’ 우려할 정도로 자유 진영 국가들은 병력 수와 보유 무기, 장비 수량에 있어서
공산진영보다 크게 열세에 있었고, 실제로 당시 외국의 저명한 군사전문가들도 동독,
체코 주둔 소련군과 바르샤바 조약군이 약 3만대에 이르는 기갑 전력으로 유사시
서독과 덴마크로 기동전을 펼칠 것으로 우려하였던 반면에 고작 서독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서독, 벨기에, 덴마크 등 NATO의 기갑 전력은
모두 합쳐 채 1만대 정도였으므로 수적으로 3 : 1의 열세에 있었다. 이 외에도 공군,
해군력에 있어서도 수적 열세는 심각했으며 겨우 무기체계에서 질적으로 서방측이
약간 앞서 있는 정도였다.

 

   1990년 8월에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걸프
전역에 다국적군이 집결할 때까지만 해도 국제적으로 저명하다는 전문가들조차도
과연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인지, 공격한다면 어떤 전쟁 양상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했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은 유럽형 공지전투나
과거 4차 중동전 스타일의 기동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따라서 언론에서는 이라크
기갑 전력과의 전차전과 진지전(이라크측 용어로는 수메르式 진지전)까지 상정하여
양측 지상 전력을 비교하고 많은 회의론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며 미군의 증원 과정이
단순히 對이라크 압박용이라는 견해도 많았었다.

 

   ⑵ 정보화 시대를 앞당긴 걸프전을 수행한 미군

 

   그러나 전혀 예상과는 다르게 미 중앙군과 다국적군은 지상전을
수행하기 전까지 40일간의 항공전역만으로 걸프전(사막의 폭풍 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산업혁명 수준의 큰 충격을 주었으며 첨단화가 눈앞에 펼쳐져
모든 분야에서 일대 사고의 전환을 이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현재 빌
게이츠의 정보화 혁명이 20세기말을 특징 지우는 것처럼 말들을 하고는 있지만 정보화
시대를 개막한 것은 단연코 걸프전에서의 정보전과 정밀유도무기에 의한 첨단과학전이었다.
참고로 당시 전세계적으로는 민간 부문에서 고작 워드 프로세서와 286 컴퓨터를 최신
기종으로 여기며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첨단 컴퓨터 기술을 극대화한 미군의 과학기술은
민간 부문을 선도하기에 충분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라크군이 결코 약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의 TV 시청자들은 미 공군의 레이저 유도무기가 이라크의 전략시설을 강타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라크의 전력을 평가절하 하였을 지 모르지만 이라크군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현대화된 실전 경험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고, 조밀한 현대식 방공망을
갖춘 정예화된 지상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해군력을 제외하고는 육군, 공군의 무기체계의
질적, 수적 규모에서도 프랑스, 터어키, 한국 육군과 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군대이었다.
그런데 이런 강대국군을 단 100명 정도의 적은 희생만으로 궤멸시킨 미군 병력이
전체 전술용 전력의 고작 20% 정도였다는 사실은 더욱 놀랄 만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획기적인 항공전략과 해양전략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우리가 현재까지도 작전술
이론의 근간으로 삼는 단순한 기동전 또는 공지작전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획기적인
것이다.

 

   ⑶ 탈냉전 이후 미군의 고통스런 개혁과정

 

   걸프전의 승리도 잠시, 미군은 스스로 일구어낸 탈냉전기로
인해 큰 고통을 감수하게 된다. 첫째로는 냉전의 붕괴로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
되었고 주요 대규모 전쟁의 위험성은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세계 안보정세가 더욱
다극화되면서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여 국지분쟁이 늘어났으며 군사력의 해외원정
임무가 잦아졌다. 특히 소말리아 내전에서 보여준 미군의 해외원정 작전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걸프전에서는 그렇게 현대화된 적을 일거에 무력화 시켰던 미군이지만
소말리아에서는 준군사력 수준의 반군들에게 미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둘째로는 공산권의 몰락으로 인해 미군은 다른 서방 국가들과 함께
과도한 군사력을 축소하면서 오히려 전력을 강화시켜야하는 개혁 작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감축 규모는 상징적인 차원이 아니라 대규모 인력과 조직 감축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므로 각 분야별로 반발 속에서 퇴출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했으므로
매우 큰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소된 인력으로 전략과 작전교리를 새롭게
수정하고 많은 행정업무를 다시 재편해야 하는 암울한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미군의 모습과 고통스런 개혁작업은 별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최근에는
과도한 병력 감축의 여파로 일부 부작용이 발생했으며 win-win 전략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감도 나오게 되어 소폭의 증강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최근 미 국방성에서
발표한 QDR(4개년차 국방보고서)을 보면 2015년까지 현재의 병력을 더욱 감축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질 계획이며 그 공백을 인력의 정예화와 업무의 효율화, 무기체계의
고도화, 전략, 전술개념의 혁신으로 해결한다고 하는데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발발된 1999년 4월의 유고 공습은 미군의 21세기
면모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언뜻 외견상 유고 공습은 유럽
문제에 국한되며 전쟁 수행방식도 걸프전과 유사한 항공전역(air campaign)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걸프전 보다 발전된 미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미군과 NATO군은 유고슬라비아를 완파시키는 데에 단 1명의 전투손실도 없었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군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미군으로부터 교훈을 배우자고 하면 우선 연상되는 것이 우주왕복선을
수십 차례나 우주에 보내고 태양계 밖까지 우주탐사선을 보내는 국력과 각종 첨단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초강대국의 면모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미군이
노력한 이면을 고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군이 사용하는 모든
체계가 첨단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들이 사용 연한 40년 이상이 되는
장비들을 아직도 전략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면모도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오늘의 미군을 있게 한 저력으로 판단되며 한국군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간단하게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⑴ 지속적인 군사전략 패러다임의 혁신

 

   걸프전이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정보화전으로 치러졌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군사전략이 발전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를 추진한 많은
미국의 군령권자들이 있지만 단연 Warden 대령의 혁신적인 항공전략이야말로 군사작전의
대변혁을 이끌었으며 일개 대령의 이론을 높이 평가한 군령권자들도 존경받을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Warden의 이론은 모든 군에서 연구가 많이 되었고 한국군도
이를 바탕으로 전략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걸프전이 끝나자마자 이미 2030년까지를 내다보는 장기 플랜(long-range
plan)과 비전을 수립하였다. Spacecast 2020, AirForce 2025, New World Vistas 등은
형식적으로 말뿐인 비전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향후
30년후에는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를 각 세부 분야별로 정립한 방대한 내용이므로
인류는 그 비전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어느 특정 부서가
task force를 구성하여 제한된 인력으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여
갖가지 아이디어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사고하고 연구하는 미군의
의지를 교훈으로 배울 수 있다.

 

   ⑵ 전세계의 해군의 항공모함 보유 수보다 많은 미 해병대의
중형 헬기 항모

 

   우선 미 해군을 연상하면 항공모함 전력을 누구나 들 수 있다.
현재 미군을 제외하고 4만톤급 이상의 캐터펄트 추진 항공모함을 운용하는 국가는
없다. 고작 1만5천톤에서 4만톤 내외의 각종 항공모함이 미국을 제외한 강대국 해군이
운용하는 항모 전력으로서 이들 항모는 경항모와 소형 항모로 구분된다. 그런데 미
해군은 차치하고라도 해병대에만 4만톤급 이상의 소형 항모형 강습양륙함이 10척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을 제외한 강대국
해군들이 보유한 소형 항모가 약 10척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미군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이런 전력정비가 가능하도록 군 구조를 키워 온 미국으로부터 얻는 교훈은
매우 중요하다.

 

   ⑶ B-52, F-14, U-2 항공기 운영에서 배우는 교훈

 

   융단폭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B-52 폭격기는 6·25 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에 시험비행에 성공하여 1955년에 실전 배치된 항공기이다. B-52
폭격기는 현대화된 제트 여객기 및 수송기의 등장을 본격적으로 이끈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전세계적으로 현대화된 승용차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기술혁신을 앞당긴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월남전 북폭작전에서 공산세력들을 현저히 약화시키는데 공헌하였고
걸프전에서는 최정예 공화국 수비대를 궤멸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유고
공습에서도 순항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는 등 연령 50세를 바라보는 항공기로서 장수하고
있다. 1950년대형 무기체계로 현재 전세계 군대가 운용하고 있는 것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괴가 구형 제트전투기와 전차를 운용하는 것 외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B-52 폭격기가 2030년까지 운용될 것이라는 미군측의 발표도 있었다. 그만큼 항공전략은
노후한 체계라도 운용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승수효과를 제공해 주며 첨단체계만을
운용하는 미군이 50년대형 항공기를 운용하는 것은 정보화 시대에 하등의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또한 1960년대 초에 소련 상공을 감시하던 것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유명한 U-2 고공정찰기가 아직도 전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 해군의 F-14 제공 전투기도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하면서
현재까지 변함없이 고성능을 유지해 온 첨단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강대국
공군들이 보유하려고 하는 차세대 기종들이 일부 전자장비 분야에서는 21세기형으로
제작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F-14 수준급으로 볼 때 서구 선진국 보다 약 20년 앞선
미국의 과학기술을 단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군용 무기체계라고 할 수 있다.

 

   ⑷ 49만명의 병력으로 전세계 안보를 책임지는 미 육군

 

   우리는 흔히 미국 같은 초강대국의 지상군 병력이 약 100만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 육군 병력은 한국 육군, 터어키
육군 보다 적은 49만명이며 이중 여군이 약 6만 7천명 수준이다. 그렇지만 미 육군의
전투력과 엄청난 화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들은 미 육군이 그 병력으로
전세계를 어떻게 관장하고 전략적 억지력을 행사하며 수천대의 헬기를 운용하면서
압도적인 정밀 화력을 구사하는 지 그 근원을 배울 필요가 있다.

 

   결론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과 장병들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크게 우려하였다. 물론 일부 대형 방위력 개선사업은 지연되는 등 차질을
빚었지만 큰 문제없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군이 건실한 전력정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이었다. 이런 위기 극복에는 국민들의 고통이 가장 컸지만 전 장병들도
유래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통 분담에 참여하고 가장 효율적인 군 운영과 물자절약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여 얻은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군은 이런 위기를 오히려 군
발전의 기회로 삼아 21세기를 대비하는 작업들을 묵묵히 수행해 왔으며 이를 전투력
발전과 안보전략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서 가장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도출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선진국 군대에서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이런 스타일의 군사혁신은 우리 여건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전략형 군 건설을 반드시 이룩해야 하는 한국군으로서는 외국군의
좋은 장점을 우리 여건에 맞게 창안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핵심은
전쟁수행 개념의 변화에 따른 군사력 건설이며 군대의 운용개념 역시 과거와는 다르게
발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