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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논문 자료

UN PKO 활동의 참여를 통해 바라본 아시아지역 군사동향 및 전략적 상황의 변화 _박현식

by 충실한 해병 2022. 12. 18.

소령 박 현 식
UN 인도/파키스탄 군사정전 감시단 본부 작전참모,

 

서 론

인도/파키스탄 유엔 정전감시단에서 1년여 동안 초소생활과 UNMOGIP (United Nations Military Observer Group in India & Pakistan) 본부의 참모장교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각종 정보와 캐시미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조치하면서, 그동안 표면적으로만 접해오던 정책/전략이라고 하는 개념을, 실제 상황들과 연계하여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11월 26일부터 캐시미르 지역의 LOC (Line Of Control: 통제선) 일대에서 갑자기 포격과 총격이 멈추었을 때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정전감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군 감시단 장교들과 본부요원 조차 일시적인 소강국면을 맞은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양국간의 평화협정을 위한 서막이었음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캐시미르 지역을 앞에 두고, 치밀한 계산에 의한 움직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캐시미르 지역의 문제를 두고 그동안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 되었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주장하여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한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결코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나있었다.
다만 현실적인 해결방법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캐시미르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의 핵전쟁의 발발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지금껏 유엔은 정전감시 임무를 수행해 왔었다.
이렇듯 쉽사리 풀릴 수 없다고 했었던 문제들이, 불과 지난 1년간의 시간동안에 갑자기 급물살을 타듯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양국 수상의 상호 방문과 함께 단절되었던 항공기 노선이 재개되고, 열차 그리고 버스 노선 또한 논의 끝에 곧 개통이 될 것이며, LOC 일대에서 실제적으로 병력의 철수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이곳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 매우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변화의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물밑 활동들이 있었고,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함께 이라크 전쟁이라고 하는 양면전을 실시 해야만 하는 미국은, 정책적 변화와 함께 전략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미국의 정책/전략적 변화에 따라, 캐시미르를 협상 테이블 앞에 놓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자국의 이익이라고 하는 당근들에 의해 그동안 첨예하게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지속해 오던 주변국들이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지난 54년간 UN이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달성하지 못했던 양국간의 캐시미르 분쟁을 둘러싼 갈등의 깊은 골이 어떻게 1년이라고 하는 단시간내에 치유가 되고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여 양국간의 평화협상과 함께 상호 공존의 길로 돌아서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서남아시아 지역 특히, 캐시미르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장교들과, 경험과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작성하였다. 미약한 글이지만 이 지역에서 정책/전략의 변화에 따라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또 현재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오랜 과거의 사실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시사적인 사항에 중점을 두고 설명을 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한국군 발전을 위해, 장교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조금이라도 마련하게 되었으면 한다.

본 론

1. 파키스탄의 지원하에서 미국의 '항구적 평화' 작전

미국은 9·11 사태 이후에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을 지원했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뒤로 하면서 ‘항구적 평화’ 작전을 시작 하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는 나라는, 과거 소련연방과의 전쟁을 통해 외부 세계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규전 보다는 비정규전 방식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오랜기간동안 전쟁을 치루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비록 열악한 장비로 무장되어 있지만, 게릴라전에 능숙하여 (구)소련군도 결국 10년이라고 하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으며, 아무런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이렇듯 구소련이 전략적 패배를 맛 보았던 곳이며, 특히 미국의 경우에 있어서 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러한 국가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병참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는 나라는 바다를 통해 들어갈 수가 없으며 인접국으로는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기르기즈스탄, 중국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병참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란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을 통해 가기 위해서는 카스피해를 지나 다시 험난한 지형을 극복하면서 보급작전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지도를 잘 살펴보면, 아프가니스탄의 동쪽으로 국경을 함께 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카라치라고 하는 대규모 항구를 가지고 있고, 인도양을 향해 열려있는 곳이기에 병참선을 운용하는데 적합한 곳이며,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대부분 국경을 함께 하고 있기에, 아프가니스탄의 어느지역으로든 진군이 가능하며, 만일 파키스탄이 병참기지와 함께 공군기지 등을 제공해 준다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데 장애가 되는 병참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회교)간의 갈등의 모습으로 시작이 되었기에,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이  미국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할 것이고,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로서 과거 소련에 대한 아프가니스탄의 항전을 적극 지원했었기에, 그 이후 탈레반 정권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미국도 당시에는 냉전의 구조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해 왔었다.
따라서 잘못하면 병참기지와 군사작전을 위한 작전기지를 제공받기는 커녕, 아프가니스탄과 싸우기 전에 먼저 파키스탄과 싸워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이는 결과를 갖게 된다는 것을 미국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반미를 외치는 최대 1만명의 파키스탄 부족들이,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의 대미항전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으로 몰려든 가운데 일부 민병대들은,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지원에 항의해, 중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를 봉쇄하기도 했었다. 또한 탈레반군은 파키스탄의 국경지대로 잠입해 들어와, 지원병과 의약품, 식품, 현금 등을 조달하는 병참기지를, 파키스탄 부족들의 도움을 받아 건설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99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파키스탄의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 (Pervez Musharraf)’ 장군이 있었기에, 여러가지 갈등과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군사기지와 정보를 제공 하도록 만들어 이러한 전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약속대로 미국이 지상군 작전에 돌입할 시기에 파키스탄내의 자코바바드, 파스티, 달반딘의 3개 공군기지를 제공하여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한 작전기지를 제공하였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무하마드 오마르’ 탈레반 지도자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내의 지지를 최소화 시키고, 파키스탄내 탈레반 지지운동도 약화시키는 등 커다란 성과를 거두워 미군의 작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그는 많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미 입장을 굳혔으며, 지금까지 이슬람 근본주의 및 인도와 알력을 빚는 캐시미르 지역 분리주의 단체들을 포함하여 모두 13개의 이슬람 무장세력을 불법화 하였고, 이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모두 유죄판결을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알카에다 조직의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슬람을 배신했다. 이슬람 교도들은 무샤라프 정권을 전복 시켜라.”고 촉구했었고, 이러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2003년  2차례에 걸친 무샤라프 대통령 암살 시도가 이어졌었다.
이렇듯, 강력한 군부의 장악이 없이는 정권유지가 어렵다는 판단하에, 무샤라프 대통령은 군복을 벗고 민간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했었던 그동안의 약속을 급박한 상황의 변화로 인해 이행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 있지만 막강한 실질적 힘을 가지고 있는 참모총장직을 내놓지 않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대통령으로서의 직위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막강한 군부에 대한 지휘권을 내놓는다면, 그의 정권은 크게 흔들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강경 이슬람 정당 연합체들은 지금도 우선 무샤라프 대통령의 군복을 벗기기 위해 총력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절대 무샤라프 대통령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전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파키스탄의 민주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 무샤라프 장군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제의하여 그에게 힘을 실어 주었었는데, 그 이유는 “무샤라프 대통령만이 파키스탄을 문제의 골치덩어리로부터 조심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이 나라를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 하였다.
또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한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30억달러의 원조를 비롯한 여러가지 지원을 약속했다. 왜냐하면 미국은 무샤라프 정권의 지원이 없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조기에 승리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이슬람의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다. 파키스탄은 과거 이란, 북한 등에 핵무기 제조기술 등을 제공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들을 상대로 이같은 사실을 조사중에 있었고, 친미 성향의 무샤라프 정권이 전복되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정권이 수립 된다면, 미국의 ‘핵 확산’저지 노력은 큰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핵의 위협이 직접적으로 미국을 향해 겨누어질 수 있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2. 테러와의 전쟁의 장기화: 전략적 변화 요구

파키스탄 대통령 무샤라프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성공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하여, 조기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고, 미국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구성된 과도정부를 구성 시키는 등, 빠른 속도로 전후처리를 해 나가던 가운데, 핵심중의 하나인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지 못하여, 이를 수색해 나아가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초래하게 되었다. 아직도 거점을 점령하고 저항하는 알카에다 잔당을 소탕해야 하기에, 결코 바라지 않았던 것이지만 장기전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최종상태를 최초 계획대로 달성할 수 없었다. 점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 소모전의, 형태로 전환 되어지는, 어둠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드리워지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동쪽으로는 알카에다와 탈레반 잔당들이 전략적인 변화를 추구하여, 장기소모전의 형태로 국면을 전환시킬 목적으로, 인도-파키스탄 분쟁을 조장하기 위해 캐시미르에서의 테러활동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미국 첩보당국이 포착하였고, 인도의 국방장관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지역의 파키스탄령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세력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양국간에는 신경전을 벌일 수 있는 문제의 여지를 갖게 되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서쪽으로는, 옛소련 공화국 그루지아의 무장세력과 알카에다가 연계활동을 펴고 있다는 첩보를 수집하여, 특수부대 200여명을 그루지아로 보내, 그루지아 정부군의 군사훈련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이란은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의 친서방화를 노리는 미국의 의도에 맞서, 이슬람 세력권내 안착을 목표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미국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
또한 약 1만 3,000명에 해당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옛 탈레반 통치지역에서의 혼란과 기아를 피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남서부 국경지대로 몰려들고 있는데, 이들 난민들 속에 테러리스트들도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난민 문제를 인도적인 측면에서 다루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성공적인 1단계 군사작전에 이어서, 2단계 대테러 전쟁에 진입을 하였는데, 이 2단계 작전은 테러범들의 은신처를 제거하기 위한 지속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의 시민을 위협할 테러범들의 은신처를 제거하기 위한 지속적인 작전”임을 강조하였었다.

3. 대테러 전선이 빠르게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파키스탄으로 이동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면서, 보호막을 잃은 알카에다 조직들이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으로 향하여,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선이 빠른 속도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초기작전에 있어서,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작전에 실패한 미군은,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북부 산악지역으로 도주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특수부대를 파키스탄으로 파견하여 라덴과 그 추종자들을 추적하였지만 체포에는 실패를 하였다.
이후 CIA 정보분석가들이 밝힌바에 의하면, 라덴은 이미 미군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수색망을 벗어나, 해로를 통해 파키스탄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고, 파키스탄은 빈 라덴이 이란으로 탈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또다른 정보기관에서는, 빈 라덴이 인도령 캐시미르 지역으로 도주하였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가 인도령 캐시미르 지역에서 빈 라덴을 추적하기도 했다.
비록 빈 라덴의 체포에는 실패를 하였지만, 미국은 적극적인 군사작전의 의지를 널리 보이고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안보를 유지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할 것”이라고 미 국방부 장관 럼스펠드가 밝혔었다.
이에따라, 파키스탄의 북서부 산악지역에서 전개중인 알카에다 잔당 수색작전에, 미군을 직접 대거 투입시켰으며, 알카에다의 거점 등을 직접 공격하는 군사작전을, 파키스탄 정부와 협의하에 실시하였고, 이란에 대해서는 알카에다 병사들에게 이란이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며 비난을 하면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로 이란 정부를 견제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군사력이 강하고 튼튼한 경제력이 뒷받침 되고 있다 하더라도, 장기전을 통한 전력과 전비의 소모를 아무런 부담이 없이 감수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군벌 수십명에게 전쟁과정에서 협력하는 대가로 700여만 달러와 위성전화 등 자금과 첨단장비를  제공하면서, 신속히 전쟁을 끝내려고 했으나 의도와는 달리 장기전에 돌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미국 군 수뇌부도 세계적인 대테러 전쟁이 최소한 6년이상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엔 평화유지군만 해도 계획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3만여명의 평화유지군을 추가적으로 증원이 되어야 한다고 유엔특사가 또한 언론을 통해 밝혔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많은 병력의 투입이 요구되고 이렇게 투입되는 병력이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 임무로는 부족한 지상군벌 달래기, 신생정부 보호, 미군 저격방지 등과 같은 치안활동 위주로 전락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실시한 이후에는 양면전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것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더욱더 미군으로 하여금 장기전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에 부담을 주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궁여지책으로 전략적 제휴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주변국을 이용하여 철저히 아프가니스탄을 고립화시키고, 커다란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도 시간이 흐를수록 적은 스스로 약화되고 결국 항복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특히 파키스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된 것이다.

4.캐시미르로 부터의 병력 전환이 필요

미국은 더욱더 많은 파키스탄 군병력을 서부지역으로 끌어들여, 상황을 호전시키고자 생각을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병력을 전환시키기가 어려웠다.
병력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캐시미르 지역이 안정이 되어 평화협상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인데 이라크전을 일으킨 2003년 당시의 상황은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서 병력의 전환은 커녕, 파키스탄 정부가 인도-파키스탄간의 캐시미르 지역의 긴장고조를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서 병력을 빼내 인도와의 접경지역으로 이동을 시키려고 할까봐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가 병력을 캐시미르 지역으로 이동시키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해야 될 지경이었다.
미국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인해, 파키스탄은 단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기간 동안 사용해온 공군기지 4곳 중 2곳에서 철수해 줄 것을 요구한 정도에 그치고, 인도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부를 색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에 배치된 병력을 줄이지는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은 일단 발등의 불을 꺼 놓은 상태에서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기회에 그동안 풀기 어려웠던 과제인 캐시미르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얽혀있는 미국의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인식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때 반드시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은 평화적인 해결방법이어야 할 것이고, 또 하나는 시간을 끌지 않고 빠른 시간내에 양국간의 평화회담이 종결되어, 병력철수와 같은 실제적이 움직임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제조건을 바탕에 두고 미국 국무장관이던 콜린 파월이 남아시아 방문과 때를 맞춰, 해묵은 분쟁지역 캐시미르 접경에서 인도-파키스탄 군이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정전협정 위반사항들이 발생하였다.
이날 충돌은 특히 파월 미 국무장관이 양국간 자제를 촉구한 지 몇시간도 안돼 촉발한 것이어서,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에 대한 ‘대테러 작전’에 나선 미국을 곤욕스럽게 했었다.


5. 캐시미르 지역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만 상호공존이 가능

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전쟁을 통한 해결방법은 결코 양국의 발전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3차에 걸친 전쟁을 통해 양국은 깊이 인식을 하고 있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있는 이러한 시대에, 다시금 전쟁으로 인해 수십년을 후퇴한다고 하는 것은, 상호공멸을 자초하게 되어, 지구상에서 가장 낙후한 국가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음을 알고 있었기에, 상호공존을 위한 평화적인 협상의 기본틀은 이미 갖추어져 있는 상태에서,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무샤라프 선언

캐시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동안 여러가지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지만, 파키스탄, 인도, 중국, 캐시미르 등 자국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는 민감한 사항들이라서, 어느것 하나 상호간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최근 무샤라프가 인도정부에 제시한 ‘무샤라프 플랜’을 살펴보면,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기존에 파키스탄이 주장했었던 캐시미르의 독립, 캐시미르 지역의 중립화 또는 유엔의 관할하에 상호 통제하는 방법이 제시되었지만, 캐시미르 지역의 주민 90% 정도가 이슬람교도(무슬림)이고 그렇기에 지금껏 인도정부로부터 독립을 요구해 왔었는데, 이 지역을 독립시키거나 중립화 시킨다고 하는 것은, 결국 인도정부로 하여금 캐시미르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도정부의 반대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11월 26일부터 갑자기 전 캐시미르 지역의 LOC일대에서 모든 포격과 총성이 멈추었고, 양국간에 급물살을 타듯 성의 있는 평화회담으로 이어져, 단절되었던 라호르-뉴우델리 항공기 노선이 재개되고 열차노선과 스리나가-무자파라바드 버스노선의 개통을 추가적으로 논의하는 일련의 활동과 함께,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뭔가 교감이 오고갔고, 이러한 변화의 바탕하에 지난 2004년10월 25일에 파키스탄 정부가 재강조한 무샤라프 선언을 주변에서 힘을 가해주고 있는 듯한 형세로 바꾸어 가고 있다. 더구나 인도 정부도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할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인도는, 작년부터 캐시미르의 LOC 지역에 설치한 장벽이 완료된 2004년 11월 이후에, ‘무샤라프 선언’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방향으로 급선회를 하였고, 최근들어 LOC로부터 많은 병력을 철수 시키고 있다.
이는 LOC에 아무런 장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캐시미르 지역을 중립화 시킨다면, 그것은 파키스탄에게 공짜로 캐시미르를 내어주는 것이 되기에, LOC에 장벽을 설치하여 상호 이동이 불가능 하도록 만든 상태에서 중립화를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서 캐시미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방법을 동원하여, 현재 양국은 캐시미르 지역의 LOC로부터 병력을 철수하기로 잠정 합의를 하였고, 실제적으로 병력의 철수가 현재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
실례로 인도의 방송매체들은 2004년 11월부터 인도령 캐시미르 지역에서 실제적으로 인도군의 철수가 시작되었고, 이들은 인도의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될 것으로 공식 보도를 하였으며, 인도 국방부 당국도 역시 발표를 통하여, 군 병력이 캐시미르 지역으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확인하였다.
파키스탄 정부도, 인도령 캐시미르 지역으로부터 인도군의 철수를 확인하였으며, 이러한 인도군의 철수를 환영하고, 이것은 양국간에 긍정적인 발전을 도모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었다.
인도정부는 지금까지 캐시미르 지역에 묶여있던 인도군은 50만명에 달하였었고, 이들은 인도의 다른지역 즉, 북쪽의 중국과의 국경선 일대에 재배치 되고 또, 1,200여명에 달하는 인원들을 유엔 PKF로 활용한다고 인도측 언론을 통해 발표하였기에, 이러한 정보를 종합해 보면, 캐시미르 지역으로부터 실제적인 인도군의 병력 철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 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분쟁의 핵심이 되었던 캐시미르 문제를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을 했든지간에, 평화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인 외교의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54년간 유엔이 개입하여 풀지 못한 과제를, 미국은 파키스탄과 인도에 ‘당근’을 제시하여 일을 성사시키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고,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인도와 파키스탄은 알고는 있지만, 눈앞에 있는 자국의 이익이 크고, 쉽게 얻을 수 없는 이러한 좋은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지 않고,  문제만 일으키고 크나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캐시미르 지역에 계속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결코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호 인식한 듯 싶다.

나. 이미 핵무기 보유국가이기에 핵 균형을 유지토록 유도

미국은 전략적으로 핵확산을 금지하는 정책을 사용해 왔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안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약소국가들은 핵무장을 통한 억제전략으로, 국가안전보장을 확립 하고자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곤 했었다.
그러므로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해, 약소국가의 핵보유 의지를 사전에 저지해 왔었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러한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난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전세계에 핵무기의 보유를 알리고 핵 보유국가로 합류한 나라이다.
특히, 파키스탄은 인도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를 상대로 하기 위해서는 핵탄두 보유에 이어서 투발수단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투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며, 연구에 있어서 성공을 보장 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는, 핵 운반수단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살펴 보던 중, 핵 기술을 필요로 하면서 핵 운반수단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의 모종의 거래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북한에 비해 파키스탄은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핵 운반수단이 없고, 북한은 노동1, 2호 미사일과 대포동 미사일을 개발하여 중,장거리 핵 운반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 있었다.
두 나라는 서로의 장점을 교류하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여, 결국 양국 모두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서로가 얻고자 했던 것들을 얻을 수가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파키스탄과 북한의 모종의 거래를 최첨단 정보망을 통해 알고 있었던 듯 싶지만, 그렇다고 할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인지, 아니면 알았지만 핵을 포기하도록 대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보는 것인지 그것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핵무기를 힘들게 보유한 국가에게,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다시금 핵무기 보유 이전의 상태로 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의 보유로 인해, 거대한 인도의 군사력 앞에서도 당당히 자국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캐시미르 지역에서의 국지전 발발의 확률을 낮추게 되어, 핵 균형에 의한 평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 인도/파키스탄 양국에 대해 당근을 제시

일단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하여금 캐시미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유도하였고, 양국은 자국의 이익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하여 점차 해결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있다.
이러한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 캐시미르 지역에 평화가 조성되게 되면, 미국은 그동안 들여온 외교적인 노력이 완전히 성공하게 되어, 골치거리로 남아있던 문제들을 일거에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반전여론을 잠재울 수도 있고, 엄청난 전쟁비용도 절감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협상이 갖는 의미는 미국에게 있어서 대단한 것이며, 이것의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캐시미르 분쟁 해결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하기 위해, 거부할 수 없는 당근들을 제시해야만 했다.


라.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

미국이 9·11 테러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한 파키스탄의 협력은, 특히 병참기지, 보급로의 확보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슬람교도(무슬림)와 크리스찬과의 싸움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과의 대결양상임을 무슬림들인 파키스탄 군인들을 설득함으로 인하여, 전세계의 무슬림들에게도 이를 인식시켜 정당한 전쟁을 위한 대의명분을 부여하였다.
특히 파키스탄의 경우,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잡은 대통령 무샤라프 장군이 이끄는 개혁파들에게 있어서, 경제적인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수의 파키스탄인과 기타 지역의 무슬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자본력과 기술이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이 부족한 파키스탄에게 있어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그리고 기술적 지원과 같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일거에 얻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바로 9·11 테러사건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따가운 국제여론을 등 뒤로 하고, 일단 초기작전에 있어서 쉽사리 승리를 하였지만, 전 국토에 걸처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게릴라전에 의해, 많은 시간과 국력의 낭비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과 자본이 투자되었지만, 미국인의 안전에는 더 이상 진전이 없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은 또다른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고, 양면전쟁을 수행한다고 하는 것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전투력의 집중과, 미국내의 여론 그리고 국제사회의 군사적 도움이 필요해서 계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전쟁의 명분과 정당성을 알리고 있었으나 그 결과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적어도 산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릴라전을, 국경을 함께 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담당해 준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부담을 덜게 될 것이고, 국내의 반전 여론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 정부가 추가적으로 군대를 그곳으로 보내서 작전을 실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많은 예산과 시간이 걸려 효과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모색한 것이 현재 캐시미르 지역에 묶여있는 양국의 수십만명의 군대를 철수시켜, 그중 파키스탄 군 일부 병력을 이곳 서부지역으로 전환을 시킨다면, 손쉽게 해결이 될 수 있을 것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캐시미르 지역이 더 이상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긴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신속히 평화회담을 이끌어 내어 양국간의 군대를 이곳으로부터 철수시켜, 인도-파키스탄 양국의 이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시킨다는 WIN-WIN 전략기반이 될 것이다.
파키스탄도 역시 미국의 판단대로 캐시미르 문제를 먼저 해결 해야만 병력을 아프가니스탄 전역으로 전환 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미국은 신속히 캐시미르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 될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그렇게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파키스탄 정부는 간파 한 듯 싶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잘 알고 있는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러한 기회를 캐시미르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최대한 국가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는 철저하리만큼 계산된 국가이익 증대의 방향으로 미국을 몰아가고 있다.
이렇듯 철저히 계획된 계산하에, 무샤라프는 2004년 11월 27일 12일간의 일정으로 미국, 라틴아메리카, 영국 그리고 프랑스를 순방했는데, 다분히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기 위한 의도가 깊었고, 미국 방문기간 동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테러와의 전쟁, 중동지역의 상황에 대해 다각적인 논의를 하였고, 산악지역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파키스탄 군인들의 작전상황을 포함하여 대테러 노력에 대해 강조를 했다.
그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함께 싸워 승리할 것이며, 양국은 적극적으로 테러와 싸우고 있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에 관한 식별 및 장소에 관한 정보를 상호 공유해 가며, 효과적으로 싸우고 있음을 재차 언론에 강조하였다.
특히, 무샤라프는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파키스탄 군인들이 열성적으로 그를 추적하고 있고, 단지 알고있는 사실은 “빈 라덴은 아직 살아있다.”고 강조하여, 파키스탄 군인들의 역할 및 활동상황을 크게 강조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미국에게 있어서 파키스탄의 가치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미국에 대한 테러특수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 무샤라프의 이러한 정책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수상 ‘샤컷 아지즈’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있어서 미국을 지원하는 것은 파키스탄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하며, “파키스탄은 이 지역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이지만, 이러한 열망이 수입의 결손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라는 지극히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발언이 보도가 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무샤라프의 자국이익 위주의 이익추구에 대해서 지금껏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충분히 많은 지원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많은 것을 내어 놓으라는 듯한 무샤라프의 당당함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에 “당신들의 활동상황에 대해서 점수를 기록하지 말아라. 우리의 긴밀한 관계는 자국민과 세계를 위한 것이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언론에 토로하기도 했었다.

?riends don't sit there and have a score card that says, well, he did this, or he did that, and therefore there's a deficit. Our relationship is one where we work closely together for the common good of our own people and for the common good of the world.?...]
(Indian media -The Times of India)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 대통령의 언급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방문 기회를 통해 미국으로 하여금 파키스탄 정부에 해외무기구매(Foreign Military Sale)로 1억 5,500만달러에 해당하는 6기의 ‘팔랑스 (Phalanx)’ 대함 공격무기와, 추가적으로 오리온 대잠초계기 그리고 대전차 미사일을 판매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재래식 무기의 도입에 관하여 파키스탄 총리는 논리를 펴기를, 파키스탄의 재래식 무기의 보유는 이 지역의 평화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고, 미국으로 부터 13억 달러에 해당하는 무기구매는, 요구되는 국가방위를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마. 미국과 인도의 관계

인도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정부의 등장과 함께 새로 부각된 수상 ‘만모한 씽’은 낙후된 인도의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소모적인 국방비의 절감이 필요하고, 인접 서방국가들과의 경제적인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과 국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지난 54년 동안 국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고, 유엔에 의해 감시되고 있는 캐시미르 지역의 분쟁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도의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 많은 인원을 유엔에 파견하여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상임이사국으로의 진출에 있어서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캐시미르 지역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국제사회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전 인도의 수상 ‘만모한 씽’과 유럽연합 지도자들간에 서명한 ‘인도-유럽연합 전략적 협력관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서 협력관계의 강화는 우선적인 영역이 될 것”이라고 천명하였으며, 이는 유럽으로 진출을 하기 위한 인도정부의 정책을 ‘테러와의 전쟁’ 의지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정책과 의도대로, 인도가 유럽으로의 진출을 위해서는 파키스탄 영공의 사용이 필수적이므로 인도-파키스탄과의 평화협상은 이미 이러한 기본적인 정책하에 계산된 외교활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에 대한 비젼이 인도를 좀 더 빨리 협상 테이블로 끌어 들일 수 있는 당근이라고 판단한 미국의 국방부장관 ‘도날드 럼스펠드’는 인도 정부에 대해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이라크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인도정부가 재건과 관련된 충분한 지원을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라크로 인도군의 전개를 세세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도정부가 캐시미르 평화협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정부가 인도정부에 대해 도움을 줄 것에 관해 초점을 맞추었다.

6. 재래식 무기경쟁을 통한 양국 군사력 증대 후 장차 중국을 견제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핵 균형에 의해 더이상 재래식 군사력의 증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상호 군비경쟁을 유도하여, 양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현대화 시킨 상태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모종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장차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국가는 중국이 될 것이고, 이러한 중국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전략무기인 핵 보다도 첨단 장비로 무장한 재래식 군사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크나큰 시장인 인도와 파키스탄에 무기를 공급함으로써 미국의 군수산업을 크게 육성시킬 수 있기에,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련의 정책에 따라 미국정부는 지난 10월에 파키스탄 정부에 대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였으며, 또한 미국은 인도와의 전략적 파트너쉽을 유지해 가면서 인도정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팔기로 하였다.
이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에 대해서 상호간에 핵과 핵투발 수단에 관한 억제수단을 상호 갖도록 해주고, 상대국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상호 견제책을 갖도록 해 줌으로써, 상호간의 전력균형을 유지시키고, 캐시미르 지역으로부터 파키스탄군 병력을 절약하여, 현재 서쪽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파키스탄군을 더욱 투입시키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인 접근의 일환이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동안 지지부진 했었던 공군력의 증대를 위해, 미국정부에 요청해 왔었던 F-16 전투기 구매에 관하여 재요청을 하였다. 이는 인도정부를 매우 거북스럽게 만드는 것이라서, 미국정부는 인도정부에 파키스탄에 대한 F-16 전투기의 판매에 관하여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통보하면서 인도를 달래려 하였고, 인도는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해 판매하고 있는 13억 달러에 해당하는 무기수출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인도-파키스탄 정책구도를 간파한 인도정부는, 미국정부가 파키스탄에 대해 무기를 공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미국은 파키스탄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동시에 인도를 무기 수입국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미국의 이러한 행위는 인도와 파키스탄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평화회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여,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도-파키스탄 양국은 미국의 전반적인 정책구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으로 군비증강을 시키며 상호 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등,  두얼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4년11월 7일 인도 국방부는, 인도 동부 해안에서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발사시험을 하였음을 발표 하였다. 인도 뱅갈만에서 해군함 ‘수바하라드’로부터 250㎞ 떨어진 목표를 향해 미사일이 발사되었는데, 이 ‘다하너스(Dhanus) 미사일’은 인도군의 지대지 미사일 ‘프리터비 II’를 해군이 개량한 것으로, 인도는 최근들어 3회에 걸쳐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었다.
인도는 또한 11월 29일 파키스탄이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가즈나비(Ghaznavi)’미사일을 발사한 다음날, 실핵탄두를 장착한 지대공 미사일 ‘아카쉬’를 시험발사 하였으며, 이 미사일은 이동목표를 성공적으로 명중시켰다고 인도의 언론들은 일제히 보도를 하였다.
이러한 인도에 뒤질세라 파키스탄도 12월 7일 중거리 핵투발 탄도미사일(Hatf-IV, Shaheen-1 미사일) 발사에 성공, 700㎞ 떨어진 목표물에 대한 타격이 가능해 졌으며, 이는 인도의 수도 뉴우델리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이기에 대부분 인도의 종심 목표에  대한 공격이 가능해졌음을 발표하였다.
이들 양국은 이처럼 국가기본정책의 틀에 맞추어 짜여진 기본전략에 따라 군사적, 외교적으로 혼합된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자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익의 기본방향에 충실히 접근을 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은 인도의 수도인 뉴우델리까지 사정거리를 넓힌 전략적 미사일 발사시험 성공은 짜여진 사전 각본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구도하에서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중 실시된 핵탄두 운반 가능한 중거리 미사일 발사시험에 대해 “우리는 인도가 핵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고, 인도도 우리가 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상호 핵 미사일 실험에 대해 통보하고 있기에 인도-파키스탄간의 신뢰구축을 위한 방법에 있어서 위반이 아니다.”라고 아주 당당하게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 하였다.

?e know they are a nuclear power and they know we are. We inform each other when there are missile tests. There is no violation of our confidence-building measures,?Musharraf said. [...]
(Pakistani media -The Nation)

7. 미국의 정책과 서남아시아 인접국가 상호간의 정치적 관계

가. 파키스탄과 중국

파키스탄의 수상 ‘샤컷 아지즈’는 4일간의 공식적인 중국 방문기간 동안, 중국은 파키스탄에 있어서 방산 및 주요무기 공급국가로 아주 위대한 동반자이며, 베이찡이 현대 무기시스템을 제공함으로 인해서, 이슬라마바드의 가치가 증대되었다고 하면서, 전통적 우호관계를 재확인 하였다. (파키스탄은 그동안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과 우호관계를 맺어 왔었음)

나. 인도와 중국

인도정부는 2004년11월 29일 중국정부가 아루나찰 프레디시 (Arunachal Pradesh) 지역에 대해 ‘베이찡 선언’을 하여 발생된 영역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지상에 식별이 가능한 것에 근거를 두고 상호 화해를 제의 하였다.
중국은 ‘베이찡 선언’에서 중국의 티벳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1,030㎞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 대해 영토권을 주장하며, 인도정부에 이의를 제기해 왔었다.
이 아루나찰 브레디스 지역은 인도의 북동쪽의 말단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매우 험한 곳으로서, 소수의 민족이 살고 있다. 북쪽으로는 중국과, 서쪽으로는 티벳, 동쪽으로는 미얀마 그리고 남쪽으로는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처럼 중국이 점차 서남아시아로 세력을 팽창할 가능성이 높으며, 세력 범위를 넓히게 된다는 것은 인도와의 대결국면을 피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이 대만을 겨냥하여 군비를 증강시키고 있는데, 중국 국가정보센타가 내놓은 올해(2005년) 재정 전망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대만과의 분쟁 등에 대비해 작년대비 12% 이상을 늘여, 국방비를 2,300억 위안 (한국금액: 29조 950억원) 으로 늘릴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군비의 증가는 직접적으로 인도정부를 자극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위안: 126.1원/2005.1.15기준)

다. 인도와 러시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2일간 인도를 방문하였을 때, 푸틴과 러시아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확대를 포함한 UN의 개혁을 원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인도의 UN 상임이사국 진출과 관련된 지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푸틴은 “나는 인도가 거부권을 갖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유엔의 일방적인 개혁이 될 것이다.” 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처럼, 러시아는 현재의 국제관계를 고려해 볼 때, UN만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더 많은 수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로 하여금 거부권을 행사토록 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인도, 일본, 독일, 그리고 브라질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확대를 포함한 유엔 개혁에 대해 ‘코피아난’ 유엔사무총장에게 제의를 했었다.

“I'm convinced that India should have veto power, otherwise it will be a one-side reform of the United Nations.”-- PUTIN

러시아는 또한 군사적으로도 인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인도와 러시아 정부는, 최근 합작으로 초음속 크루즈 미사일을 인도의 해안으로부터 뱅갈만을 향하여 성공적인 시험발사를 완료했다. 인도는 러시아와 계속 합동으로 새로운 초음속 크루즈 미사일 프로젝트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을 정도로 긴밀한 군사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8. 캐시미르 문제 해결 이후의 동북아시아 과제

가. 파키스탄에 투발수단을 제공하고 핵기술을 습득한 북한

북한은 파키스탄과의 핵 거래를 통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이 4~6개 분량의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밝혔고, 2004년 12월 16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것과 같은 플루토늄형 원자폭탄 개발을 거의 마친 상태라고 하며 “당장 폐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인 ‘무하마드 엘바라데이’의 인터뷰에 의하면, “북한이 핵 사찰단을 축출하고 8000여개의 핵 연료봉을 재처리 하기 시작한지 2년이 지난 점을 감안할 때, 4~6개 분량의 핵무기급 물질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북한은 계속적인 협상을 통해 시간을 벌어, 결국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기 위한 회담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되었다.
결국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염려했던 것이 점차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이 다수의 핵무기를 제조할 만큼의 핵물질을 보유 했다면 일부를 팔거나 핵실험에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곧 핵실험을 실시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이제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력 균형은 다시 중심을 잃게 되고, 핵무기 경쟁의 장이 될 것은 불을 보듯 환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제기해온 핵개발 논리는, 미국의 공격위협에 맞서 강력한 핵 억제력을 확보한다는 것이고, 이렇게 핵을 가짐으로써 북한당국은 군사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고, 아울러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을 다짐 받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핵카드를 대미협상에 활용해 왔다.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는 대신에, 미국은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빼고, 정치, 경제, 군사적 제재와 봉쇄를 풀며, 중유, 전력 등 에너지 자원 같은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 선언이 전제조건임을 거듭 밝혀왔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북한은 어려운 경제사정 탓으로 핵을 통해 주변국가를 위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마저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에 대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나. 일본의 핵무장

일본은 그동안 중국과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미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핵무기 경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만큼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핵보유 국가로서의 이득이 없어지기에, 일본을 설득하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보호를 받도록 하는 정책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북한의 핵보유라고 하는 카드로 인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일본은 더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핵무장으로 달려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에게 있어서도 무작정 핵무장을 표면화 시키면서 달려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교묘한 방법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일본은 국제사회에 있어서 핵무장을 하려고 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제재를 가하지만, 이미 핵무장을 완료한 국가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정책을 취하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 줄 수 밖에 없는 취약점을 간파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취약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비밀리에 핵무장을 서두르고 있으며, 일단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영화나 소설 속에서 발생될 수 있는 사건이 최근 발생하였다.
최근 2004년 12월 중순경에 그동안 일본이 보유하고 있었던 플루토늄 40.7톤 가운데 210㎏이 사라져, 국제원자력기구가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이 플루토늄의 농축정도를 감안하면, 210㎏은 핵폭탄을 10개 가량 만들 수 있는 분량으로,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에게 있어서 매우 크나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발생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본정부는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며, 증발한 210㎏의 플루토늄에 대해 현재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 또한 일본에서 이러한 핵물질 도난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러한 핵물질이 테러집단으로 넘어갔을 경우에, 엄청난 재앙이 뒤따를 것을 염려하여, 우선적으로 사실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을 것인데, 너무도 조용한 것을 보면, 이것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이미 계획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철저한 사실관계의 확인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일이 있은 이후에, 일본은 플루토늄 모의 추출을 시작하였으며, 2005년 12월부터는 자체적으로 사용후 핵 폐연료봉의 핵연료를, 플루토늄으로 재처리 할 계획이라고 아사히 신문이 2004년 12월 19일자로 보도를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는 핵무기 비보유국 중, 유일하게 사용 후 핵연료를 이용해 플루토늄을 추출해 낼 수 있는 재처리 설비를 가동중에 있기때문에, 이는 그들이 그동안 그토록 갈망해 오던 핵보유국의 선포를 향해 가는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 된다.
국제사회의 여론에 동조해 가는 듯 하면서도, 실리를 찾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명분만 생기면 등을 돌리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먼 나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또다시 찾아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결  론

1. 한반도의 핵무장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변화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이 급선무가 되었다.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두가지의 경우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저지하는 경우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함으로써, 동북아시아에는 미국과 중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전력균형을 유지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을 비핵화 함으로써 핵전쟁을 방지하고, 상호 평화를 공존하는 방안이며,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는 정책으로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원만하게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다소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와 투발수단의 보유를 완료하고, 국제사회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할 경우이다. 이러한 선언은 반드시 일본을 핵무장 시킬 것이고, 한국은 북한의 핵과 일본의 핵 사이에서 무엇으로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자주성을 세우기는 커녕, 핵 보유국가들의 눈치만 보면서 조그마한 변화에도 갈팡질팡 하게 되는 약소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재래식 무기의 개발과 확보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핵보유를 위해서 치달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될 것이다.

2.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연합체계의 구성

북한의 핵보유 유무와 동북아 지역의 핵확산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우리도 인도/파키스탄 처럼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이 백만이 넘는 병력이 밀집하여 대치할 것이 아니라, 결코 풀릴 수 없는 캐시미르 문제가 이토록 급물살을 타고 해결기미를 보이듯, 양국간 상호 핵무장을 통해 긴장속에서의 평화를 향유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겠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는 재래식 전력의 많고 적음은 크나큰 변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군축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동북아 지역에 전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 미군위주의 연합체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주변국을 포함시켜 명실상부 연합사령부를 구성하여 집단안보체제를 강화시켜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3.최소한 주변국들과 적대관계를 유지해서는 안될 것이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국을 자극하여 긴장을 조성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순수하게 방어적인 측면에서의 연합체계를 구축한다고 하는 것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고, 각종 훈련에 있어서 이를 상대국에 미리 알림으로써 상호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외교적인 노력이 요구되며, 민간적인 차원에서의 경제교류와 문화교류 등을 통해서 신뢰를 구축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요구된다.

4. 아시아 집단안보체제의 필요성 대두
좀더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집단안보체제의 필요성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에서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대응하기 위해서 NATO 즉, 북대서양조약기구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가 설립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토(NATO)는 효과적으로 유럽국가들의 안전보장에 크게 기여를 하여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이와 유사하게 환태평양 지역의 국가들도 집단안보체제를 위한 기구를 조성하여, 환태평양 지역이 전쟁이 없는 평화의 지역으로 보장하고, 만일 불법적인 침략행위를 당했을 경우, 집단적으로 이를 응징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련의 활동도 점차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