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도법의 개념
국제인도법의 이론체계를 확립한 장 픽테(J. Pictet)박사에 의해 제안된 국제인도법 용어가 1970년대초 중반 제네바 외교회의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보편화되었다.
국제인도법은 인도법이라고 하는 법적 성격과 인도적 성격을 동시에 갖춘 법이다. 국제인도법은 국제법의 주요한 한 부분이면서 무력충돌 즉 전쟁이란 참혹한 상황에서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그 고통을 개선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기본목적으로 한다. 결국 국제인도법은 본질적으로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개개인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법, 국제법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그 자체가 폭력행위이며 그 폭력의 행사에는 제약이 없다’고 했다. 전쟁에서 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폭력과 무력수단을 군사적 필요성(military necessity)이란 말로 정당화시키려는 것이 현대전의 특징이다. 과연 군사적 필요성만으로 무제한적으로 무자비하게 적을 파괴하고 황폐화시켜도 되는 것인가? 사실 무제한적인 폭력의 사용은 결국 상대방의 적개심과 단결을 촉발시켜 전쟁목표달성에 기여하지 못할 수 있다.
즉, 전쟁에 있어서 군사적 필요성외에 인간성(humanity)도 필요하다. 19세기 초 이래 조약화 되었던 교전법규의 대부분이 군사적 필요성보다 인도적인 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국제인도법은 군사적 필요성과 인도성이 결합되고 결합된 힘의 상승작용으로 성립된 것이다.
국제인도법은 크게 제네바법과 헤이그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제네바법의 태동과 발전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네바법의 태동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유혈의 역사다. 기록이 남아 있는 기원전 1496년 이래, 지금까지 약 3,500년에 이르는 인류 역사중 전쟁이 없었던 햇수는 244년에 불과하고, 나머지 3,200여년은 전쟁과 유혈로 점철되어 왔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고 차후 꾸준히 추구되어야 할 지상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발생했을 경우 전쟁당사자들은 전쟁목적달성을 위해 전쟁, 전투의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그러므로 전쟁결과는 참혹하고, 그 피해는 엄청나다. 이에 따라 전쟁으로 야기되는 인간의 고통 즉, 희생자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필요성을 충족시킨 계기가 된 것은 1859년 6월 솔페리노 전투였다.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고 있던 솔페리노지방에서, 솔페리노지방을 회복하려는 이탈리아(살디니아왕국)와 프랑스의 연합군과 이것을 지키려는 오스트리아간에 대격전인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 결과 전투는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으나 전쟁터는 쌍방의 사상자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이런 비참한 광경을 본 스위스의 젊은 사업가 앙리 듀낭(H. Dunant, 1828~1910)은 부상자들을 돌봐 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솔레리노의 회상”(1862년)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여 각국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을 기회로 1863년 2월 앙리 듀낭을 포함한 스위스 제네바의 유력인사들 5명이 모여 “부상병 구호를 위한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for Aid to the Wounded)”를 설립했다. 동위원회의 명칭은 1880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앙리 듀낭이 책에서 갈망했던 두 가지 소망이 있었다. 즉 각국에 구호단체를 만드는 것과 각국에 부상병을 효과적으로 치료 및 보호하기 위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1863년부터 각국에 적십자사(Red Cross Society 또는 Red Crescent Society)가 결성되었고, 1864년 8월에 스위스정부는 제네바에서 유럽 여러나라를 초청하여 외교회의를 개최하면서 앙리 듀낭이 주장했던 5인위원회의 협약초안을 채택하였다. 이것이 “전투지역 부상군인의 상태개선에 관한 협약”으로 통상 제1차 적십자조약이라고도 하며 제네바법의 탄생 시발점이 되었다.
상기 협약은 10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부상병을 치료 및 간호하는 군 의무요원 및 의무기관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공격하거나 침해하지 못하며, 이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불가침의 원칙). 둘째 군 의무요원 및 의무기관은 중립성이 인정되므로 전투행위나 적에게 유해행위를 해서는 안된다(중립성의 원칙). 셋째 부상병은 국적을 불문하고 치료하고 보호해야 한다(차별금지의 원칙). 넷째 군 의무요원 및 의무기관은 “흰 바탕위에 적십자”의 식별표장을 하여 전투원 및 전투부대와 구별해야 한다(식별의 원칙).
“전투지역 부상군인의 상태개선에 관한 협약”이 실제로 적용된 최초사례는 1870~71년의 독일(프러시아)과 프랑스간의 소위 독·불전쟁이다. 동 협약에 의거 12개국의 적십자사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양국가에 대해 의무대, 의약품, 구호품 등을 제공했다. 이런 사실이 주변 많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독·불전쟁의 결과로 전쟁기간 중에도 특정법 규칙의 준수와 적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무기발달에 따른 전쟁의 참혹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전쟁은 제네바협약의 시험대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생긴 헤이그법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거듭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다.
제네바법의 발전
주요 내용과 발전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내용을 보완시켰다.
1906년 스위스연방정부는 35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외교회의를 개최하여 새 협약인 “전투지역 군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협약”(상병자 보호협약이라 약칭함)을 채택했다. 새 협약은 8개장, 33개 조문으로 구성 되었으며, 병자가 새로이 포함되었고, 내용이 많이 세분화되었다.
1929년 스위스연방정부는 47개국이 참가한 외교회의를 개최하여 제1차 세계대전(1914~18)의 경험을 반영한 새 협약을 채택했다. 주 내용은 상병자 보호협약을 보완(8개장 39개 조문)하고, 포로대우에 관한 협약을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1906년 협약과 차이점은 ①처음으로 의무용 항공기에 대한 보호규정이 추가, ②식별표장의 평시사용에 관한 규정이 추가, ③중상자 송환에 관한 규정은 포로대우협약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둘째, 제네바협약의 제 원칙을 해전(海戰)에까지 확대 적용시켰다.
1868년 제네바에서 14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제네바협약의 제원칙을 해전에 적용하는 문제’로 외교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전시 부상자에 상태에 대한 추가조문”문제로 비준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추가조문은 이후 독·불전쟁(1870-71)과 미·스페인전쟁(1898)때 교전국간 합의에 의해 사실상 적용되고 준수되었다.
1899년 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가 개최되었고, 주제였던 ‘제네바협약의 제원칙을 해전에 적용하는 협약’을 최종 채택하였다. 이후 1949년 제네바 제2협약으로 대체 되었다.
셋째, 포로대우에 관한 협약의 제정과 체결이다.
포로에 대한 최초의 성문법규는 제네바협약이 아닌 1907년에 개정된 육전의 법규·관례에 대한 헤이그협약 부속규칙의 규정이다. 포로에 관련된 최초사례로 독·불전쟁시 원만히 준수되었던 상병자 보호협약이 포로의 원조활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즉 부상자에 대한 치료와 보호뿐만 아니라 특히 포로를 대상으로 소식전달과 구호품의 제공활동이 있었고, 이는 포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로에 대한 적십자의 원조활동이 국제적십자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것은 1912년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9차 국제적십자회의 때 일이다.
공식 승인하에서 최초로 임무를 수행한 예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전인 발칸전쟁(1911-12)이 대표적인 사례로 포로에 관한 정보수집과 부상자, 포로에 대한 구호품제공을 하기 위한 국제기관이 적십자에 설치되었다.
192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포로대우에 관한 협약’을 외교회의를 통해 성사시켰으며 총 97개 조문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지전쟁(독불전쟁, 발칸전쟁)과 세계 1,2차 대전을 통해 얻은 것은 ①군부상자와 포로에 대한 인도적 활동이 세계대전이라는 장기간의 전쟁에서도 임무수행 가능했다는 사실이고, ②오늘날 적십자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인 포로수용소 방문과 포로에 대한 직접적인 구호품의 분배가 세계대전 참전국들에게 주요업무중 하나로 인정되었다는 점, ③적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내 민간인에 대한 원조활동이 새롭게 등장했는데 포로에 준한 대우가 있었으며, 국제포로기관 안에 민간인억류자 관리를 위한 특별부서가 설치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전시민간인보호에 관한 협약’마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넷째, 적국에 억류된 민간인 보호 활동이 새롭게 등장했다.
1899년과 1907년 헤이그 육전규칙에 의하면, 점령지역내 적국 주민의 보호 및 그들 재산의 취급에 대해 15개 조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조항만으로 세계 1차대전의 민간인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
1929년 제네바 외교회의 때 상정된 안건 중 ‘포로대우 협약’, ‘군상병자 보호 신협약’만 채택되고, ‘충돌당사국 및 점령지역내 거주하는 적국 민간인 보호협약’ 채택은 연기되었다.
민간인 보호협약의 주요골자는 점령지역 주민추방금지, 인질의 처형금지, 통신의 교환과 구호품의 수령 등 민간인의 권리보호에 관한 문제로 구성되었다.
이어서 발발된 세계 2차대전 때는 적국에 억류된 민간인에게 포로대우협약의 규정을 준용한 결과, 충돌당사국에 억류되었던 약 16만명의 적국 민간인이 포로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고, 가족간 2억 4천만통의 서신교환이 있었다.
제네바법의 완성과 4개 협약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됨에 따라 국제인도법의 새로운 발전이 제네바에서 이루어졌다. 문제는 전쟁중 적군에 의해 점령되었던 수백만의 민간인들이 아무런 보호도 없이 추방되거나, 인질로 잡히거나, 부당하게 처형되거나, 강제수용소에 억류되는 등 수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들중 수십만명이 비참하게 죽어갔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전시 충돌당사국의 영역내에 있는 외국인 점령지역 주민 및 피억류 민간인의 보호를 위한 새로운 협약을 마련하여, 1949년 제네바의 외교회의에 상정되었고, 4개월에 걸친 심의 끝에 4개의 제네바협약을 채택하였다. 이 협약들은 앞에서 살펴본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제1협약은 전투지역 군부상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협약, 제2협약은 해상에서 군부상자 및 조난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협약, 제3협약은 포로대우에 관한 협약, 제4협약은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협약이다.
이들 4개 협약을 제네바 제 협약이라고도 하며, 일차적인 제네바법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1968년 UN국제인권회의에서 국제인도법의 발전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고 이어서 UN총회에서도 무력충돌에서의 인권과 생명보호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국제인도법이 성장하고 심도 있는 발전이 이루어졌다.
1969년 적십자 국제회의는 국제인도법의 완성을 위한 제안을 작성할 것과 그 제안을 협의할 정부전문가회의를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의거 초안을 마련한 뒤 1974년 스위스연방정부는 제네바에서 외교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는 1974년부터 1977년까지 4회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최종회의에서 국제인도법의 금자탑이라고 불리는 2개의 추가의정서가 전원일치로 채택되었다.
두 내용은 1949년 제네바 제협약(4개)을 보완한 것으로서 제1추가의정서는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보호에 관한 추가의정서’를 말하며, 제2추가 의정서는 ‘비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추가의정서’를 말한다.
제1추가의정서의 특징은 제네바 제협약의 보완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보호대상자를 군 관련자외에 민간 상병자 및 조난자, 민간의무요원과 수송기관까지 확대한 점이다. 제2추가의정서는 내전의 범위를 규정하였으며, 피보호자에 대한 인도적 대우를 세분화시켰으며, 형사소추를 보완, 민간주민의 보호, 구호단체와 구호활동을 규정했다. 이것들은 종전에 없었던 획기적인 내용들로써 차후 제네바활동의 좋은 기폭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무리
국제인도법, 즉 제네바법과 헤이그법중 시기적으로 앞선 제네바법의 발생과 발전과정을 중점적으로 소개하였으며, 제네바법의 주요내용과 헤이그법은 차후에 기술할까 한다.
제네바법이 무력 충돌자와 무력충돌 주변 민간주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인도주의 법으로, 제네바법을 흔히 적십자법(Law of Red Cross)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수렁에 빠진 인간에 대해 조건을 따지지 않는 인간존중 중심의 실천, 즉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권리와 보호를 위해 실천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대한 철학이 만든 국제협약이 국제원칙이 되고 국제법이 되고 국제인도법이 되었다.
제네바법의 중요성은 전쟁의 폭력성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제동장치라는 것이다. 제동장치가 있음으로서 폭력성의 피해는 최소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최소화의 피해대상은 바로 인간 그 자신이다.
현재의 제네바법이 있기 까지 적십자들이 기울인 자구노력들이 헛되지 않았기에 무력의 폭력 속에서도 인권의 보호와 안전이 보장되고 있다. 물론 무력충돌집단과 전쟁 속에서 아직 완벽한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현재보다 더 안전하고 완벽한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군사적 필요성에 의한 폭력의 근절을 위해서, 깨끗한 전쟁을 위해 한 차원 격상된 전투기술과 생명존중의 사상이 보호될 수 있도록 국제인도법을 좀 더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국제인도법에 규정된 책임
사실상의 전쟁이든 법률상의 전쟁이든 무력충돌의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고, 군사적 필요성(military necessity)에 의해 치러진 전쟁이라 할지라도, 양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치명적인 피해중에는 주민과 관련된 부분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것은 무기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승리를 위해 무차별적인 수단의 사용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목표지역주변의 일반주민 피해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수단의 사용자제와 전쟁과 관련 없는 자의 피해를 줄이고자 세계2차대전이후, 종래의 전쟁법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발생한 것이 국제인도법이고, 그 국제인도법은 인간과 생활환경의 존엄을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강조사항중 하나가 바로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전투를 지휘한 지휘관과 이를 수행한 부하의 책임에 대한 징계처벌과 형사처벌규정이다. 이것은 종래의 전쟁법과 국제인도법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즉 종래의 전쟁법이 전투원의 보호에 비중을 두었다면 국제인도법은 전투원보호외에 민간주민, 민간물자, 인간생활환경보호등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본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국가·지휘관·부하의 책임과 처벌도 결국엔 국제인도법의 인도적 관점에서 발생된 것으로 무차별적인 전쟁수단사용금지와 목표달성에 경종을 울려주는 망치가 될 것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것은 전쟁법, 국제인도법을 누구나 알아야 한다는 점이고, 제협약체결국들은 의무적으로 이것을 전국민들을 상대로 교육홍보해야 한다점을 명문화시켜 놓고 있으나, 군부대에서조차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국가의 책임
제1추가의정서(1977년 채택, 1978년 발효) 제91조에 “제네바 제협약 또는 본 의정서의 제규정을 위반한 충돌당사국은, 그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책임이 있다. 충돌당사국은 자국의 군대구성원이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상기 제규정에 언급한 것처럼 명백한 것은, 제네나법이든 헤이그법이든, 국제인도법에 대한 위반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금전적인 배상책임에 한정된다.
종래의 국가책임은 적대행위 종료후 패전국에 국한했으나, 지금은 모든 충돌당사국들이 행한 위반행위에 대해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휘관의 책임
제1추가의정서 제87조 3개 조항은 군대구성원에 대한 국제인도법의 준수, 위반 방지 및 억제를 위해 군부대 지휘관의 책임과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무력충돌 즉 전쟁에 있어서 지휘관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무력충돌기간 군대는 국제인도법의 적용을 직접 담당하는 주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주된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 알아보고, 임무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받게 되는 처벌의 한계는 무엇인지 지금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제87조 1항이다.
본 약정 체결국가 및 충돌당사국은 군 지휘관들에게 그들의 지휘하에 있는 기타의 자에 대해 제네바 제협약 및 본 의정서의 위반행위를 방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억제하며, 권한 있는 당국에게 이것을 보고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둘째, 제87조 2항이다.
위반행위를 방지하고 억제하기 위해 체결국가 및 충돌당사국은 지휘관들에게 그 지휘하에 있는 군대구성원이 각자의 책임수준에 상응한, 제네바 제협약 및 본 의정서에 대한 의무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제87조 3항이다.
본 약정 체결국가 및 충돌당사국은 지휘관이 자신의 부하 또는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기타의 자가 제네바 제협약 및 제1추가의정서의 위반행위를 행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 또는 이미 행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경우,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과 또는 적절한 경우, 이미 행해진 위반행위에 대해 징계 또는 형사상의 조치를 취할 것을 지휘관에게 요구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이 바로 부하의 위법행위 방지를 위한 상관, 즉 지휘관의 활동이다. 이것은 제1, 2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①평시 국제인도법을 자신의 부하에게 교육실시 여부, ②국제인도법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③위반행위중인 경우 그 위반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조치, ④권한 있는 상급당국에 대한 위반행위의 보고 여부, ⑤위반자에 대한 징계 또는 형사상의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에 따라 국제인도법위반에 따른 전쟁범죄의 증감이 이루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지휘관은 징계 등 처벌을 회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형사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반행위의 주체는 자신의 부하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기타의 자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기타의 자는, 바로 전시 군의 통제하에 놓인 현지주민을 말하며, 이들의 국제인도법 위반행위를 방지하고 억제해야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휘자의 책무는 막중하다.
예를 들면, 각급지휘관은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데, 부사관은 적군의 부상병 또는 민간인을 사살하려는 병사들을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하고, 소대장은 전진중 피보호장소(부상병수용소, 응급치료소 등)에 대해 공격을 억제해야 하며, 중대장은 포로들을 포화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대대장은 공격목표가 군사목표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려야 하고, 연대장은 무차별공격이 되지 않도록 목표물을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평상시 국제인도법을 교육하고 체득하여야 유사시, 즉 전시에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불행한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인도법 위반시 지휘관의 책임범위를 살펴보면, 두가지 견해가 있어 왔다. 첫째, 지휘관은 자신의 부하에 직접 명령하고 지휘한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有限責任說). 둘째, 지휘관은 부하의 모든 국제인도법의 위반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無限責任說)
그러나 세계2차대전이후 현대에 와서 양자간의 절충안을 인정하고 있다(折衷說). 즉 ①부하의 위법행위에 대해 사전에 적절한 단속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②지휘관의 과실이나 태만으로 부하의 위법행위를 알지 못했을 경우, 지휘관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책임에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일예로 미육군 야전교범 제501항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군대지휘관은 부하들 또는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기타의 자가 행한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부대원이 점령지역내의 민간주민 또는 포로를 학살하거나 잔악한 행위를 했을 경우, 행위자(가해자)뿐만 아니라 지휘관도 문책될 수 있다”.
상기 행위가 지휘관의 명령에 의한 경우, 이에 대해 지휘관은 직접 문책된다. 이외에 지휘관은 아래의 경우에도 책임을 진다.
①부대원 또는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기타의 자가 전쟁범죄를 행하려고 하거나, ②또는 이미 행했다는 사실을 실재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③혹은 보고나 기타의 수단을 통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④전쟁법을 준수토록 하거나, ⑤또는 위반자를 처벌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에, 지휘관은 형사책임과 징계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부하의 책임
어느 국가의 군대라도 상급자의 명령에 대해 부하의 복종은 엄격하게 요구된다. 따라서 세계2차대전까지는 상급자의 명령에 의해 부하가 헤이그법 또는 제네바법을 위반했을 경우, 그 위반행위에 대한 책임은 명령을 지시한 상관에게 있었고, 부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것을 상관명령주의 또는 상관명령에 의한 부하의 면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1946년, 독일 전쟁범죄를 심리하고 처벌했던 뉴렘버그 국제군사법원 규정 제8조에 의해, 부하의 경우에도 위법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즉 상관의 명령에 의한 경우에도 위법시 부하라 하더라도 징계와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8조에 의하면 “피고인이 자국정부 또는 상관의 명령에 의해 행동하였다는 사실은 피고인의 면책사유가 되지 않는다. 단 정의를 위해 필요 하다고 법원이 결정하는 경우, 이를 감형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
미국 야전교범 제509항에는 “상관 또는 상급당국의 명령에 따라 전쟁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법원심리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항변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단, 명령행위가 위법임을 피고인이 알지 못했거나 또는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어떤 경우이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는 식으로 전쟁범죄에 대해 항변을 해도 인정되지 않으며, 단 정부 상관 명령에 의해 행동한 자는 감형사유로 고려될 뿐이다....... 군대구성원은 오직 적법적 명령에 대해서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월남 민간주민 살해사건(My Lai)의 경우, 군사법정에서 판결한 내용은 통상적인 상식으로도 상관명령의 위법성을 능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령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명령을 실행했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중요한 점은 명령에 대한 복종은 기계적인 복종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대응의무이며, 상관명령의 위법성을 판별할 수 있는 지식이 부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관은 당연히 위법적인 명령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결국 세계2차대전이후로는 절대적인 상관명령 지상주의가 지양되고, 상관의 위법적 명령에 대한 거부의 가능성이 점차 국제관행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중대한 위반행위와 형사처벌
전쟁법의 위반자중 중대한 위반행위자는 형사처벌을 부가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추세이다. 제네바법과 제1추가의정서에 보완된 중대한 위반행위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제1추가의정서 제11조 4항이다.
자신의 국가가 아닌 국가의 권력하에 있는 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또는 존엄성에 대해 심대한 위해(危害)를 가하는 행위와 아래와 같은 행위를 고의적으로 행하는 경우다.
①당사자의 건강상 불필요하거나 승인된 의료기준에 맞지 않는 의료상의 처치를 받도록 하는 행위
②신체절단, 의학실험 ‘과학실험’ 의학적인 정당성이 배제된 체 이식을 위한 신체조직 또는 장기의 제거행위
③헌혈 또는 피부기증을 강요하거나 권유하는 행위
둘째, 제네바 제협약의 제85조 2항이다.
①전투원 및 포로, 적대행위 가담자의 보호법, 무국적자와 피난민의 보호법에 의해 보호 되는 자를 대상으로 위반행위가 행해지는 경우.
②적국의 상병자, 조난자에 대해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③적국의 지배하에 있으되 의정서에 의해 보호되는 의무요원, 종교요원, 의무부대 또는 의무용 수송수단에 대해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셋째, 제네바 제협약의 제85조 3항이다.
①민간주민이나 개개 민간인을 공격대상으로 하는 경우
②과다한 민간인 생명의 손실, 상해 또는 민간물자의 손상을 야기 시킬 것을 알면서 민간주민 또는 민간물자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무차별공격을 개시하는 경우
③상기같이 손실, 상해, 손상 등의 야기될 것을 알면서 위험한 위력을 갖춘 시설에 대해 공격하는 경우.
④상기 무방비기구 및 비무장지대를 공격목표로 하는 경우
⑤전투능력 상실자임을 알면서 그런 자를 공격목표로 하는 경우
⑥적십자표장 또는 제협약 및 의정서에 의해 승인된 기타의 표지를 배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넷째, 제네바 제협약의 제85조 4항이다.
①점령국이 자국의 민간주민의 일부를 점령지역으로 이송하는 행위 및 점령지역 주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령지역 내부 혹은 외부로 추방하거나 이송하는 행위
②포로 또는 민간인의 송환을 부당하게 지연시키는 행위
③인종차별에 입각한 개인의 존엄성 침해를 포함하는 비인도적·저열한 행동 및 인종차별정책의 실행
④특별보호대상으로 명백하게 승인된 역사적 기념물, 예술작품 또는 예배장소를 공격목표로 하여 광범위한 파괴를 야기하는 행위(단, 군사목표의 직접적인 근처에 위치하지 않는 경우에 한함)
⑤제네바 제협약의 피보호자 또는 둘째항에 언급된 자들이 공정한 정식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가 고의적으로 행해진 경우
맺는 말
사실상의 전쟁이란 선전포고 없이 무력충돌이 있는 것을, 법률상의 전쟁이란 무력충돌과는 상관없이 선전포고를 한 경우를 말한다. 국제인도법은 앞의 두 종류의 전쟁피해최소화와 전쟁무관련자 보호를 전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군사적 목적달성을 위한 무차별적인 공격수단 사용제재를 위해 마련된 국제인도법중 전쟁의 책임과 처벌규정은 반드시 누구나 알아야 할 필수내용이다. 특히 군업무 관련종사자라면 말할 나위조차 없다.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한 국가의 책임, 지휘관의 책임, 부하의 책임은 면할 수 없으며, 단지 감형의 혜택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처절한 전쟁일수록 균형 잡힌 전투감각을 갖고 전투에 임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지시를 한 지휘관과 적절치 못한 행위를 한 부하의 책임은 징계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는 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당한 지시와 올바른 행위가 수반되는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 국제인도법의 주장이며, 이것은 현대전의 추세로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상기내용을 위반시엔 결국 전쟁범죄인(戰爭犯罪人)으로 국내외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전쟁 전중후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시교육 강화와 이를 개인별로 숙지하고 체질화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육대상이 국민으로 명문화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평상시 군부대에서 먼저 국제인도법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방 논문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자주국방의지와 군 조직발전 방향 _이선호 (0) | 2022.12.18 |
---|---|
미래 지상군 구조 발전방향에 대한 소고 _장명순 (0) | 2022.12.18 |
UN PKO 활동의 참여를 통해 바라본 아시아지역 군사동향 및 전략적 상황의 변화 _박현식 (0) | 2022.12.18 |
프랑스식 국방개혁 벤치마킹 문제 없는가 _황진하 (0) | 2022.12.18 |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비교 (2009) (0) | 2022.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