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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논문 자료

국군50년사 자주국방 강화기(1981~1990)

by 충실한 해병 2022. 12. 20.

1980년대에 우리 군은 북한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력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군사전략개념의 부분적인 수정과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하고 동시에 방위산업 및 연구개발능력의 제고와 제2차 율곡사업을 착실히 추진하였다.
또 합리적인 자원관리를 위해 국방기획관리제도를 처음으로 적용하여 이를 정착시키게 되었으며, 1988년부터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818계획) 연구를 추진하여 군상부지휘구조를 한국형 합동군제 형태로 개편하였다.
1980년대에는 국제적인 스포츠행사로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경기가 있었다.
이 행사는 우리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가늠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우리 군은 적극 지원함으로써 성공적인 개최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시기의 우리 군의 특징적인 사항은 전력증강 면에서 북한군과의 전력 격차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으며, 전략개념도 수세적 개념에서 탈피하여 상대방이 전면전 으로 도발해 올 경우 공세적 군대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전략개념의 도입이 시도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방위사업 및 연구 개발 능력 제고
방위산업
우리 나라의 방위산업이 활성화된 데는 방위세를 재원으로 하여 제4차 경제개발 계획이 끝나는 1981년까지의 8년간을 망라한 전력증강계획(국방8개년계획)을 수립, 추진한 것이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는‘방위산업의 기반조성’이라는 목표하에 정부주도하의 집중적인 육성 지원 그리고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중화학공업 육성과 병행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방위산업 의 자립기반 구축’에 목표를 두고 이전까지 정부주도 육성정책으로부터 민간주도의 자율적 경영에 입각한 자생능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1983년부터는 방산업체가 계획생산을 할 수 있도록 방산물자의 장기 소요량을 이들 업체에 사전통보하는 한편, 관리방침을 마련하고 1985년에는 부품 국산화 5개년 계획을 수립, 시행하였다.
또한 군의 무기체계가 고도의 정밀화 및 대형화됨에 따라 국내에서 개발할 경우 경제성 및 생산능력의 제약으로 부득이 선진국으로부터 고가의 고도정밀무기를 해외에서 획득해야 하는 경우 정부는 과도한 외화 지출을 막는 방법으로 1983년부터 군사절충교역제도(OFF-SET)를 수립, 시행하였다. 이는 막대한 외화를 지출하는 대가로 선진국의 기술을 습득하여 방산능력을 향상시키고 아울러 부품의 역수출 등 작업물량의 획득으로 방산업체 경영상태 개선 및 후속 군수지원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국내소요 한계에 다다른 방산물자의 수출증진을 위해 긴밀한 대미협력활동을 통하여 수출 통제를 완화하였고, 제3국의 시장개척으로 수출선의 다변화를 모색하는 등 다각적인 수출진흥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종래 국방부에서 직접 담당하던 수출통제 행정업무를 1984년 2월 방산진흥회로, 1985년 6월에 는 일반 방산물자 및 일반 군수물자의 조정통제 업무를 산업자원부로 이관하여 방산물자 수출제도상의 경직성을 해소하였다.

연구개발
1981년부터는 고도정밀병기의 연구개발에 착수하여 한국형 무기체계의 연구개발과 성능 개량 그리고 고도정밀병기의 선별적 개발계획을 수립.추진하였으며, 1987년부터는 고도정밀병기의 연구개발 확대에 중점을 두고 연구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연구개발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서울 소재 국방과학연구소 본부를 대덕연구단지로 통합함과 아울러 기구를 개편하여 연구의 효율성을 강화하였으며, 또 방위산업의 연구소를 활성화하고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범국가적인 산.학.연의 연구개발 협력체제를 구축, 국방연구개발에 전문 화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연구개발의 기술도입선을 종전의 대미 일변도로부터 영국, 이탈리아 등 제3국으로 다변화하면서 다원적인 해외기술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선진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 같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 1980년대 초.중반기에는 한국형 소총을 비롯한 한국형 전차, 장갑차, 다련장 로켓, 함대함 유도탄의 개발과 155미리 곡사포의 개량 등 고도의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과제를 한국적인 여건과 전략개념에 부합되게 개발함으로써 자주국방 실현에 한걸음 다가서게 되었다.

제 2차 율곡 사업
1982~1986년까지의 제2차 율곡사업에서는 제1차 율곡사업에서 얻은 교훈과 1988 년 올림픽 개최시기인 안보 취약시기에 대비하여‘방위력 전력완비’와‘억제전력 기반조성’에 목표를 두고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사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제고시 킬 수 있도록 매년 수정보완하는 연동계획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전력증강의 중점을 자원절약형 군사력 건설의 개념에 따른 군사력 건설 기반의 강화와 전쟁 지속능력의 확대에 두고 통합전력 개념에 입각한 각군의 균형 된 발전과 주한미군 및 증원 전력과의 상호 보완적 전력구조의 발전을 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육.해.공군별 주요 전력증강 현황은 다음과 같다.

지상전력
육군은 사단 전력의 질적, 양적 증강과 기갑 및 대기갑 전력의 보강 그리고 포병 화력의 질적, 양적 증강 등에 중점을 두어 전력증강을 추진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보병사단, 기계화보병사단, 동원 및 향토사단 등 19개 사단급 부대를 창설하였으며, 후방지역 작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후방지역에 군단사령부를 신설하고, 수도권 작전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수도경비사령부를 수도방위사령부로 증편하는 등 지휘구조를 개선하였다. 또 공중침투, 지상침투, 지하침투 등을 봉쇄하고 조기 격퇴할 수 있는 전략부대 특수여단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특히, 지상전력에 있어서는 북한에 비해 열세에 있는 기갑전력을 증강하기 위하 여 한국형(K-1) 전차 및 한국형(K-200) 장갑차를 양산하여 배치하는 한편, 중무장 헬기를 도입하여 육군의 공세 기동전력을 증강시켰다.
포병 화력증강은 기계화부대 지원포병을 자주화하여 개량화포 전력과 응징보복 전력을 보강하였다. 즉, 155미리 자주포 500여 문을 양산, 배치하였고 동시에 155미리 구형 포의 포신 및 장약을 개선하여 사거리를 연장시킨 개량포도 확보, 활용하였다. 항공전력에 있어서도 공중 타격능력과 병력, 장비 및 물자의 대량 공수능력 을 포함한 장거리 탐색구조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경헬기인 500MD를 기술도입하여 생산 배치하였고, 중무장 공격용 헬기 AH-1S를 대량으로 도입하였다. 또한 반도체산업의 기술혁신에 힘입어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각종 야간장비 및 근접 전투용 소형 무전기 등을 국산화하여 활용하게 되었다.

해상전력
해군은 북한의 다수 함정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수상전력의 양적, 질적 증강과 잠수함의 해상 교통로 교란에 대응하기 위한 입체적인 대잠수함 전력확보에 중점을 두고 한국형 호위함(FFK)을 개발 건조하여 작전배치함으로써 대잠수함 능력을 향상시켰고, 신형 고속정도 건조하여 유도무기의 탑재와 40미리 주포를 장착해서 전투력을 증강시켰다. 또한 노후장비인 초계전투함(PCC)을 한국 연안의 특성에 적합 하고 유도무기도 장비하여 기동성이 우수한 초계함으로 대체, 개발하고 기뢰 탐색 함도 도입 활용하였다. 한편 해상 초계작전 헬기를 도입, 배치하여 수상.공중의 입체적 대잠전력을 갖추었다. 해병부대에서는 신형 상륙돌격장갑차(LVT7A1)를 도입하여 기동력과 상륙작전 능력을 강화하였다.

항공전력
공군은 우선 F-4 팬텀기와 정찰기를 MIMEX(Major Item Military Excess:주요군사잉여장비)에 의한 적은 비용으로 구매하여 실전 배치하였고, ‘제공호’로 명명된 F-5E/F 전투기를 미국과 기술제휴로 국내에서 상당한 양을 조립생산하여 영공방 위에 투입하였다. 또한 공군은 C-130 대형 수송기를 도입, 구형 수송기와 대체함로써 공중 수송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리고 최신예기인 F-16기를 도입, 확보하여 전방향 공격이 가능한 공대공 유도탄을 장착함으로써 항공작전 능력을 질적인 면에서 크게 강화시켰다. 유도탄 부분에서도 ALM-7(Sparrow) 및 AIM-9 등 공대공 유도탄과 스마트(Smart) 공대지 유도탄을 다량으로 확보하여 항공기의 전투력 향상을 도모하였다.

통합전력
1980년대 후반에는 단거리 유도무기 획득과 자주화 방공체제 개발에 착수하여 미사일 및 대공포의 혼합 운영체제를 구축하고 중.고도 방공무기의 작전능력 향상을 도모했다.
조기경보 분야의 전술적 조기경보체제는 해안감시 레이더와 지상감시 레이더 및 장비를 보강하는 한편, 레이더기지, 비행기지, 방공포병기지 등을 통합하여 방공자동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조기경보 시간과 방공작전 태세를 대폭 보완하였으나, 전략적 조기경보 분야는 한.미 연합정보체제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대에 들어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가 유치됨에 따라 우리 군은 국제 스포츠 대회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안전 경비는 물론 인력, 장비, 시설 등을 지원하였다.
86아시아경기대회에 있어서 대회조직위원회의 군 지원 요구에 호응하여 병력, 장 비, 물자, 시설지원과 경계를 제공하였고, 특히 개회식에서는 식장 축하비행, 고공낙 하, 태권도 시범 등 다채로운 묘기를 펼쳤다. 실질적인 지원내용은 병력 2,978명, 장 비 540점, 물자 44,650점 그리고 시설 5개소를 지원하였다.
88서울올림픽대회에는 통역, 경기진행보조요원, 군의관, 고공낙하시범 등 10,200여 명, 항공기, 통신장비 등 671점, 물자 91,828점 그리고 축구, 육상 등 11개 경기장과 카 누 및 조정연습장 등을 지원하였다.
합동참모본부 및 직할기관 창설
. 합동참모본부 현판식(1990. 10. 1)
3군 통합전력의 극대화를 목표로 1990년 10월 1일 합동참모본부가 창설되었다. 합참본부의 새로운 창설에 따라 작전지휘를 포함한 군령분야가 합참본부로 통합됨으로써 육.해.공군의 통합작전능력과 합리적인 전력 및 자원의 배분으로 우리 국군은 명실공히 완벽한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 국방참모대학 창설(1990. 10. 10)
. 국군정보사령부 창설(1990. 11. 1)
. 국군통신사령부 창설(1990. 11. 1)

부대창설 및 증개편

. 육군 교육사령부 및 제1관구사령부 창설식(1981. 5. 1)
전투발전과 교육발전의 통합을 위해 전투병과 교육사령부를 모체로 전남 광주에서 육군 교육사령부가 창설되었으며 1982년 6월 16년 대전으로 이동하였다.
. 제7군단기를 수여하는 제1군사령관 (1982. 8. 16)
동해안 축선의 중요성을 감안, 동해안 경비사령부를 모체로 제7군단사령부를 창설하였다.
. 수도방위사령부 창설(1984. 1. 5)
수도권 방위체제 일원화를 위하여 수도경비사령부를 모체로 수도방위사령부를 창설하였다.
. 학생중앙군사학교 창설식(1985. 11. 1)
학군사관 후보생 및 대학생 병영훈련의 효율적 수행을 위하여 학생중앙군사학교가 서울 근교에서 창설되었다.
. 대학생 철책선 경계실습
. 제8군단 창설식(1987. 4. 1)
제7군단의 기동군단화 및 이전에 따라 동해안지역 작전지휘체제 보강을 위하여 1987년 4월 1일 제8, 제9, 제11군단 등 3개 군단이 창설되었다.
. 제11군단 창설식 전경(1987. 4. 1)
. 제9군단 창설식(1987. 4. 1)

해상작전부대의 개편
1984년 2월 1일 한국 함대를 2개 전단으로 개편하였으며 1986년 2월 1일에는 해상 작전부대를 작전사, 제1, 제2, 제3함대로 개편 하였다.
. 제1함대사령부 창설식(1986. 2. 3)
. 제2함대사령부 창설(1986. 2. 3) 사진은 함대사령부 본관
. 제3함대사령부 창설식(1986. 2. 3)
. 해군작전사령부 부대기 수여

제2해병사단 창설식 (1981. 4. 16)
. 해군 군수사령부 창설식(1986. 2. 1)
. 해군 교육사령부 창설식(1987 7. 1)
. 해병대사령부 창설식(1987. 11. 1)
1981년 4월 16일 제2해병사단 창설 이후 해병부대를 통합지휘할 중간사령부로 해병대사령부를 재창설하였다.

KCOIC 운영체계 참관
. 제37전술정보전대 창설
전쟁징후 조기경보 및 적시 전투정보 제공을 위한 전투작전 정보센터 (KCOIC) 운영부대로 제37전술정보전대가 창설되었다.(1986. 11. 1)
. 제88방공포전대 창설식(1988. 11. 1)
육군으로부터 인수한 방공포 전력의 작전능력을 증대하기 위하여 제88방공포전대가 창설되었다.
. 육군에서 인수한 대공포 참관

국군체육부대
. 육군 체육지도대 창설(1982. 11. 1)
군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대회를 대비하여 1982년 11월 1일 육군 체육지도대를 창설, 현역 선수들을 관리해 오던 중 1984년 1월 11일 육.해.공군에서 각각 관리해 오던 체육지도대를 통합, 경기 성남에 국군 체육부대를 창설했다.
. 한국의 최연소 여자 금메달리스트인 서향순
. 한국올림픽 복싱 사상 첫 금메달 (미들급)을 획득한 신준섭
.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국군 체육부대 이병 김원기(1988. 8)

전력증강
. 한국형 장갑차(K-200) 생산(1984. 10)
기계화보병사단, 기갑여단 등에 배치되어 제병협동작전을 수행하며 완성장비로는 최초로 말레이시아에 111대를 수출하였다.
. 구난 장갑차(K-288)
장비구난 및 정비용으로 국내 개발하여 기계화보병부대에 배치.운용되고 있다.
. 한국형 소총(K-2)
1974년 M-16 소총 전력화 이후 한국인의 체형에 적합한 K-2 소총을 독자 개발하여 개인 기본화기로 1985년도부터 전군에 보급하고 있다.
. K-1전차(일명 88전차)
한국방위의 자주화, 한국군 장비현대화의 일환으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예 T-72 및 T-62 전차를 압도하고 한국의 지형과 한국인의 체형에 적합하도록 독자 설계.제작된 전차로서 1986년 초도생산되었 다.(사진 : 1987. 10. 1. 국군의 날)
. 분대급 경기관총(K-3)
국내 개발하여 1988년부터 차량기계화보병사단, 특공연대의 근접화력지원화기로 운용되고 있다.
.지대지 유도탄
적 도발시 응징보복과 적후방 전략목표 타격 무기로서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자체 개발하여 1987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 155미리 자주곡사포(K-55)
기동성 있는 화력지원을 위해 한.미간 공동개발하여 1985년부터 실전 배치됐다.
. 155미리 개량곡사포 개발(1982. 12)
. 중형 헬기「블랙호크」(UH-60)
완전무장병력 14명과 8천 파운드의 화물 인양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입체고속기동작전 지원 및 지휘통제용으로
활용된다.(1990. 12. 최초배치)
. 중형 공격헬기「코브라」(AH-1S)
20미리 발칸, 2.75인치 로켓, 토우 미사일로 무장되어 있으며 우리의 주력 공격헬기이다.(1988. 6. 최초배치)
. 105미리 견인포를 이동중인 대형 기동헬기「치누크」(CH-47)
병력 44명과 1만 3천kg의 화물인양 능력 을 갖추고 입체 고속 기동전과 장거리 탐 색 및 구조업무를 지원한다. (1988. 9. 최초배치)

국산 호위함(FF)개발 배치
1980년 국산 호위함을 순수 국내기술로 건조하여 1981년 실전배치함으로써 국내 군함건조 기술을 세계에 과시하며 군함 수출의 기틀을 마련 하였다.
국산 호위함은 1,500톤급으로서 대공, 대함, 대잠전 임무수행이 가능하며 해군 해외순항훈련의 주력 함정으로도 운용되고 있다.
※ FF:Frigate
. 최초의 국산 초계함(PCC) 진수식(1982. 11. 18)
해군 전투전대에 편성되어 고속정 유도 및 대함, 대잠, 대공전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해군의 주력 연안 초계함정이다.
※ PCC:Patrol Combat Corvette
. 최초의 국산 기뢰탐색함(MHC)의 항해 모습
부설기뢰를 탐색하고 무인기뢰처리기를 이용하여 제거함으로써 주요 항구의 출입항로를 보호한다.(1986. 8. 30. 진수)
※ MHC:Mine Hunter Coastal
. 고속상륙정(LSF)의 시운전 항해 모습(1989. 6. 9. 진수)
※ LSF:Landing Ship Fast
. 군수지원함(AOE) 항해 모습
군수지원함은 작전중인 함정에 유류, 물, 탄약, 식량 등 군수지원 임무를 수행한다.(1990. 7. 26. 진수)
※ AOE : Combat Support Ship


. 국산전투기 제공호(F-5E/F) 생산
미국 항공사의 기술지원하에 1982.1986년 기간중 공동생산한 F-5E/F 전투기 생산 사업은 자주적인 항공전력 증강목표를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업을 통해 확보된 시설, 장비, 기술인력 등은 국내 항공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 국산 전투기 생산장면
. RF-4C 정찰기 도입(1989. 12)
항공 정찰을 통해 육.해.공군 전술작전부대에 전투정보 를 지원한다.
. F-16 전투기 도입(1986. 4. 12)
공군 현대화 및 전력증강계획에 따라 도입된 F-16 전투기 는 북한의 MIG-23 전투기에 대한 대응전력으로 전쟁억제 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C-130 수송기 도입(1988. 1)
완전무장 인원 64명, 4만 3천파운드의 화물 탑재가 가능하며 주야간 전천후 전술공수작전에 운용된다. 걸프전시 한국 공군 수송단의 주력기로서 다국적군 승리 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 휴대용 대공유도탄 재블린 도입(1987. 10. 12)
수도권 및 주요시설의 국지 대공방어용으로 운용된다.
. 활주로 파괴무기 DURANDAL 도입(1988. 2. 8)
. 자동화 중앙방공통제소(MCRC) 근무장면
공군작전의 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방공통제소(MCRC :Master Control and Report Center)에 자동화 장비가 도입되어 1985년 7월부터 방공관제의 자동화시대가 열렸다.
레이더 사이트 관제사 공중감시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지원

제10회 아시안게임이 1986년 9월 20일에서 10월 5일까지 27개국 선수 4,727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개최 되었다. 이 대회에서 우리 나라는 총 93개의 금메달을 획득, 중공에 이어 종합 2위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육군 소속 선수 49명이 참가하여 금 12, 은 10, 동 11개의 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편 개막 6 일 전 김포공항 폭파 사건에도 불구, 군은 성화봉송로, 선수촌, 경기장 경계와 각종 행사 및 대회 운영요원 지원 등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보장하였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가 1988년 9월 17일에서 10월 2일까지 160개국 13,626명이 참가한 가운데 잠실 주경기장에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되었다. 12년 만에 동서가 만난 진정한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은 금12, 은 10, 동 11개로 세계 4위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국군체육부대에서는 13개 종목에 37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금 3, 은 1, 동 1개의 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결정적 기여 를 했다. 또한 군은 개.폐회식 행사지원, 선수촌.기 자촌 운영, 수송.의료.통신지원, 시설.장비물자 지
원, 성화봉송로 및 대회 안전요원 지원, 행정 및 근무지원을 함으로써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보장하였다.

. 개막 경축행사에 펼쳐진 고공강하 묘기(1986. 9. 20)
.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해상경비지원 . 군 특수요원의 물샐틈없는 경계활동
. 대테러진압훈련(1988. 9. 16)
. 군 차량지원으로 효율적인 수송임무 담당 . 장병들이 선보인 우리 전통민속놀이‘고싸움놀이’
. 88서울올림픽 성화봉송로 전담 콘솔 운영

이모저모
. 바리케이드 철거
1982년 1월 4일 정부는 37년간 지속된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였다. 통금해제로 필요 없어진 바리케이드를 경찰들이 치우고 있다.
. 북한 조종사 이웅평 대위 귀순(1983. 2. 2. 수원기지)
. 부활된 신병 면회제도
훈련병의 사기진작을 위해 1954년에 처음으로 실시된 신병 면회제도는 1959년 6월에 중단된 후 1988년 2월 다시 부활되었다가 1998년부터 또다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