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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전투

해병대 전투-통영상륙작전

by 충실한 해병 2023. 1. 7.
● 전투시기 : 1950.8.17-8.19
● 전투지역 : 경남 통영
● 주요지휘관 : 김성은 중령, 김광식 대위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통영지구 전투의 개요

  거제도까지 점령하여 마산과 진해 그리고 부산 지구에 대한 측방위협을 가지고자 노렸던 적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타격을 준 전투였다.


2. 통영지구 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해병대장 중령 김성은
제 2중대장 대위 김광식
제 3중대장 대위 이봉출
제 7중대장 대위 안창관
PC 703함장 중령 이성호
T-6 비행대장 소령 신유협
병력 약 500명
장비 함정 7

*적군
제 7사단장 소장 이익성
제 51연대장 대좌 강치복
제 104치안연대장 미 상
병력 약 650명


3. 통영지구 전투의 진행과정

  8월 17일
  장평리의 교두보를 확보한 제 2중대(중대장 대위 김광식)는 후속 중대가 상륙을 완료하자 제 1목표인 삼봉산(246고지)으로 진출하여 이를 접적 없이 확보하였고 제 3중대(중대장 대위 이봉출)는 통영에 이르는 도로 좌측으로 전진하여 8월 17일 21:00에는 동암리 고지를 계획된 대로 점령하게 되었다.
  한편 해군 함정들은 적이 배치된 고지부두, 원문 고개에 부단한 포격을 가하여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8월 18일
  05:00를 기하여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였는데 07:30에는 벌써 원문 고개를 점령하였고 제 3중대는 같은 시각에 화포리의 오른쪽 능선(약 130고지)에 진출하였다. 이때에 예비대인 제 7중대(중대장 대위 안창관)는 도로를 따라 망일봉(148고지)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한편, 12:20쯤에 이르러 우리 공군의 T-6기 4대와 F-51 저폭기 3대가 상공에 나타나 해군 함정에서 집중 발사하는 탄착점에 대하여 로케트탄 투하와 기총소사를 기하였으므로 여기에 육·해·공·해병대의 입체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어서 T-6기 편대는 진동리-사천-고성-삼천포 상공을 초계비행 하면서 적의 보급차량과 병력을 공격하였으며 삼천포 해안에서는 통영으로 향하는 적의 범선 4척을 공격하여 격침시키고 말았다.
  제 2, 3, 7 중대는 고지를 확보한 즉시 참호를 구축하여 방어태세를 굳게 갖추었고 부대 본부는 동달리에 위치하여 전투를 지휘하였다.
  정오가 좀 못되어 원문 고개에 위치한 제 2중대는 고성 쪽에서 통영으로 달려오는 지프차 1대를 발견하였는데 이 지프차가 진전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적임을 확인하고 일제 사격을 가하였으므로 적의 운전병은 차를 길가 언덕에 틀어박고 급히 도주하였다. 분대 병력이 추격하여 현장에 이르고 보니 지프차에는 트레이라가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120mm 박격포 1문과 포탄, 밀가루 포대, 그리고 중공제 수건 200매가 실려 있었다.
  김성은 중령은 공격이 계획대로 진척되자 제 2중대는 계속 원문 고개의 요충을 확보토록 하고 제 3중대와 제 7중대에 대하여서는 시가지에 대한 일제 공격을 명령하였으니 이때가 8월 18일 정오쯤이었다.
  제 7중대 1소대장은 공격 명령을 내리고 일어서는 순간 적 복병의 저격을 받고 부상 당하였으므로 곧 후송하게 되고 선임 하사관이 소대장을 대리하여 지휘하게 되었다.
  공격 부대가 시내에 돌입하기 전에 해군의 703정과 307정 및 302정에서의 지원포는 12:00쯤부터 남망산과 전진 목표에 대하여 포격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 제 3중대장은 부대장으로부터 179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14:20에 받고서는 단숨에 삼차로에 이르자 적은 기관총과 소화기로써 치열한 사격을 가하여 왔으므로 중대는 지원사격을 부대장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해군함정들은 보유한 포탄을 이미 다 소모하였기 때문에 지원능력이 없었다. 따라서 제 3중대는 1시간 반의 사격전 끝에 16:00에 공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마침 진해에서 김은근 중위가 지휘하는 해군방위대(1950. 7. 1 방비대를 방위대로 개칭)의 1개 중대와 함께 FS 평택호에 의하여 탄약이 장평리 도선장으로 도착하였다. 부대장은 즉시 평택호를 장자도로 회항시켜 23:00에 제 7중대 지역으로 탄약을 추진 보급하여 각 중대가 탄약을 보충 받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해군 방위대 제 1중대는 PC함 703호의 지원 밑에 남망산 고지를 점령하였으며 이날(8월 18일) 18:00에 부대는 망일봉으로 전진하였다. 부장은 서쪽과 북쪽으로 퇴각한 적이 고성 쪽으로 해상 도주하리라 예상하고 513정과 504정으로 하여금 북쪽 해상에서 적의 퇴로를 차단하여 섬멸토록 하고 원문 고개의 제 2중대에게도 같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로서 적은 완전히 퇴로를 차단당하고 말았다.
  원문 고개의 제 2중대는 날이 어두워지자 요소에 국지 경계병을 증가시켜 적의 탈출을 봉쇄하고 있었다.
  시가지를 뒤져서 적을 잡아내고 있던 제 3중대와 제 7중대는 적의 퇴로를 차단한 채 야간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8월 19일
  02:00쯤 부대장은 제 3중대장에게 179고지를 공격 점령하도록 하고 제 7중대는 06:00을 기하여 일제히 적의 완전 포착 작전을 전개토록 지시하였으며 해군 방위대는 예비대로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제 3중대는 02:00가 지나서 179고지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여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03:00쯤에는 목표 고지를 점령하였다. 날이 밝은 뒤 부대장이 179고지가 점령된 것을 확인하자 제 7중대는 예정대로 최후 포착전을 전개하였으며 해군 방위대도 여기에 함께 합세하였다. 08:00에 시가지는 완전히 아군이 장악하게 되었다.


4. 통영지구 전투의 결과


  부대장은 지휘소를 통영 경찰서로 옮기고 시내를 순시하였는데 이때에 703함장도 상륙하여 전승의 악수를 서로 같이 나누었으며 그 뒤에 김성은 부대장은 통영 탈환의 전황을 703함에서 해군본부에 보고하였다.
  한편 시가지에서 탈출한 적들은 제 3중대와 해군 방위대에 의하여 포착 섬멸되었으나 일부 잔적은 8월 18일 밤에 대포리에 집결하였다가 작은 어선으로 법송포로 탈출하였고 8월 19일에도 3척의 목선으로 집단 퇴각하는 것을 해군의 504, 512정이 격침시키고 말았다.
  제 7중대는 시내에서 원문 고개로 이동하여 제 2중대의 좌측에 배치되어 진지선을 더욱 강화하였다.
  8월 19일 12:00에는 통영 읍내의 질서가 회복되어 피난하였던 시민들도 되돌아왔고 점령당한지 3일 만에 신속하게 통영을 탈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