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9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나무가 우거진 산 속 지하에 매설한 ‘사일로(silo)’에서 발사했다는 분석이 20일 나왔다. 사일로는 땅속 깊이 매설된 길죽한 탑 모양의 발사관을 말한다. 차륜 이동식발사대(TEL)처럼 움직일 수는 없는 고정식 발사대이지만 지뢰처럼 은폐가 가능해 TEL과 다른 방식으로 기습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번 미사일도 지하 사일로에 있다가 지표면의 미사일 뚜껑이 열리면서 솟구쳐 올라 동해상을 향해 날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이 같은 사일로를 산 곳곳에 다수 설치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를 확대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사일로에서 탄도미사일을 쏘는 장면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 전문가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북한이 공개한 다수 사진을 종합 분석한 결과, 지하에 발사관을 묻은 은폐형 사일로에서 미사일을 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시험 발사는 처음 관측된 것”이라고 했다. 북 매체가 보도한 사진을 보면, 미사일 화염이 V자 형태로 솟구친다. 양 연구위원은 “V자 화염은 그간의 탄도미사일 화염에서는 관측되지 않았던 형태”라면서 “V자는 사일로 발사 화염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했다.
이상민 한국국방연구원(KIDA) 북한군사연구실장은 “저러한(V자) 화염과 연기의 모양은 지하로 움푹 꺼진 구조물에서 발사가 이뤄졌다는 의미”라며 “북한이 새로운 SRBM 발사 플랫폼으로서 사일로를 추가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실장은 “TEL로 쏘면 한 발씩 쏴야 하므로 TEL의 수가 곧 한국군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의 표적수가 되지만 사일로 플랫폼을 갖추면 이를 대폭 늘릴 수 있다”며 “우리의 킬체인·KAMD 전력을 소진하고 피로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차륜형 이동식 발사대, 열차, 저수지, 수중 잠수함, 골프장 호수 등에 이어 이제는 산속 지하에서 대남 핵타격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다양한 지형·지물을 활용해 북·중 접경, 서해·동해, 러시아 접경지 등 발사 지역을 바꿔가며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SRBM,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을 돌려가며 테스트하고 있다.
한미의 대북 원점 타격, 요격망을 피하고, 선제공격 이후 한미에 반격을 당하더라도 맞공격에 나설 수 있는 미사일 발사 체계를 최대한 구축해놓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군 소식통은 “북한은 공중 전력이 한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절대적 열세여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핵·미사일 전력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사일로 발사 훈련은 이동식 발사대의 약점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동식 발사대는 기동성이 있어 옮겨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도로 사정이 열악해 이동식 발사대가 다닐 수 있는 지역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조셉 뎁시 연구원은 이번 사일로 발사가 북한의 서해 위성발사대 인근인 북위 39.6도 동경 124.7도 지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북한의 KN-23 SRBM 사일로 발사 지점이 북위 39.65265도, 동경 124.7165도로 의심된다면서 플래닛의 지난달 2월 13일, 3월 18일 위성사진에 사일로 설치 작업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이 위치는 서해 위성발사대 인근 산이다.
양욱 연구위원은 “북한은 그간 KN-23 같은 SRBM부터 화성-17과 같은 거대한 ICBM(대륙간타도미사일)까지 모두 이동식 발사대를 선호해왔다”면서 “북한의 열악한 도로사정이나 시스템의 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실제 작전 시 미사일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특히 화성-17과 같은 ICBM의 경우에는 사일로 발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제기돼왔다”고 했다. 그는 “이번 KN-23B의 사일로 발사는 추후 더욱 큰 미사일의 발사를 위한 시험발사의 의도도 있을 것”이라며 “특히 화성-17가 사일로에서 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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