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2-아아! 전함 백두산 2 | |
“각하, 해군에서 전함을 마련하려고 기금을 좀 모았습니다.” 손원일 총참모장이 전함구매 계획을 보고하면서 돈 보따리를 내놓자 이승만 대통령은 만면에 흡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벌써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했다”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부 보조금이라면서 큰 봉투 하나를 주었다.“애드미럴 손이 미국에 가서 군함을 사 오도록 해.”참모총장이 직접 출장을 가라는 명령이었다. 그 순간 전함 인수단을 꾸릴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봉투 안에 든 돈 액수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참지 못하고 경무대 문을 나오면서 열어보았다. 4만5000달러나 됐다. 상상할 수 없는 큰돈에 가슴이 뛰었다. 이 돈이면 전함을 몇 척이나 살까, 그 생각뿐이었다.손제독은 모금으로 생긴 돈과 이대통령에게서 받은 돈을 합쳐 6만 달러를 정부에 헌납해 정부 예산으로 구매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야 관계부처 지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영철 대령에게 참모총장 직무대리 발령을 내고, 손제독은 전함구매를 위해 서울 여의도비행장으로 떠났다. 그 당시 여의도는 한강 둔치에 널찍하게 펼쳐진 땅콩 밭과 풀밭이었다. 그 한가운데 군과 같이 이용하던 비행장이 있었다. 1949년 10월 1일의 일이다.비행기는 미국 노스웨스트항공사 프로펠러기였다. 도쿄를 거쳐 알래스카 앵커리지와 미국 본토 미니어폴리스를 경유하는 긴 노정이었다.전함인수단원으로 뽑힌 나는 그 며칠 뒤 인수단 요원 15명과 함께 여의도공항을 떠났다. 모두가 난생 첫 경험이어서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처음 지녀 보는 달러도 신기했다. 여비로 지급받은 돈이 1인당 250달러로 기억된다. 라 구아르디아 공항에 도착해 어둠이 깃든 뉴욕 시가지로 들어가면서 받은 첫 충격은 네온사인이었다. 세상에 저런 불빛이 있을까 싶었다. 불꽃놀이를 하는 줄 알았다. 아무리 부자나라지만 밤늦도록 저렇게 불꽃을 쏘아대면 돈이 얼마나 들까 싶기도 했다. 한국의 도시는 제한 송전, 농촌은 깜빡거리는 전등 아니면 호롱불 신세였다. 그렇게 화려한 광고간판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먼저 도착한 손제독이 주미 대사 장면 박사 지원을 받아 1만8000달러에 교섭 중인 배는 길이 52.9m 450톤급 PC(Patrol Chaser)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격퇴를 목적으로 건조된 이 구잠함(軀潛艦)은 전후 퇴역해 미 해양대학교 실습선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선체가 우리 손에 넘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인수단원들은 모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뉴저지 호보켄(Hoboken) 항으로 달려갔다. 부두에 인접한 조선소에 정박된 그 배는 오래 방치됐던 탓에 비바람에 녹슬고 퇴색해 있었다. 우리는 배 안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다. 하루 모든 일과가 페인트 작업과 정비작업이었다. 수리비가 따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수리공이고 정비공이었다.정비작업에 미 해군의 협조를 받을 일이 많아 그들과 접촉할 때마다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우리 해군이 나이에 비해 계급이 높았던 것이다. 주인보다 손님들 위계가 높았으니 어찌 불편이 없겠는가. 신생국 주제에 계급장만 많이 달았다고 수군대는 것 같기도 했다. 총참모장 나이가 40세였으니 그들의 입장에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결 방안이 우리 계급을 낮추는 것이었다. 48세였던 함장 박옥규 중령을 제외하고 모든 인수단원의 대외용 계급이 한 두 계급씩 강등됐다. 그런 임시조치로 나는 하루아침에 소령에서 중위로 두 계급이 낮아졌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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