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후배님!
누구나 어디에 가서라도 자신이 해병대라고 밝힐 수 있다면 모두다 한마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고 어떤 상황이라도 "나는 해병대다"라고 할 수 만 있다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아니 아주 자주 우리는 우리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그렇지 못한 이들을 봅니다.
지난 세월을 나는 일개 병 출신으로서 내가 해병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때론 자만하고 때론 자부심도 갖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도 없었고 한 것도 없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는 실패한 독립군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나는 해병대라는 큰 경계를 구분하는 담장을 넘나들며 뛰놀던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잡음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누군가 잘못 맞추어 놓고 자리 뜬 채 말입니다.
지난날 서로 다른 의견으로 우리가 갑론을박을 하고 얼굴을 붉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고 나니 이미 말한 것처럼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해병대만 원상회복시켜 준다면 나는 어느 당에 상관없이 지지할 것이며 기꺼이 나를 던지려 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직 결과가 (낙관적이진 않지만) 끝난 것도 아니고 우리를 이끌었던 이들이 다 끝이라고 하지 않아 그냥 또 속는 셈치고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별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말단 소총수에 지나지 않는 쫄 들이 별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난 일들이 우리가 책임을 져야하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던지 그게 내가 할 책임이라면 나는 기꺼이 돌팔매를 맞을 각오에 있습니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우연히 한통의 팩스를 생면부지의 선배로부터 받았습니다. 그 순간이 없었다면, 아니 그것을 받고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저 오락가락하며 전우회 놀이에 빠진 한낱 이름뿐인 해병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해 여름 대사관에 있던 무관에게 썼던 편지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내가 해병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이런 줄 알았다면 현역시절 더욱 충실하게 근무를 할 것을 그랬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병대에 미쳐갔습니다.
이삼일 밤잠 거르기를 수없이 했고, 선배님들과 주차장 바닥에 쭈그려 앉아 수를 꼽다가 아침 해를 보길 수없이 했습니다. 열 몇 시간 운전도 마다 않고 달려갔습니다. 그때가 선거 때라서 이회창씨 진영도 만나고 김대중씨 진영도 만났습니다. 그렇게 그해가 숨 가쁘게 가고 우리가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 때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뿐이고 우리는 이병문을 따르는 부류들의 중앙회로부터 사실상 역적보다 못한 인간들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우리는 전도봉을 따르는 일개 쫄에 지나지 않는 것들 이였습니다. 그들 눈에는 말입니다. 지금도 그 결과의 득을 보고 자리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겐 우린 눈엣가시입니다. 우리가, 내가 무얼 잘못했는데(?) 말입니다. 그 결과로 중앙회는 계속 양분의 길을 가고 지금까지도 봉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솔직히 이젠 나도 지쳤고 힘듭니다. 방향도 잡을 수 없고 갈 길도 모릅니다. 요즘 들어서는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여기까지 했으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맴돌곤 합니다. 누구를 위해 이 짓을 하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연을 잡고 있는 것은 정말 그의 말처럼 팔자인가 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주어지질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이젠 누군가 후배님들에게 내가 청춘을 받쳐 지켜온 바톤을 넘겨야 할 때입니다. 누군가 나서서 이 바톤을 받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는 나와 같은 바보 길로 가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만약 해병대에서 입혀 준 틀이 없었다면 지난 날 후배님과 얼굴을 붉히기 보다는 같은 편에서 함께 소리 쳤을 것입니다. 나의 개인적인 것을 마음 것 표현할 수 있다면 어쩜 같은 목소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아시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내겐 꿈이 있고 그 꿈이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나 혼자서 이루어 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타성대로 휩쓸려 가면 피박은 쓰지 않는 것이라고 위안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내게 자율권이 주어지고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면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입은 옷도 없고 이렇게 자유로우니 후배님과 할 말도 하고 내 속내를 보일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먹고사는 일도 아닌 부질없는 일로 이유여하를 떠나 어린후배님을 가슴 아프게 한 점을 사과합니다.
사랑하는 윤승옥 후배님!
내가 지나온 길이 평탄치도 못하고 나중에라도 월계관을 쓸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내 살을 깍고 내 얼굴을 구기는 일이라서 간곡히 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해병대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있지를 못해 무언가 열정과 청춘을 받치는 용기가 있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병대로 만나서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도 팔자가 아닙니까? 언제고 기회가 생겨 후배님에게도 내게 왔던 그 순간이 온다면 뿌리치지 말고 미안하지만 받아 주길 바랍니다.
내게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내가 꿀 수가 없습니다.
그 꿈은 우리들 후배님들이 꾸어 주고받아 주어야 할 듯합니다.
내게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갖고 있는 아주 소박한 꿈입니다.
그 꿈을 함께 꾸고 싶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꿈을 말입니다.
후배님의 건승을 천자봉 해병혼에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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