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상戰은 한국 책임" 메시지
이라크·아프간에 병력 많아 대규모 지상군 투입 힘들어…
2012년 전작권 전환 후엔 해·공군 지원체제 굳어져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전날 발언에 이어 4일(현지 시각)에도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이 '한반도 유사시 지상군 지원은 지연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했다.
미 국방부 미셸 플로노이(Flournoy) 차관은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현재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북한의 중대한 기습공격 등이 발생하는 시나리오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런 종류의 시나리오를 점검했다"며 "여기에서 기밀사항을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으나, 그런 경우에는 미국은 해군과 공군의 집중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에 함께 출석한 합동참모본부의 스티븐 스탠리(Stanley) 군사력 구축·자원·평가 담당 국장은 미 국방부가 한반도를 포함, 3가지 유형의 비상사태 시나리오에 대비, 미군을 운용하는 실험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대규모 미 지상군이 투입돼 있어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의 즉각적인 대규모 투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전문가들이 예상해왔던 바다. 하지만 미군 최고위급 책임자들이 잇따라 그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 한·미 양국군은 북한에 의해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전쟁발발 90일 이내에 병력 69만여명, 5개 항공모함 전단(戰團)을 비롯한 함정 160여척, 항공기(전투기·헬기 등) 2500여대 등 대규모 미 증원전력(增援戰力)을 한반도에 단계적으로 투입토록 하고 있다. 전면전에 대비한 한미 연합 작전계획인 '작전계획(OPLAN) 5027' 및 시차별부대전개목록(TPFDD)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미 지상군이 투입돼 있는 상태에서 이 같은 증원전력 투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미군은 이에 따라 주한미군 외에 주일미군, 태평양지역 미군 위주의 소규모 증원(增援)을 전제로 한 '작전계획 5026'을 이라크전 이후 만들기도 했다.
미군 수뇌부의 잇단 발언은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 및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한국군 전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중동과 한반도 지역에서 동시에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모두 억제하고 승리한다는 '2개 전쟁 동시수행(Win-Win)' 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 이후 대규모 전면전보다는 불특정 다수위협에 대처하는 형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 최근 발표된 '2010 QDR(4개년 국방검토) 보고서'다.
또 전작권이 오는 2012년 4월 한국군에 전환된 뒤엔 유사시 미군 지원 형태가 지금보다 더욱 해·공군 위주로 바뀌게 된다.
과거 북한의 전면 도발이 일어나면 한강 이북 의정부·동두천 등에 배치돼 있던 미 2사단이 미군을 자동적으로 끌어들이는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했지만 더 이상 주한 미 지상군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게 된다. 주한 미 2사단이 한강 이남 평택 기지로 이동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군 고위 관계자들도 "전작권이 한국군에 전환되면 주한미군은 해·공군 위주의 지원체제로 전환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 때문에 게이츠 장관 등의 발언이 '2012년 전작권 전환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해·공군 위주로 지원할 것이니 한국군은 지상전에 대해 책임지고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미군 수뇌부의 발언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반도 안보환경을 감안하면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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