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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자료

해병대 지휘관 편지 10

by 충실한 해병 2022. 12. 5.

指揮官 便紙 10


우리海兵隊(해병대)는 무엇입니까?---[제 8호 96. 10. 1 ]

친애하는 해병대 장병 및 군무원 여러분!
지난번 편지 (제 7호)에서는 훌륭한 군인과 민족번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해병대를 여기에 連結(연결)시켜 보겠습니다.

한 國家(국가)는
領土(영토)와 그 영토 위의 領空(영공), 그 영토를 둘러싸고 있는 領海(영해;바다),
그리고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군사학적으로 표현하면 영토를 지키는 육군,
영해를 지키는 해군,
영공을 지키는 공군으로 구성하여
이들을 일반적으로 뚜렷하게 목적이 주어져 있는 軍隊(군대),
즉 일반 목적군 (General Purpose Forces)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해병대는 무엇입니까?
지켜야 할 땅도, 바다도, 지켜야 할 하늘도 없습니다.
6.25전쟁이 끝난 후 휴전시부터 김포반도 일부의 영토를 방어하는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만
우리 본래 목적은 상륙작전이라는 특수한 목적으로 탄생한 군대입니다.
이와 같이 특수한 목적을 가진 군대를 특수 목적군 (Special Purpose Forces)이라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해병대는 上陸作戰(상륙작전)이라는 특수한 목적이 필요로 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군대이며, 그 본래 목적과 필요성이 없어지거나 效用性(효용성)이 減少(감소)되면
그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고 縮小(축소)되거나 없어지거나,
다른 군에 編入(편입)되거나 하는 여러 가지 변화를 맛보게 됩니다.

세계 48개국이 해병대를 가졌다가 이제는 겨우 15개국만이 해병대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보아도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륙작전이란 하나의 작전형태로
해상이나 연안으로부터 적 해안에 전투력이 投射(투사)되고 나면 그때부터
지상에서 싸우는 법은 육군의 지상작전 수행 방법과 유사하며,
그 편성 및 장비 역시 육군과 비슷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인류가 수백년 동안 전쟁을 수행하여 오는 동안, 지상 또는 연안에서 영토를 방어하거나
타 영토를 공격 및 확보하여 영토를 확장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편성이 바로 오늘날과 같은 것이며,
통상 三角 槪念(삼각 개념) 의 보병부대 + 1개의 화력지원부대, 1개의 전투근무지원부대와
기타 부수되는 지원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편성을 正規軍 編成(정규군 편성)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해상이나 연안으로 전투력을 이동시켜 적 해안에 발판을 構築(구축)하고
적 내륙 깊숙하게 뻗쳐나가며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지상전을 수행하는 육군보다
추가적인 수단이 우리 해병대에 더하여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AAV 대대, 해안개척대대, 특수수색중대, 증강된 전차대대 등입니다.
우리는 왕왕 육군내의 특수전 부대와 우리 해병대를 混沌(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수전 부대는 육군내의 일부 부대로서 편성, 장비 및 임무, 기능이 완전히 相異(상이)하여
우리 해병대와는 상호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즉, 우리가 정상적인 전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정규군이라면
육군 특수전 부대는 정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정규전 을 수행하는
게릴라(Guerrilla)부대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해병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이미 16세기 말 임진왜란 당시로
倭軍(왜군)이 바다 위에서는 이길 수 없으니 육지로 도망하여 불을 지르고 약탈과 노략질을 하는 고로
이를 무찌를 수 있는 手段(수단)이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바로 여기에서 바다로부터 육지로 전투력을 투사할 수 있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切感(절감)한 것입니다.

1592년(임진년) 5월, 9월 옥포해전과 부산포해전,
그리고 1593년(계사년) 3월, 4월 부산포 공격을 위한 웅포 해전과 장문포 해전에서
'종전의 해전과 더불어 수륙협공책을 써야만 왜군을 전멸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육군 지휘관인
경상 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육지에서 적을 몰아 바다 쪽으로 나오게 요청하였으나 거절 당하자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공격했으면 저 왜적들을 섬멸할 수 있었을텐데
(水陸俱擊庶 可盡殲 : 수륙구격서 가진섬)' 라고
그 痛憤(통분)한 심정을 이순신장군의 전투상보인 임진장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6.25 전쟁 직전인
1949년 여순반란사건 때에도 육상 교통로가 나빠 신속하게 전투력을 투입할 수 있는
해병대 창설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는바 해병대의 創設 背景(창설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와 순천지구의 육군 14연대내에 침투 조직되어 있던
김지회 중위, 홍순석 중위, 지창수 상사 등 3명의 주모자와 40여명의 남로당 프락치들에 의해
주도된 반란. 폭동 사건이 발생하여
그 두 지역에서 군. 경을 비롯한 약 2,000명의 官民(관민)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비극이 초래되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자 육군에서는 그 당시 光州(광주)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제 2여단과
제 5여단을 통합한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여
폭동진압작잔을 전개한 끝에 22일에는 순촌을 탈환하고 27에는 여수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22일 육군의 진압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편성했던 해군 진압부대(임시 함대)는
제반 여건과 능력의 限界性(한계성)때문에 해상으로 도주하는 소수의 반란군을 분쇄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손원일 제독을 위시한 해군 수뇌부에서는 그 작전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는 과정에서
'만약에 우리 해군에 陸戰隊(육전대)나 海戰隊(해전대)와 같은 특수한 전투부대가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가정적인 판단과
지휘관 및 참모들의 건설적이고 愛軍的(애군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그러한 특수부대를 갖는 것이 三面環海(삼면환해)의 조국강토를 지켜 나갈
우리 해군의 필연적인 當爲性(당위성)으로 인식되어
시대적인 제반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해병대의 창설을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해병대는 전투력을 해상이나 공중에서 적 해안으로 직접 投射(투사)해야 할 필요성과
효용성이 상호 일치할 때 그 존재 가치가 주어지는 특수한 목적을 띠고 誕生(탄생)한 군대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해병대의 숙명이요, 우리 해병대가 다른 군과 다른 독특한 점인 것입니다.

해병대원들에게는 적 앞에서 물러나지 말라는 임전무퇴의 말 자체가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물러남 그 자체는 곧 물 귀신이 되는 것이고, 죽음을 意味(의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 해안에 투사되면 자신이 살아 남느냐 죽느냐는
해병대원들이 가지고 있는 유형의 전투력 사격+기동력 그리고
무형 전투력인 사기+군기+신념+단결의 상대적 우위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해병대가 사격과 기동, 사기.군기.신념.단결 등을 중시하는 것 자체가
切迫(절박)한 팔자에서 나온 것이며 숙명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걸고 싸우는 군대의 훈련과 전투방식은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 따라 融通性(융통성)이 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군대의 훈련과 전투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해병대식 교육훈련이 나온 것입니다.

해병대식 교육훈련!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정확하게, 더 강해야만 하는 숙명처럼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한편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전투력 역시 똑같은 理致(이치)입니다.
따라서 해병대 구성원 모두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유.무형 전투력이 요구되는 바,
평소에 해병대라는 단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전투기량
그리고 육체와 정신과 마음을 鍊鍛(연단)하고 강건하게 수련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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