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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전투65

해병대 전투-함양-안의지구 전투 ● 전투시기 : 1950.7.26-7.28 ● 전투지역 : 경남 함양 ● 주요지휘관 : 민기식 대령, 김병화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함양-안의지구 전투의 개요 7월 24일, 남원 방어에 실패한 민부대 지휘하의 김병화부대(김부대)와 오덕준부대(오부대), 그리고 해병 김성은 부대는 서전사작명 제 1호(7.22. 8000부)에 의거 운봉으로 이동하여 지연전을 계속 감행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장계-안의 간을 침로로 택한 북한군 제 4사단(사단장 이권무)주력이 안의에 이어 거창과 함양으로 접근하게 되자, 민부대는 후방을 차단하기 전에 급거 함양방어로 전환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러므로 민부대는 미 제 24사단 19연대와 협동하여 안의와 함양에.. 2022. 12. 25.
해병대 전투-마전리 동양리 전투 ● 전투시기 : 1950.11.10-12.2 ● 전투지역 : 강원 마전리, 동양리 ● 주요지휘관 : 김윤근 소령, 황 영 중위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마전리-동양리 전투의 개요 패배를 당한 적들이 태백산맥을 타고 분산, 북상하여 마전리 근방에서 정규병들과 연대를 취하여 재편성한 후 수시로 원산을 공격할 태세를 취하자, 해병 제3대대와 제5대대가 미 제10군단장 지휘 하에 들어가 마전리 등지에서 적을 섬멸한 전투이다. 2. 마전리-동양리 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해병 제3대대 장 소령 김윤근 제9중대 장 중위 황 영 제10중대 장 중위 종덕원 제11중대 장 중위 박동열 제12중대 장 중위 박동근 *적군 단대호 미상부대 약 15,000명 3. 마.. 2022. 12. 24.
해병대 전투-거창지구 전투 ● 전투시기 : 1950.7.24-7.27 ● 전투지역 : 경남 거창 ● 주요지휘관 : 민기식 대령, 오덕준 대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거창지구 전투 개요 7월 24일 남원 방어에 실패한 민부대 지휘하의 김병화부대와 오덕준부대, 그리고 해병대 김성은부대는 서전사작전명 제 1호(7. 22.)에 따라 운봉으로 이동하여 지연전을 계속 수행하였다. 이 무렵 장계-안의간을 침공로로 택한 적군 제 4사단 주력이 안의에 이어 거창까지 접근하게 되자, 민부대는 후방을 차단하기 전에 방어태세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민부대는 미 제 24사단 19연대와 협동하여 안의와 함양 그리고 거창에서 일전을 치르게 된다. 2. 거창지구 전투 참가부대 및 주요 .. 2022. 12. 24.
해병대와 월남전 - 외신 보도 미 대통령 Richard Nixon The enormous contribution which your country has made towards a free future for South Vietnam is tangible proof that both the confidence and assistance America placed in Free Korea 17 years ago was the wisest of investments. - Richard Nixon 17 Dec 1967 - 자유 월남의 자유로운 미래를 위한 한국이 이룩해 온 크나 큰 공헌은 17년 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도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고 있다. - 1967.12.17 리처드 닉슨 - 월남의 Tieng Van.. 2022. 12. 24.
해병대 전투-인천상륙작전 ● 전투시기 : 1950.9.15 ● 전투지역 : 인천 ● 주요지휘관 : 신현준 대령, 김성은 중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한국 해병대의 편성 한국군으로서 역사적인 인천 상류작전에 참가한 지상군은 해병대 제1연대와 육군 제17연대였다. 통영지구에서 수훈을 세운 해병 제1연대는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대령의 직접 지휘하에 제주도에서 약 3,000명의 신병을 모집하고 또한 김성은 부대의 장병 2개중대로서 보강하여 1개연대를 편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9월 6일 부산에 집결한 다음 미 제5해병연대와 합동으로 상륙작전을 위한 단기간의 특수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9월 11일까지는 모든 출동준비를 완료하였다. 2. 해병대 인천 상륙작전의 진행과정 9월 3일 .. 2022. 12. 23.
해병대 전투-원산-함흥지구 전투 ● 전투시기 : 1950.12.3-12.15 ● 전투지역 : 함남 함흥, 원산 ● 주요지휘관 : 신현준 준장, 고길훈 소령, 염봉생 소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원산-함흥지구 전투의 개요 국경에까지 진격하던 아군이 중공군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인해 철수하면서, 함흥과 원산은 철수를 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동부전선의 미군과 한국군은 원산과 함흥을 통해 철수하기 위하여 이동하였으며, 적은 이를 포위 공격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 있었으나, 한국군 해병대(사령관 준장 신현준)는 원산과 함흥의 최종 방어부대로써 철수하는 아군을 방어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마침내 원산과 함흥을 통한 철수작전이 끝나고 한국군 해병대 역시 선.. 2022. 12. 23.
‘전투영웅 추모하며’ 제72주년 장진호전투 기념 국가보훈처는 ‘제72주년 장진호전투 기념 및 장진호전투 영웅 추모행사’를 24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거행한다고 23일 밝혔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주관하는 이날 추모행사는 박민식 보훈처장,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김계환 해병대부사령관, 브라이언 월포드 주한 미해병대사령관, 보훈단체장, 무공수훈자회 회원, 한미 해병대 장병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주제로 거행된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간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벌어졌다. 당시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된 미 해병 1사단과 미 육군 7사단 2개 대대, 영국 해병 제41코만도부대, 미군에 배속된 국군 카투사 장병 및 경찰 화랑부대원이 영하 30도에 육.. 2022. 12. 23.
해병대와 월남전 - 짜빈동 전투 해병대는 찌빈박의 교훈을 잊지 않았고 몇달뒤 짜빈동 전투로 적에게 확실한 복수를 했다. 짜빈박에서 이동중인 제3대대 지휘부를 습격한 월맹 정규군들은 몇달뒤 아예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를 공격하여 한국군의 기세를 완전히 꺾으려고 했다. 작전이 성공하면 청룡부대 여단본부와 추라이 비행장까지 기습하여 추라이 일대를 되찾고 한국 해병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월맹 정규군이 선정한 목표는 청룡부대 제3대대 11중대의 중대전술기지였다. 당시 베트콩은 한국군과 싸웠다하면 거의 연전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월맹 정규군이라도 한국군에게 다시 한번 시원하게 승리하여 베트콩의 사기를 올리고 한국군에게도 심리적 충격을 줄 생각이었다. 극한은 또 다른 극한과 통한다고 했던가. 짜빈박의 처절한 비극은 짜빈동 신화의 서막.. 2022. 12. 23.
해병대 전투-북한강지구 전투 ● 전투시기 : 1950.9. 29-10.7 ● 전투지역 : 경기 퇴계원, 양주, 경춘가도 ● 주요지휘관 : 신현준 대령, 김대식 중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북한강지구 전투 개요 북한강지구 전투는 크게 서울 탈환작전의 일원이다. 이것은 서울 탈환 후 내륙 외곽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진격이었는데 10월 3일 미 해병대가 의정부를 점령하고, 한국 해병대가 경춘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금곡을 점령하고 북한강에 이르는 전투였다. 2. 서울 탈환작전 개요 한국전쟁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이룬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은 제10군단의 공격부대인 미 해병대와 한국해병대에 의해 1950년 9월 15일 감행되었다. 미 해병상륙단이 저항하는 적을 무찌르고 인천 동쪽.. 2022. 12. 17.
해병대 전투-서울 서측방 104고지 전투 ● 전투시기 : 1950.9.21-9.22 ● 전투지역 : 서울 ● 주요지휘관 : 고길훈 소령, 뉴튼 중령(Newton)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서울 탈환작전 개요 한국전쟁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이룬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은 제 10군단의 공격부대인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에 의해 1950년 9월 15일 감행되었다. 미 해병상륙단이 저항하는 적을 무찌르고 인천 동쪽 외곽에 설정된 교두보로서의 진격을 계속하는 동안 한국 해병대는 인천시내의 잔적섬멸 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일단 인천시를 포함한 교두보를 확보한 상륙군은 곧이어 서울탈환 작전에 돌입하고 미 해병 1연대는 경인(京仁)가도의 우측지역을, 그리고 미 해병 5연대는 동 좌측지역을 각각 담당.. 2022. 12. 17.
해병대 전투 - 마산 서측방 정찰전 ● 전투시기 : 1950.8.2-8.3 ● 전투지역 : 경남 마산 ● 주요지휘관 : 윌슨 준장(Vennard Wilson), 챔프니 대령(Arthur S. Champney)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1. 마산 서측방 정찰전의 개요 마산 서측방 정찰전은 낙동강 서부방어작전중 하나이다. 미 제8군 사령부에서는 8월 1일 모든 한.미 지상군에게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왜관에서 북으로 올라가 낙정리를 거쳐서 동해안의 영덕까지에 이르는 동부 산악지대는 아군이 맡았으나, 낙동강 서부, 다시 말하면 왜관 동북쪽의 작오산(303고지)을 최우단으로 하여 마산 진동리 진해만에 이르는 낙동강 연안 부근 일대는 미군이 방어 책임을 담당하였다. 마산 서측방 정찰전은 .. 2022. 12. 17.
사진으로 보는 마산방어전 마산방어전은 6·25전쟁 중 마산을 지켜내기 위해 미 육군과 미 해병대, 우리나라의 국군과 해병대, 그리고 전투경찰대가 수행한 방어작전이다. 이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6·25전쟁 중 가장 무더웠던 기후 속에서 길고 치열하게 실시한 전투였다. 마산방어전 중에 진동리전투는 낙동강 방어전선 중 제일 남단의 전장으로써 같은 시기의 왜관 다부동과 포항전투에 비해 국지적이고 덜 알려졌지만,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50km거리에 있어서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절체절명의 방어지역이었다. ▲ 마산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진주가 실함되고 마산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미 제8군사령관은 ‘북한군이 부산을 점령하는 것이 빠른가? 아니면 미 증원군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 더 빠른가?’를.. 2022. 12. 17.
행주지역 한강 도하작전 ● 전투시기 : 1950.9.19-9.21 ● 전투지역 : 행주나루 ● 주요지휘관 : 알몬드(Almond) 소장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상 세 설 명 1. 서울 탈환작전 개요 한국전쟁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이룬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은 제 10군단의 공격부대인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에 의해 1950년 9월 15일 감행되었다. 미 해병상륙단이 저항하는 적을 무찌르고 인천 동쪽 외곽에 설정된 교두보로서의 진격을 계속하는 동안 한국 해병대는 인천시내의 잔적섬멸 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일단 인천시를 포함한 교두보를 확보한 상륙군은 곧이어 서울탈환 작전에 돌입하고 미 해병 1연대는 경인(京仁)가도의 우측지역을, 그리고 미 해병 5연대는 동 좌측지역을 각각 담당하고 서울.. 2022. 12. 16.
미 해병대 이오지마 전투 이오지마 전투(일본어: 硫黄島の戦い, 영어: Battle of Iwo Jima, 1945년 2월 16일~1945년 3월 26일)는 태평양 전쟁 말기, 오가사와라 제도의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생긴 전투를 말한다. 개요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닫던 1945년 2월 19일, 미군 해병대가 이오지마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3월 17일에 미군은 섬을 장악했으며, 거의 모든 일본군 부대가 전멸했다. 3월 21일에 대일본제국 대본영은 3월 17일에 이오지마 섬에 있던 일본군이 '옥쇄'(玉砕)했다고 발표했다. 3월 26일,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대장 이하 남은 300명의 일본군이 마지막 돌격을 했으나 전멸했다. 이것으로 인해 조직적인 전투는 종결되었다. 2만 933명의 일본군 수비 병력 중, 2만 1.. 2022. 12. 15.
인천상륙작전 1950년 한국전쟁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반격을 시작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상륙작전으로 전쟁초기 기습공격과 엄청난 전투력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진격한 북한군은 UN군의 참전과 국군의 반격으로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진다. 이때 맥아더장군은 낙동강전선에서 위기를 타개하고 북한군의 배후를 강타한다는 내용의 작전구상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 계획은 맥아더장군이 6월 29일 한강방어선을 시찰할 무렵 구상되었던 작전으로 미지상군을 수원부근에 투입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면서 미 제1기병사단을 인천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을 포위 격멸하려는 블루하트(Blue heart)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북한군의 남진을 막지 못해 상륙부대는 내정하였던 미 제1기병사단을 전선에 투입.. 2022.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