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전투65 캄란지역 작전(‘65.10.9~11.14) 청룡부대는 1965. 10. 19 미 제1공수사단 제1여단으로부터 ‘캄란’만 일대의 전술 책임 지역을 인수하였다. 1965. 10. 21 제2대대는 워싱턴 작전을 전개하여, 판랑의 6Km지점인 부숑 비행장 전술기지의 확장공사에 따른 방어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1965. 11. 4 백경(까투산) 작전을 실시하여 부숑 비행장을 위협하는 까투산의 적을 소탕함으로써, 18년 동안 베트콩의 아성으로 군림한 까투산을 탈환하였다. 그 뒤 제3대대는 번개 1ㆍ2ㆍ3호 작전에서 1번 도로를 위협하는 베트콩을 완전소탕, 나트랑 서북쪽 산악지역과 나트랑 비행장을 안전하게 확보하여, 적의 위협을 제거하였다. 2022. 11. 27. 전략도서 확보작전(’51.2.14~‘53.7.27) 한국전쟁 동안 해병대는 부대의 특성을 활용하여 38도선 이북 동,서해안의 전략 도서 확보 작전으로 적 해안을 봉쇄하고 적 후방을 위협하며, 첩보 수집 및 유엔군의 해군 활동을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 해병대는 동해안 도서 확보를 위하여 1951. 2. 2. 독립 제42중대를 편성하여 1951. 2. 14 원산 앞 여도에 상륙하여 영흥만 일대의 신도 등 7개 도서를 점령하고 원산항을 봉쇄하였다. 1951. 8. 28. 독립 제43중대는 함경북도 명천 부근의 양도에 상륙하여 차기작전 대비 중, 적 상륙기습부대 1개 대대공격을 완전 섬멸하는 전공을 세웠다. 한편 서해안 도서 확보를 위하여 1951. 4. 2 독립 제41중대를 편성하여, 서해안의 교동도(4월 2일), 백령도(4월 23일), 진남포에 인접한 석도(.. 2022. 11. 27. 장단(사천강)지구전투(’52.3.17~‘53.7.27)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개최될 당시, 피아간 더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초 진지 쟁탈전이 계속되자, 수도 서울 방위에 역점을 두고 군사적 보완책의 일환으로 1952. 3. 17.부터 중?동부에서 서부전선 장단 지구로 투입된 해병대 제1연대는, 1953년 휴전 시 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판문점에서 사천강에 이르는 임진강 하구까지 11km에 달하는 주 저항선 전방의 8개 전초진지에서 중공군 2개 사단(제194,제195사단)과 대결한 방어 전투이다. 해병대 제1전투단을 이 전투에서 사천강을 경계선으로 중공군 2개 사단과 네 차례에 걸친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여 군사 분계선을 아군에 유리하게 확정짓도록 하였고, 수도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켜 수도권 방어에 기여함으로써, 대통령 .. 2022. 11. 27. 김포지구전투(’51.3.7~‘53.7.27) 1950. 9. 21 수도탈환작전에 참가한 해병대 제3대대는 김포비행장을 공격하는 적 2개 대대를 격파하고 김포·강화도를 장악하였다. 1951. 1. 24 영덕ㆍ안동지구에 출동하여 북괴군의 남침 진로를 차단하던 해병대 독립 제5대대는 1951. 2. 26 수도 서울 재 수복작전을 전개하여 인천에 상륙, 잔적을 소탕하고, 인천시를 방어(1951. 2. 26~3. 6)하면서 서울 영등포 일대에 정찰대를 파견, 서울 재 수복 작전에 기여하였다. 1951. 3. 7부터 김포지구 작전을 전개하여 잔적을 소탕하고 김포반도를 완전 장악한 뒤, 휴전 시까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중공군의 수도 서울 침공을 저지하면서 한강 너머 개풍군 및 개성 부근 일대에 정찰대를 전개하여, 월암리 전투 등 50여 회의 작전을 수행하고 한.. 2022. 11. 27. 김일성고지(펀치볼)지구전투(‘51.8.30~9.3) 휴전회담이 제기된 직후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양구 북쪽 해안분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형상 불리한 조건을 무릅쓰고, 3주간 피의 대공방전을 감행하였다. 제1단계 작전(‘51. 8. 21~9. 1)시 현 을지전망대와 가전리 일대(▲924-▲1,026-▲702-▲660)에 배치된 북괴군 제3군단 제1사단을 치열한 혈전 끝에 격퇴하고 펀치볼을 확보하였으며, 제2단계 작전(’51. 9. 1~9. 20)시 간무봉 일대의 적 은거지를 제압하여, 내금강산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지형을 장악하였고, 좌측방의 한국 육군 제5사단의 가칠봉 점령을 용이하게 하였다. 한국 해병대의 김일성 고지(▲924) 및 모택동(▲1026) 전투는 펀치볼 작전의 제1단계 작전으로 펀치볼 북쪽 능선 일대에 천문학적 숫자의.. 2022. 11. 27. 도솔산지구전투(’51.6.2~6.20)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 5월 춘계 공세를 격퇴한 직후,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 요충지 도솔산(▲1,148)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1단계 작전(1951. 6. 4~6. 12)시 공격 목표 ‘1’에서 목표 ‘16’까지 점령한 뒤 캔사스선으로 진출하였고, 제2단계 작전(1951. 6. 13~6. 24)시 공격 목표 ‘17’에서 목표 ‘24’까지 점령하고 버지선까지 진출하여,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괴군 제5군단 제12사단과 제32사단의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무수한 희생 끝에 격퇴하고 도솔산을 탈환함으로써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전투이다. 1951. 6 .4 도솔산 탈환에 실패한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임무 교대한 한국 .. 2022. 11. 27. 북진.철수.재 반격작전(’50.10~‘51.1) 1950. 10. 1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여 한ㆍ만 국경해산진까지 북진할 때, 해병대는 1950. 10. 7 인천을 출항, 묵호 및 원산에 상륙하여 고성ㆍ원산ㆍ함흥지구 전투를 수행하였다. 1950. 10. 25 중공군이 불법 개입하자 원산ㆍ함흥을 철수하여 진해에 집결한 해병대는 1950. 12. 20 제1연대와 독립 제5대대로 재편성하였다. 1951. 1. 4 수도 서울이 다시 적의 수중에 함락되자, 해병대는 재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영덕ㆍ안동ㆍ홍천ㆍ화천지구 전투를 수행하였다. 2022. 11. 27. 서울탈환작전(‘50.9.20~9.28)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미 제10군단은 1950. 9. 18 서울로 진격하여 11일 동안 작전을 전개한 끝에, 서울 외곽 지역과 시가지에서 북괴군 4개 사단(제9사단, 제18사단, 제25여단, 독립 제78연대)을 격퇴하고 서울을 탈환하였다. 이 작전에서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한국 해병대는 선봉부대로 서울 서측방에서 수도 중심부로 공격을 개시하였고, 미 육군 제7사단과 한국 육군 제17연대는 서울 남측방과 동측방에서 우회, 포위 기동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한국 해병대는 9. 20 한강을 도하, 수색방향으로 진격한 뒤 최후 방어선인 104고지와 연희고지군 일대의 적을 격퇴하여 수도탈환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으며, 시가지 전투를 전개하여 잔적을 격멸하고, 9. 27 06:10 .. 2022. 11. 27. 인천상륙작전(’50.9.15~9.20)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괴군 최후의 발악적인 8월, 9월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작전으로서, 맥아더 사령관은 한반도에서 적을 몰아내고 조기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 아래 1950. 9. 15, 유엔 제7합동상륙기동부대가 261척의 대 함대를 동원하여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한국 해병대를 선두로 세계 전사에 천연히 빛날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작전에 제7합동상륙기동부대는 48시간 동안 항공모함 함재기 200대의 공중 폭격과 함포 사격을 실시하면서, 9.15 06:30 미 해병대 제5연대 제3대대가 20척의 상륙주정으로 녹색해안에 상륙, 월미도를 탈취하였다. 동일 17:30부터 한·미 해병대가 400여 척의 상륙주정에 분승하여 4회에 걸친 파상공격을 실시, 적색해안과 청색해안에 상.. 2022. 11. 27. 통영상륙작전(‘50.8.17~9.22) 낙동강 방어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괴군 제7사단이 거제도를 점령하고 전략 요충지 마산과 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하여 통영에 침입하자, 해병대 김성은 부대는 1950. 8. 17일 18:00. 7척의 해군 함정의 지원 아래 장평리 해안에 한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2일 만에 전술 요충지 통영을 탈환한 뒤, 원문고개에서 적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하고 이 지역을 방어하였다. 이 작전에서 해병대는 작전의 승패를 가름하는 매일봉 고지를 적보다 5분 먼저 점령하여 인해 전술로 공격하는 적을 격멸하고, 통영 시내의 잔적을 소탕하면서 적의 유일한 공격로인 원문고개를 조기에 탈취 확보하여, 여러 차례의 공방전에서 적 대대를 격퇴함으로써 낙동강 교두보선의 서측방 위협을 제거하였고, 유엔군 철수작전 중 방어.. 2022. 11. 27. 진동리 지구전투(’50.7.31~8.13) ‘50. 8. 3 경남 진동리 서쪽 고사리에서 북괴군 제6사단 정찰대대에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적 제6사단의 예봉을 꺾어 침공을 저지하였으며, 창군 이래 최대의 전공을 세워 전 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었다. 동년 8월 7일부터 미 육군 제25사단을 주축으로 편성된 킨(kean)특수임무부대가 진주고개로 지향된 대규모 반격 작전(1950.8.7~8.12)을 전개하는 동안, 한국 해병대는 진동리 마산 간의 보급로를 타개하고 야반산, 수리봉, 서북산 일대의 적을 완전히 격퇴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튼튼히 구축하는데 기여하였다. 2022. 11. 27. 장항.군산.이리지구전투(‘50.7.15~7.21) 북괴의 남침으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해병대는 1950년 7월 초 천안을 점령한 북괴군 제6사단 제 13연대가 서해안을 우회하여 호남지역으로 남하할 때, 해병대 고길훈 부대는 제주기지를 떠나 7월 16일 군산에 상륙, 장항 북쪽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북괴의 금강 진출을 저지, 격파하였고 7월 20일까지 군산, 이리 방면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의 남침을 저지하였다. 2022. 11. 27. 미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 ▲미 해병대의 참전 배경 미 해병대의 한국전 참전은 인천상륙작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 해병대의 존재가치는 태평양전쟁을 통해 부각됐다. 태평양전쟁 시 본토 사수를 외치던 일본군의 전쟁 의지를 말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미 해병대가 해냈다. 미 해병대는 총사령관 맥아더의 작전개념에 따라 서남태평 상의 전략적 섬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일본 본토를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미 해병대는 이오지마에서 해병군단 작전을 통해 일본군을 궤멸시켜 일본의 전의를 상실케 했다. 그 결과 맥아더는 해병대의 전투능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냈고 이를 잊지 않고 있었다.미 해병대와 맥아더의 인연은 한국전 발발로 다시 이어졌다. 전쟁 초기 한국전선을 시찰하며 상륙작전을 구상했던 맥아더의 뇌리에는 태평양전.. 2022. 11. 27. 진주지구 전투 ● 전투시기 : 1950.7.25-7.31 ● 전투지역 : 경남 진주 ● 주요지휘관 : 민기식 대령, 김용주 중령 ● 참고문헌 : 한국전쟁사(국방부), 한국전쟁사(전쟁기념사업회) 1. 진주지구 전투의 개요 하동지구 전투는 진주지구 전투와 함께 영남지구 편성관구 사령부(사령관 소장 채병덕) 미 제 24사단(사단장 소장 존 처치(John H. Church))의 일부병력과 협동하여, 호남의 남안선을 거쳐 하동의 우회 침공하는 북한군 제 6사단(사단장 소장 방호산)을 요격하여 진주를 잃기까지의 7일간의 지연전을 일컫는다. 2. 진주지구 전투의 주요 지휘관 *아군 영남 편성관구사령부 사령관 소장 채병덕 민부대장 대령 민기식 제 3연대장 중령 박현주 제 9연대장 중령 유해준 제 30연대장 중령 김용주 배속부대 이부.. 2022. 11. 27. 월남 짜빈동 전투 표창 2022. 11. 27. 이전 1 2 3 4 5 다음